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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함에는 힘이 있다

묵묵한 응원 ㅣ 특별함은 빛나고, 평범함은 지탱한다.

by 쪼의 세상

특별함은 모든 이들의 선망의 대상입니다. 경제학적으로는 희소성이라고 할까요. 모 학원 강사께서는 우리가 아름다운 사람들을 선망하는 이유도 그들이 희소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희소하면 특별해집니다. 특별하면 값어치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우리는 그 값을 얻기 위해 삶에서 많은 경험을 양보합니다. 특별한 성적을 얻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다거나, 특별한 자격증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거나, 특별한 외모를 얻기 위해 공을 들입니다. 특별함은 빛이 납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빛난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소수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특별한 사람들만 살고 있는 건 아닙니다. 그와 반대되는 평범한 사람들이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특별함이 소수의 전유물이라면, 평범함은 모두가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가치입니다. 물론 요즘에는 평범하다는 의미가 평균이라는 말과 번갈아 쓰이기도 하는 사회 같습니다. ‘평균 올려치기’라는 말이 있죠.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평균’이 너무 높아진 바람에, 보통 사람이 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평범한 삶, 즉 중산층의 삶도 누구나 이름을 알 만한 회사를 다니며, 수도권에 집 한 채 있어야 하고, 국산 중형 2000cc 이상의 차를 보유하며, 1년에 한 번은 해외여행을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쩌면 평범함마저 특별해져 버렸습니다.

진짜 평범함의 의미는 이제 찾을 수 없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녁의 어스름같이 평범함에 대한 희망이 어둑해질 즈음, 문을 젖히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던 계기는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보게 되었던 <어른 김장하>라는 다큐멘터리였습니다.
경남 진주의 어느 한약방. 그곳에는 60년 동안 한약방을 지킨 한약업사 김장하 선생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도 인터뷰 한 번 하지 않고, 많은 이들을 도우면서도 자신의 옷 한 벌 허투루 사지 않는 사람. 좋은 어른을 기다리는 당신에게, 김장하 선생의 이야기가 찾아갑니다.”


나라 안팎의 큰 굴곡의 시기에 한 헌법재판관의 사연 때문에 관심이 간 것도 사실이지만, 유튜브에 짤막하게 공개된 다큐멘터리 내용 중 김장하 선생님의 걸음걸이가 저를 이끌었습니다.
평생 한약방을 운영하면서 일군 사학을 국가에 기부하고,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현금으로 내어주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던 선생은, 자가용 한 번 구입한 적 없이 특유의 사근사근하고 떳떳한 바쁜 걸음걸이로 한평생을 집과 한약방을 오가곤 했습니다. 그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마음을 끌었습니다.


jEdr_6fRW_hGRJRbDWhZU30_Pz9dmvaLskQorn4FwALerQRS8sa0hHPhR02dmErLIeeBi9e2915DvBS2r8w4ug.webp "그의 뒷모습" 사진출처: 나무 위키

다큐멘터리 내에서 김장하 선생을 취재하는 역할을 맡은 김주완 전 경남도민일보 대기자의 발걸음은 초조하기만 합니다. 좋은 일을 하고 받은 관심에도 인터뷰를 한사코 마다하는 선생은, 자랑처럼 들릴 법한 질문에는 입을 꾹 다무십니다. 좋아하는 야구 이야기가 나올 때만 소년 같은 미소로 “롯데 팬이었다가 최근엔 NC로 갈아탔다”며 멋쩍게 웃을 뿐이죠.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응한 건 선생이 아닌, 선생의 은혜를 입고 여전히 그를 찾아오는 제자들이었습니다. 그중에는 어느 대학의 교수와 같은 인물도 있어, 그의 베풂이 사회에 큰 기여를 할 특별한 사람들을 만들어 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자들은 겸손한 마음으로 선생을 찾아와 이렇게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제가 장학금을 받고도 특별한 인물이 못 돼서 죄송합니다.”

이어서 선생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합니다.

“내가 그런 걸 바란 건 아니었어.”


그리고 이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다.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거다.”
l_2023020401000056700011371.webp 사진 출처 : 경향신문

선생의 말을 들으니, 특별함에 가려 잊고 있던 평범함의 의미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 스스로도 광고회사에서 마케팅 일을 하면서 ‘특별함’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개념이었습니다.
마케팅에서는 USP라는 말을 정말 자주 씁니다. Unique Selling Point의 줄임말로, 어떤 제품이나 브랜드만이 가진 특별한 시장적·마케팅적 가치를 표현하는 데 쓰입니다.
자연스레 USP가 없으면 그 브랜드나 제품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직업병 탓일까요. 저 역시 스스로에게도 특별함을 갖추길 바라는 사람으로 꾸준히 살아왔습니다.
비단 저뿐만이 아니겠지요. 우리 사회 전반에서 특별함에 대한 추앙은 경쟁과 도태가 만연한 풍경 속에 너무나 익숙한 가치라고 생각되기 쉽습니다.


바로 그때, 김장하 선생의 말씀은 평범함의 힘을 일깨워 주는 말처럼 느껴졌습니다.

평범함에는 힘이 있습니다. 평범한 저녁 일상은 하루 일과를 마친 우리에게 잠시 동안의 평화를 줍니다. 세상의 많은 평범한 일들은 특별하지 않을 수 있지만, 세상에 꼭 필요한 일들입니다.

역설적이게도 그런 일들이야말로 오히려 특별한 일이 되곤 하죠. 얼마 전 영남 지방에 큰 산불이 번졌을 때 우리를 지켜준 건, 평범한 소방공무원들과 일선의 자원봉사자들이었습니다.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역할을 꿋꿋이 해 나갈 때, 사회는 특별한 일을 해내곤 합니다.
김장하 선생께서도 평생을 모은 돈을 특별하다고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아픈 사람들을 돌보며 번 돈이기에, 그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장학금 지급을 시작하셨고, 학교도 사회에 환원하셨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얻은 이득을, 평범한 보통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다시 돌려준 것이지요.

그렇기에 평범함에는 힘이 있습니다. 특별함보다 강인하며, 우리를 더 빛나게 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저는 마케팅 캠페인을 기획하며 ‘어떻게 하면 특별한 캠페인 제안이 될까’를 고민했던 하루를 떠올립니다.

평범함엔 힘이 있다고 말하는 이 순간에도, 사실 그것을 믿고 실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겠지요.
하지만 오늘 하루만이라도 여러분의 하루가, 평범함의 힘을 믿는 그런 하루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도 한번 따라 되뇌어 보면 어떨까요.


평범함엔 힘이 있습니다.
당신에겐 힘이 있습니다.


-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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