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그다지 귀여워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별 관심도 없다. 팔랑귀를 넘어선 덤보 귀의 소유자인 데다 노는 걸 너무 좋아하던 뽀로로는 사랑하는 엄마 말에 홀랑 넘어가서 오직 워라밸만 좇아 교단에 서게 되었다.
내가 교사가 되겠다고 선언했을 때 모두가 의아해했고, 일부는 ‘니가?’라고 비웃기도 했다. 그들 눈에 비친 나는 철없고 일명 '대가리 꽃밭'인 천방지축 어리둥절 왈가닥이었던 것 같다. 하긴, 나조차도 내 선택에 확신이 없었으니, 믿을 구석은 그저 ‘적응 하나는 기막히게 한다’는 장점뿐이었다.
3월 2일, 첫 만남부터 우리는 삐걱거렸다. 나는 (다들 믿지는 않지만) 낯을 상당히 가리는 편인데,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낯을 가렸다. 아이들의 호기심 섞인 땡그란 눈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았고, 관심을 가지며 다가오는 아이들에게도 고장 난 로봇처럼 뚝딱거리며 응답했다. (고학년으로 갈수록 교사에게 잘 다가오지 않지만, 4학년은 다가오는 아이들이 꽤나 있다.)
같이 발령받은 동기는 아이들을 사랑해서 서로 스스럼없이 대하던데 나는 몇 개월 동안 계속 아이들과 데면데면했다. 아이들이 내 물건을 함부로 만지지 못하게 했고, 예의 없이 굴면 바로 정색하고 지도했으며, 나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질겁하며 ‘2m 접근금지’라고 결계를 치며 쫓아냈다.
자연스럽게 우리 반 아이들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나에게 다가오지 않게 되었다. 교사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을 때도 쭈뼛거리며 겨우 다가오거나 아예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가끔은 아이들에게 언성을 높여 지도하고 돌아서서 나 아동학대로 신고당하면 어쩌지,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차피 숨만 쉬어도 고소당할 수 있는 세상이니 그냥 줏대 있게 살기로 했다.)
무척이나 달갑지 않은 2학기 학부모 상담 주간 직전이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2시부터 4시까지 풀타임으로 빽빽하게 차 있는 상담 스케줄을 보고 기겁한 나는 부랴부랴 아이들에게 학교생활에 관한 설문지를 돌렸다. 학교생활에서 힘든 점, 친한 친구,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과목, 선생님께 바라는 점 등을 형식적으로 묻는 설문지였다.
“아, 어차피 상담 주간 아니어도 학부모님이 원하시면 상시 상담하는데 대체 왜 별도로 상담 주간을 운영해야 하는 거야? 나는 교사지 상담사가 아닌데…….”
짜증 섞인 푸념과 함께 초심 잃은 5년 차 남자 아이돌처럼 동태눈을 뜨고 넘겨본 종이에는 우리 반 아이들의 사랑이 진하게 묻어 있었다. 2학기에 선생님께 바라는 점이나 선생님이 도와줬으면 하는 점을 묻는 문항에 대한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바라는 점 없음! 선생님은 항상 우리의 에너지! 제가 바라는 걸 해주고 있어요. 도와주면 하는 점도 없음! 선생님은 하루도 빠짐없이 우리를 도와줘요.’
‘없다. 선생님은 이미 잘해주고 있기 때문.’
‘없어요. 선생님은 완벽해요.’
‘지금의 선생님이 좋다.’
‘선생님이 행복하길 바란다.'
아이고, 콩깍지도 이런 콩깍지가 없다. 아이들은 내가 주는 애정보다 훨씬 많은 사랑을 준다.
요즘은 가르치며 먹고살기 참 팍팍한 세상이다. 나는 운이 좋아서 학생 운도, 학부모 운도 나쁘지 않은 편이라고 하지만(관리자 운은 다소 없는 듯하다), 언제 내가 뉴스 속 주인공이 될지 모른다. 내 앞에는 꽃길은커녕 가시밭길만 펼쳐져 있는 것만 같다. 저연차 교사는 하는 일에 비해 돈도 쥐꼬리만큼 받고, 우리를 보는 시선은 항상 잔인하고 서슬 퍼렇다. 친구들도 공부 곧잘 하던 애가 월 이백 언저리를 받으며 교사나 하는 게 안타깝다고 혀를 차고, 나에게 교사의 길을 적극 추천하던 엄마마저도 이따금 과거의 자신을 후회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 한 번도 후회한 적 없다. 입버릇처럼 때려치워야겠네, 못 해 먹겠네 지껄여도 과거의 내 모든 선택은 최선이었을 것이며, 아이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삶은 의외로 재미있다. 여전히 내 직업에 별 애착도 사명감도 없고 아이들을 사랑하지도 않지만, 아이들을 단 한 번도 미워한 적 없다. 심지어 우리 반에 학교 최고의 VIP로 소문난 금쪽이가 하루에 한 번씩 대형사고를 쳐댔을 때도 말이다. 대체 어떤 직업이 이렇게 맑고 투명한, 때 묻지 않은 날것의 사랑을 일방적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
몇 년 후에는 어린이들이 질릴 날이 올까, 싶지만 사랑받는 일은 절대 질리지 않을 것 같다.
개인의 주관적인 생각일 뿐이며, 아이들을 사랑하시는 선생님들도 정말 많습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으니 이런 사람도 있다, 가볍게 넘겨주시면 좋겠습니다.
교사는 봉사자가 아니라 직업인일 뿐이니까요.
뉴스를 보며, 얼굴도 모르는 선생님을 위해 탄원서를 쓰며 힘이 빠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공교육의 내일은 더 나을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