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 망한 것 같아요.”
미술 시간마다 어김없이 들려오는 목소리다. 그리는 족족 망하는 저주받은 손의 주인은 동동이다. (동동이는 절대 못하는 편이 아니며, 나는 단 한 번도 아이들에게 못했다는 평가를 한 적이 없다.) 그럼 나는 동동이에게 다가가서 대체 어디가 망했냐고, 선생님 눈에는 엄청나게 멋진 작품만 보인다고 칭찬해 준다.
동동이는 칭찬받는 것을 좋아한다. 하긴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긴 할까? 동동이는 ‘나 칭찬해 주세요.’라는 표현을 ‘저 망한 것 같아요.’라고 돌려 말할 뿐이다. 그럼 나는 기꺼이 다가가 부족한 표현력으로나마 칭찬해 준다.
어릴 적의 나는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운동이 특히 그러했는데, 그래서 체육 시간에 종종 농땡이를 피우는 아이로 자랐다. 안 해봤으니 못하는 건 당연한 건데도 남들에게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기가 싫었다. 그래서 더욱 도전을 피했고, 당연하게도 자신감과 노력의 결여는 부실한 결과로 여실히 드러났다. 못하는 게 두려워 안 했더니 진짜 못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어른이 되고, 못하는 것에 조금 더 당당해졌다. 물론 아직도 남들보다 잘 못한다는 것을 들키는 건 다소 부끄럽지만, 부족한 부분은 피드백을 받고 개선 방안을 물어 더 연습하면 되는 일이다. 조금 못하면 어때. 처음부터 잘하는 것보다는 성장을 몸소 느끼는 게 더 재미있다는 걸 달리면서, 자전거를 타면서, 수영을 하면서 깨달았다. 모두 다 어렸을 때 퍽 자신 없던 분야였다.
나는 가을바람을 가르며 달리고, 아침 햇살을 온몸으로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고요한 물속을 유영하는 것을 사랑하는 어른이 되었다.
우리 반 어린이들이 못하는 것을 안 하는 사람으로 자라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서 자신 없어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세뇌하듯 강조했다.
“나는 너희가 못하는 것을 뭐라고 하지 않아. 하지만 잘 못하더라도 한 번 해 보았으면 좋겠어. 조금 못하면 어떠니. 실패하더라도 너희에게는 해봤다는 경험이 남잖아? 하지만 못하는 것이 무서워서 안 한다면 아무것도 남지 않아.”
실은 어렸을 때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아이들의 노력을 칭찬해 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표현력이 풍부한 사람이 아니라 가끔은 어떻게 칭찬해 줘야 하나 고민스럽기도 하다. 다만 교사가 되고 알게 된 사실 하나는, 노력은 어떻게든 티가 난다는 것이었다.
동동이는 더 이상 “저 망한 것 같아요.”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선생님, 저 좀 잘한 것 같아요. 완전 열심히 했거든요.”라고 말간 얼굴로 말한다. 그럼 나는 기꺼이 다가가 부족한 표현력으로나마 아낌없이 칭찬해 준다.
*글에 등장하는 모든 학생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우리 어른이들도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