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구르기 좀 못해도 괜찮아

사실 선생님도 뒤 구르기 못 해

by 단팥빵

우리 학교는 체육 전담 교사가 없다. 이 말인즉슨 담임 교사가 체육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체 체육 전담이 없는데 도덕 전담은 왜 있는지 모르겠다.)


다른 건 어떻게든 하겠는데, 학창 시절 매트 운동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는 나도 매트 앞 구르기밖에 하지 못하는 터라 1학기 매트 운동은 어영부영 넘어갔다.


대학교 전공필수 체육 강의에서 열정 넘치는 교수님을 만난 덕에 반강제로 물구나무서기를 10번도 넘게 시도하다가 교수님을 발로 차서 C를 받은 전적이 있는 내가 아이들에게 시범을 보일 능력이 있을 리 만무했다. (전혀 고의가 아니었다. 교수님, 죄송합니다!)


더군다나 담임이 체육을 맡게 되면 하루하루 수업과 공문 쳐내기도 바쁘기 때문에 체육 수업을 연구할 시간도 턱없이 부족하다. 따라서 보통은 신체 능력이 좋고 체육을 좋아하는 (=태권도를 다니는) 아이를 한 명 뽑아서 시범을 보이고는 한다.



그래서 학교로 찾아오는 체조 수업 공문을 보자마자 덥석 신청했다. 오늘이 첫 시간이었고, 앞 구르기부터 차근차근 다시 하기로 했다.


1학기 때 뒤 구르기는커녕 앞 구르기조차 못 하던 아이가 딱 둘 있었다. ADHD가 있는 진명이와 선택적 함구증을 보이는 수지였다. 둘 다 겁이 상상 이상으로 많았고, 신체·운동 능력이 상상 이상으로 부족했다. 어떻게든 굴려주려고 노력해 봤지만 진명이는 자꾸 큰절을 했고, 수지는 얼차려를 했다.


그래도 수지는 몇 번 정도는 억지로 굴렸었는데, 진명이는 겁이 너무 많고 덩치도 커서 도저히 굴릴 수가 없었다. 과연 전문 체육인과 함께라면 굴릴 수 있을까? 싶었지만 강사님도 진명이는 두어 번 해보더니 깔끔하게 포기하고 모로 누워 굴러가라고 했다. 진명이는 김밥의 햄처럼 신명 나게 돌돌돌 굴렀다. 그마저도 자꾸 매트를 벗어나서 결국 바닥을 구르긴 했지만…. 뭐, 진명이가 행복했으면 된 거다.


수지는 강사님이 도와주시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여학생이라 보조하기가 부담스러우셨는지 나에게로 책임이 넘어왔다. 잔뜩 움츠러들어 있는 수지에게 선생님을 믿으라는 말과 함께 굴렸고, 수지는 어떻게든 구르긴 했지만 왜인지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이제 사소한 일들로 우는 아이들을 더 이상 달래주지 않기로 마음먹었기에 그냥 내버려 뒀다. 나는 아이들의 선생님이지 부모님이 아니고,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감정을 살펴주기에는 내가 소모해야 할 에너지가 너무 많으며,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스스로 감정을 다루는 법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든 아이가 앞 구르기를 한 후, 다시 수지의 차례가 돌아왔다. 솔직히 나는 수지가 포기할 줄 알았다. 그러나 수지는 놀랍게도 포기하지 않고 매트 위에 두 손, 두 발을 짚고 섰다. 비록 겁에 질린 탓에 팔과 다리에 과도하게 힘이 들어가긴 했지만.


몇 차례 더 해보았지만, 수지의 도전은 연거푸 실패로 끝났다. 포기하지 않은 수지에게 성공의 경험을 맛보게 해주고 싶었으나, 나는 수지의 개인 강사가 아니었고 아이들은 많았으며 수업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다.


데굴데굴 아이들이 굴러 지나가고 다시 수지의 차례였다. 수지는 이번에도 파리한 얼굴로 매트 위에 다시 섰다. 수지의 몸은 갓 태어난 고라니처럼 뻣뻣하게 굳어서 도통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내 이번에는 기필코 너를 굴려보리라! 수지의 엉덩이와 뒤통수를 잡고 힘껏 돌렸다.



콩. 머리를 충분히 깊숙하게 넣지 않은 수지의 정수리가 매트에 부딪혔다. 이건 수지가 스스로 굴렀다기보다는 내가 힘으로 메쳐버린 것에 가까웠다.


아이고, 완벽한 실패다. 수지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지며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이젠 나도 모르겠다.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나도 수지도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수지는 애써 낸 용기에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였다.


반에 돌아와서 아이들과 오늘 체육 수업에 대한 소감을 나누었다. 체육 수업은 재미있었지만, 구르기는 여전히 어렵다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런 아이들에게 소소하게 응원을 전해 주고 싶어서 내 경험을 밑반찬 삼아 입을 열었다.


"구르기 좀 못 하면 어때. 그거 좀 못한다고 죽는 거 아니다. 다른 분야에 분명히 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거야. 굳이 공부가 아니더라도 아주 사소한 능력이라도 뛰어난 부분이 있을 거야."


지금 내가 잘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더라도 언젠가는 발견하게 될 것이며, 행여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연습하면 된다고. 잘 못 해도 괜찮지만, 조금 어렵다고 포기하는 건 나를 발견하고 성장할 기회를 포기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너무 쉽게 포기하지만 말라고 일장 연설을 했다.


호기롭게 말했지만, 막상 나는 잘 못 하는 걸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씁쓸한 실패를 겪고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다시 매트 위에 올라서던 수지가 나보다 훨씬 더 용기 있고 대단한 것 같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내 생각이 오롯이 전달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포기하지 않은 수지에게만큼은 작은 위로가 되었기를 바란다.





*글에 등장하는 모든 학생들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뭐든 좀 못해도 괜찮습니다. 저도 아직까지 제가 잘하는 게 뭔지 찾고 있으니까요.

무엇이든 과정을 즐기다 보면 잘하게 되는 날도 오겠죠? 아자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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