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이 선생님

학교에서는 선생님인 내가, 수영장에서는 금쪽이?!

by 단팥빵

작년 9월부터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 배영까지 배웠는데 헤엄은커녕 물에 뜨지도 못하는 내 몸뚱이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귀여운 고양이가 그려진 수모와 좋아하는 청록빛의 수영복을 입고, 설레는 마음으로 한없이 파랗고 살짝은 차가운 물에 뛰어들었다.


아, 결과는 처참했다. 학교에서는 금쪽이를 가르치던 내가 수영장에서는 금쪽이가 되어 있었다.


다른 회원님들이 성인 풀로 진급해서 유유자적 헤엄칠 때 나는 유아 풀에서 몇 주 동안 발차기만 연습했다. 수영 강사님은 자꾸만 전기뱀장어에게 감전된 듯 발발거리며 발차기하는 나를 답답해했고, 하루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서 처음으로 다툼 아닌 다툼을 했다.


“아니, 왜 말을 해줘도 못 고치지?”

“저도 고치고 싶어요! 머리로는 이해해도 몸이 안 된단 말이에요!”


소심하게 반항하고는 속으로 ‘나는 우리 반 애들이 아무리 못 하고 답답하게 굴어도 저런 말 안 하는데! 답답해서 고구마 백 개 먹은 것 같아도 꾹 참고 다시 한번 해 보라고 하는데!’ 하며 씩씩거렸다.


그리고 다음 날, 우리 반 아이들에게 분수를 가르치다가 속이 터질 뻔한 걸 겨우 참은 나는 문득 강사님이 오죽 답답했으면 (내가 얼마나 못 했으면)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강습 시간에 화해했다.

칭찬 한마디에 헤헤 웃으면서 힘껏 발차기하는 내 모습에서 칭찬해주면 한껏 치켜 올라간 어깨로 보란 듯이 더 열심히 하는 우리 반 아이들이 겹쳐 보였다. 아이들과 나는 닮아있었다.


결국 당근과 채찍에 길들여진 나는 (비록 채찍 99에 당근 1의 비율이긴 했지만) 1달 만에 겨우 유아 풀을 졸업하고 다른 기초반 회원님들과 성인 풀에서 자유형 연습을 하게 되었다. 역시나, 금쪽이는 쉽게 변하지 않았다. 자유형을 배운지도 2주가 넘었음에도 도통 실력이 나아지지를 않았다. 강사님은 지금 몇 주 동안 자유형을 못 해서 팔만 돌리고 있다며 또 답답해하셨다.


자유형에 대한 열망이 너무 깊어진 나머지 하루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우리 반 아이들은 나름 1학기 때 생존수영을 다녀온 수영 선배님이었기 때문이다.


“얘들아, 너희 생존수영 배울 때 안 어려웠어?”


아이들은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네! 하고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얘들아, 그렇게 고민도 안 하고 말하면 선생님이 뭐가 되니. 아이들은 수영 선배로서의 멋진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선생님, 그게 처음에는 어려워도 연습하다 보면 돼요.”

안 된다고 포기하지 말고 계속하세요.”


쩝. 할 말이 없었다. 작은 선배님들의 조언을 새겨 최대한 빠지지 않고 출석했다. 추석 연휴에는 본가에 가서 수영 고수인 아빠에게 일대일 강습도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오른팔 한 번 돌릴 때마다 꼬로록, 두 번 돌리면 숨이 차서 멈추어야만 했다.


여느 때와 같이 킥 판을 부여잡고 발발거리던 중, 강사님이 갑자기 이제 킥 판 없이 가보라며 내 손에서 킥 판을 앗아갔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는 다급한 내 외침에도 강사님은 “아, 해봐요. 출발!” 하고 등을 떠밀었다. 결국 킥 판 대신 걱정을 부여잡고 출발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언가 달랐다. 두 팔은 자연스럽게 물을 가르며 회전했고, 오른팔을 두 번 돌렸는데도 숨이 차지 않았다. 멈춰 보니 반환점이었다.


반환점에서 지켜보던 다른 회원님이 대체 어떻게 했냐고, 자유형 멋지게 성공했다며 축하해 줬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어리둥절하게 주위를 둘러봤고, 옆 초급 레인 회원님 한 분이 완전 잘했다고, 처음에 망설이길래 못 할 줄 알았는데 너무 자연스럽게 잘 했다고 말을 걸었다. 다른 회원님들도 손뼉을 쳐주셨다.


감사하긴 한데…. 몰랐는데 나 모두의 금쪽이었던 거냐고…. 머쓱하게 머리만 긁고 있는데, 강사님이 멀리서 “회원님!” 하고 부르시더니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주셨다.


어른이 되고 난 후로부터는 칭찬받을 일이 별로 없었는데 운동을 하니 비교적 쉽게 칭찬을 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그날은 집에 오는 발걸음이 평소보다 다섯 배 더 들떠 있었다. 아이처럼 아빠한테 전화해서 자랑도 했다.


이후로 주말에 약속이 없으면 자유 수영을 꼭 가려고 한다. 어차피 씻어야 하니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가도 상관 없고, 자동으로 샤워도 해결하니 수영장에 가는 것이 그다지 귀찮지 않다.


생각해 보면 강사님이 나를 답답해할 때보다 칭찬하고 난 후에 수영장에 가는 것이 더욱 즐거워졌다. 나에게 칭찬을 받은 아이들도 이런 마음이겠구나. 하긴, 우리 반 금쪽이들을 생각해 보면 따끔하게 혼낼 때보다 잘했을 때 확실하게 칭찬해 주는 것이 효과적일 때가 많았다. (물론 칭찬을 너무 남발해서도 안 되며, 냉정하게 지도할 때에는 확실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칭찬을 먹고 무럭무럭 자란 수쪽이는 어느 순간 자유형으로 25m 레인 처음부터 끝까지 갈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스스로를 성장형 금쪽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언젠가 나도 자유형으로 쉬지 않고 레인을 왕복하고, 꿈에 그리던 접영을 하며 푸른 물살을 가르는 날이 오겠지? 그땐 우리 반 금쪽이들도 한 뼘 더 성장해 있을 거라 믿는다.


아이들과 나는 닮아 있으니까.





진짜 별 거 아닌 귀여운 자랑이지만 지금은 자유형으로 50m는 쉬지 않고 갈 수 있답니다. 느리지만 꾸준히 하고 있으니 언젠가 접영도 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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