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소산오름에서 읽어버린 닭을 찾습니다.
"그니까 그 닭이 집을 나갔어요."
어느 날 나는 <화끈한 언니>와 차를 마시다가 언니네 닭이 집을 나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언니, 제가 얼마 전에 소산오름에 갔다가 거기 계신 어머니들께 닭 한 마리가 걸어서 소산오름까지 왔다고 들었는데요. 그럼, 그 닭이 언니네 닭이에요?"
"아닐 수도 있지만, 아마 그럴 수도요."
나는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놀랐다. 얼마 전 나는 소산오름의 <뽀글 머리 어머니>께 "지난번에는 닭 한 마리가 혼자 뒤뚱뒤뚱 여기까지 왔는데... 그리고 여기서 며칠 살았는데, 요즘은 안 보여."라는 말을 들었었다.
그러니까 이 사건의 발단은 언니네 조카들이 호기심에 인터넷 사이트에서 달걀과 부화기를 사서 닭을 부화시켰는데 그 닭이 무럭무럭 커서 어른 닭이 되었고, 결국 집을 나갔다는 것이다. 언니가 닭을 찾아 여기저기 다니다가 소산오름 근처까지 갔는데, 결국 찾지 못하고 닭 털만 보고 왔다고 했다.
"언니, 그 닭 사진 저 보내주시면 안 돼요? 혹시나 소산오름 어머니들께 보여드리면 언니네 닭이 맞는지 확인해 주실 수도 있을 건데요... 근데 안타깝게도 그 닭이 요즘은 안 보인대요."
나는 소산오름에 자주 가니까 혹시 언니네 닭을 보게 된다면 어떻게든 찾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뽀글 머리 어머니>께서 요즘 닭이 안 보인다고 하신 말씀이 있어서, 아마 찾을 확률이 희박할 거로 생각했다.
"그러니까요. 지금 3주쯤 됐는데, 혹시 죽었을지도요."
나는 닭이 죽지 않았길 바라며, 언니의 말에 내가 <뽀글 머리 어머니>를 만난 게 아직 2주가 안 됐으니까 혹시 진짜 그 닭이 언니네 닭이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언니, 어쩌면 소산오름 닭 언니네 닭 맞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소산오름에서 만난 어머니가 닭이 혼자 걸어왔다고도 했고, 그 소식 들은 게 아직 2주가 안 됐어요."
나는 언니에게 최대한 자세히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맞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우리 닭. 그 닭 진짜 똑똑했는데... 찾으면 다시 데리고 오고 싶어요. 저희 아버지랑 같이 여기저기 찾으러 갔었는데, 닭 털이 떨어진 방향이 죽은 닭 털은 아니라고 하셨어요. 아마 어디로 간 것 같은데, 안 보인다니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언니는 내게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 닭 진짜 잘 생기지 않았어요? 우리 집에서 부화해서 그런지 다른 닭보다 잘 생겨 보이고 애착도 많이 가더라고요."
나는 언니가 보여준 사진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까만 깃털에 빨간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다른 닭보다 똑똑하고 좀 날렵해 보였다.
"언니, 이 닭은 좀 잘 생겼네요? 눈도 아주 까맣고요."
"그렇죠? 청계닭이라던데, 까매서 오골계 같기도 하고... 달걀 열 개를 부화기에 넣었는데, 그중 2개가 부화했어요. 키워보니까 닭은 부화할 때 알을 깨고 나오는 방향이 중요한가 봐요. 하늘 쪽으로 껍데기를 까고 나온 애만 살았고, 땅 쪽으로 구멍을 뚫은 애는 결국 죽었어요."
"그런 것도 있어요?"
나는 '그럼 부화시킬 때 계란의 방향을 잘 생각해서 넣어야 하는 건가? 아니면 병아리가 본능적으로 알아서 잘하고 나와야 하는 건가?' 하고 잠시 생각했다.
"네, 그렇더라고요. 이게 부화할 때 모습이에요. 다리가 진짜 롱다리지 않아요?"
언니는 내게 달걀 껍데기를 깨고 나오는 병아리 사진을 보여주었다. 사진을 가만히 살펴보니 얘가 위쪽으로 나온 게 아니라 옆으로 발을 길게 옆차기 하면서 머리로 옆으로 깨고 나오는 모습이었다. 태어나자마자 옆차기를 하면서 다리를 쭉 뻗고 나오는 모습에 닭의 긴 다리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근데 가만 생각해 보니, 언니는 내게 분명 병아리가 하늘 방향으로 껍질을 깨고 나와야 살 수 있다고 했었는데, 옆으로 깨고 나온 걸로 봐서 나는 이 병아리가 죽은 병아리라고 생각했다.
"얘가 그럼 죽은 병아리예요?"
"죽을래요? 산 병아리예요."
언니는 원래 화끈한 성격이다.
"정이 들어서 그런지 아니면 우리 집 병아리다 보니 그런지 얘는 무조건 잘 생겨 보이고, 머리도 좋아 보이고 그렇더라고요. 사실 닭이 지능이 있는 것 같은 게... 저를 잘 알아보더라고요. 베란다에서 키웠었는데 원래 우리 집 베란다가 진짜 크거든요. 닭이 산 뒤로는 빨래는 못 널긴 했는데, 이불은 어쩔 수 없잖아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베란다에 이불을 널어놓으면 얘가 꼭 그 위에 올라가서 똥을 싸요."
"네? 푹신해서 그런가? 왜 그런대요?"
"저는 모르죠. 저는 주의력이 부족해서 제가 들고 오다가 그랬나 했는데, 어느 날 제가 이불로 날아서 올라가는 범행 현장을 딱 발견했어요. 한 번 걸린 후로는 저를 피하는 눈치였는데... 한 번은 얘가 저를 보고 놀라서 슬라이딩하더라고요."
"슬라이딩은 왜 해요? 베란다에서 자기 똥을 밟고 미끄러진 거예요?"
"아뇨. 그게 아니라 얘가 저기서 뛰어오다가 저랑 딱 마주치니까 놀라서 방향을 꺾으려고 턴을 했는 데 그때 그대로 미끄러졌어요. 진짜 웃기지도 않아서."
언니는 닭이 있는 동안 온갖 청소와 빨래를 하느라 힘이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미운 정도 정이라고 막상 언니네 집에서 부화한 잘생기고 똑똑한 닭이 없어지니, 허전하다고 했다.
"그래서 다른 애완동물을 길러볼까도 했었는 데, 그건 아닌 것 같고... 그 닭을 찾으면 어떻게든 데려와서 잘 키워 보고 싶어요. 근데 닭의 수명이 7년에서 13년이라는 데 제가 계속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닭이 그렇게 오래 사나요?"
나는 보통 닭들이 1년 정도 사는 줄 알았는데, 7년에서 13년을 산다니 진짜 놀라웠다.
"조카들이 닭 데리고 나가서 산책시켜 주고 난리도 아니었는 데, 어제는 닭이 그립다고 너튜브에 닭 우는 소리를 같이 듣고 있더라고요."
“아... 진짜요?”
나는 왠지 닭을 그리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 안타까웠다.
"언니, 그 닭 사진 저한테 좀 보내주세요. 한 번 찾아볼게요."
나는 전에 수탉을 찾아 도두봉에 갔을 때 <도두봉에서 만난 이>에게 닭은 멀리 가지 않고, 생활반경 50m를 넘지 않는다고 들었던 적이 있다. 그럼, 소산오름 닭이 정말 언니네가 읽어버린 닭일까? 언니네 닭이 잘 생기고 머리도 똑똑한 닭이라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면 어쩌면 맞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소산오름 어머니께서 닭이 걸어서 소산오름까지 걸어 올라왔다고 하셨으니까... 어쨌든 나는 하루빨리 소산오름에 가서 닭의 행방을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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