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도 줄을 선다

욕지도를 다녀와서

by 대니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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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 대 섬에 들어가려 합니다. 예약 부탁드립니다.”

맛있는 커피집을 하는 친구가 쉬는 날 없이 일하다가 매달 25일만 일하고 나머지 5일을 쉰다고 했다.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며 한 달 내내 문을 열어야 했으니 지칠 만도 했다.

“박 사장, 우리 섬에나 가볼까?”

커피콩 배급 받기 위해 들렀다가 덜컥 잡은 약속. 오랜만에 가는 섬 여행에 한 달을 가슴 설레며 기다렸다.

친구는 따뜻한 커피, 시원한 커피 두 종류를 내려왔고, 나는 빵과 과일을 준비했다. 두세 번 다녀온 친구였지만 한 번 더 가도 좋다며 선뜻 나서준 게 고마웠다. 여덟 시 통영 삼덕항에 도착해서 표를 끊었다. 차를 운전해서 배로 들어섰다. 자잘한 요철들에 턱과 몸이 흔들렸지만 시원한 바람 맞으며 푸른 바다로 나설 생각에 콧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배 이층 바깥에 자리 잡고 준비해온 아침을 먹으며 좌우를 둘러보았다. 평일이지만 외국인 한 무리와 동창으로 보이는 어르신들이 계셨다. 모두 다른 모습이었지만 얼굴에 비치는 연한 웃음은 왠지 닮아 보였다. 엔진이 울리고 배에서 나는 특유의 기름 섞인 메케한 냄새가 올라왔다. 처음 가는 욕지도 여행길에 이마저도 향기롭게 느껴졌다. 연화도 우도 쑥섬 노대도를 지나 50분 만에 도착한 통영 욕지도. 지도에서 본 24km 섬 일주도로의 오른쪽으로 천천히 달렸다. 다섯 시간 남짓 남은 배 시간을 생각하면 더 천천히 달려야 했지만 맛있다는 해물짬뽕 한 그릇은 먹어야 섬을 다 봤다고 할 수 있으니 시속 30km로 맞춰놓고 바다를 둘러보았다. 흰작살 해수욕장을 지나 전망대에 차를 세웠다. 푸른 바다 너머 작은 섬들이 툭툭 떨어져 있었다. 물론 빼놓을 수 없는 낚싯배들도 남도 풍경의 일부였다. 멀리 해안 절벽 위에 작은 외딴집 한 채가 보였다. 상여도 삼례도 펠리칸 바위가 적힌 안내판 사진에도 그 작은 집이 있었다. 별장인지 아니면 영화에서처럼 귀양 온 선인이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호기심에 갸우뚱하다 어느 틈에 찾아온 허기에 서둘러 움직였다.


면사무소 근처 골목길에 사람들이 줄 서 있는 식당. 삼십 분을 기다려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욕지도에서 나는 해산물일 거라 믿고 먹은 얼큰하고 매운 짬뽕. 식도락 없는 여행은 정말 앙꼬 없는 찐빵이겠지. 허기를 채우고 출렁다리 두어 개를 건넜다. 40분가량 트레킹 하고 섬을 한 바퀴 돌았는데도 배 시간이 남아 친구에게 괜스레 미안해졌다.

“친구야, 너는 몇 번이나 이 섬에 왔는데, 이리 작은 섬인 줄 알았으면 오자고 하는 게 아니었는데 미안하다.”

“무슨 소리고. 나도 네 덕분에 바람 쐬고 맛있는 것도 먹고 그거면 충분하다. 친구야.”

고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조용했던 친구. 그의 커피 맛에 반해 친구 한 명과 함께 그에게서 커피를 배웠다. 커피에 관한 설명이나 커피 장비 기억이 하나도 남지 않은 걸로 봐선 커피를 배웠다기 보다는 어렸던 고등학교 친구 셋이 중년에 다시 만나 커피 향과 삶의 시간을 공유한 것이지 싶다. 지루하고 의미 없을 수도 있는 시간을 함께해준 친구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

차를 배에 싣고 오전에 앉았던 자리에 다시 앉았다. 들어올 때 보지 못했던 재미있는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방파제라기보다는 바다 한편에 만들어진 작은 담벼락이라 할 수 있는 곳에 적당한 간격으로 앉아있는 갈매기들이 보였다. 언젠가 어느 바닷가 다리를 건널 때 다리 위 가로등에 마치 제집인 양 갈매기가 한 마리씩 자리 잡고 있던 기억도 떠올랐다.

“규야, 갈매기도 줄 맞춰 앉아있네. 적당한 간격을 띄우고 참 신기하다.”

“맞다. 그렇네.”

국민학교 때는 ‘앞으로나란히’, 중고등학교 때는 ‘양팔간격 벌려’가 친구들 사이의 적당한 간격이었다. 대학교 때는 음… 술잔 부딪히며 왁자지껄한 대화와 주변 소음 속에서도 서로의 말이 들릴 만큼이 그것이었다. 사회에서는 별로 신경 쓰진 않았지만, 의미 없는 말로 다가오면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면 그만이었다.

어떤 책에서는 45cm에서 120cm 사이가 서로에게 부담되지 않는 적당한 거리라고 했다. 나무 두 그루가 너무 가까이 있으면 균형 있게 성장하지 못하고 위로만 자라듯이 사람 사이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데 그것이 1m 안쪽이란 것이다.

몇 번이나 다녀온 섬인데도 기꺼이 시간과 공간을 같이 해준 친구. 그가 허용해준 간격이 60cm 정도 된다면, 나에게 건넨 그의 말 한마디는 이미 45cm에 닿은 것 같다. 오늘 하루 내가 건넨 말 한마디도 기꺼이 45cm에 닿았기를. 줄 맞춰 앉아 있는 갈매기 무리에게 손 흔들며 욕지도를 떠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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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위 작은집이 보이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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