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수많은 덕후 중 하나
세상엔 다양한 덕후들이 있다. 개발이 게임처럼 좋다는 개발자 동료는 실은 커피 머신들을 섭렵하고 매해 커피 엑스포까지 방문하는 커피 덕후다. 얌전한 얼굴로 소곤소곤 말하던 한 인턴 친구는 뭘 좋아하냐는 물음에 상상도 못 한 "등촌칼국수요.."라고 하며 등촌칼국수 덕후라 말했다. 나의 동년배들은 한번쯤 품고 사는 해리포터, 이를 추앙하는 덕후들도 많이 보았다.
실제로 보진 못했으나 들어본 것 중에는 돌 덕후부터 내로라하는 명품 덕후까지. 다양하고도 다양한, 많고도 많은 덕후들이 함께 살고 있다.
덕후는 이렇게 탄생한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모를 어떤 순간, 신경을 자극하는 도파민이 뿜는 경험을 한다. 한 번으로는 족하다. '그 경험이, 우리 만남이 행복이었나?'라는 의문으로 몇 차례 더 반복해 본다. '그래, 이것은 나의 행복이다!'라는 걸 깨닫는 순간 깊게 빠지며 그렇게 덕후는 탄생한다.
덕심에는 행복만 존재하는 줄 알았다. 행복을 느껴 속수무책으로 빠지고 계속 찾게 되는 줄만 알았다. 나의 그 주체는 분노와 슬픔을 줄 때도 있다. 이제 알았다. 긍정적인 것뿐만 아니라 격한 감정들이 도파민으로 반응한다. 실제로 도파민은 심장박동수와 혈압을 자극한다고 한다. 그러니 심장박동수와 혈압을 자극하는 이것이 행복이 아니어도 날 덕질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한 축덕은 이렇게 태어났다.
사춘기를 겪는 아니 앓는다는 표현이 맞을 무서운 중학생 시절, 다른 친구들은 아이돌을 좋아할 때 한 축구선수를 좋아하면서였다. 어디서 봤는지도 기억도 안나는 사진들을 통해 카리스마 넘치고 잘생긴, 심지어 별명도 무시무시한 '진공청소기'라는 한 선수에게 빠졌다. 실제로 보고 싶었다.
운명이었다고 믿는 지점, 그 선수는 수많은 팀들 중 나의 고향에서 뛰고 있었다. 알고 보니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팀 선수였던 것이다. (서사를 만드는 중). 친구들을 겨우 꼬셔 축구장에 갔다.
이게 무슨 일인가. 손가락만 한 사이즈로 보이는 그 선수, 보고 싶던 얼굴은 당연히 구경 불가였다. 그러나, 알다시피 덕후는 우연히 만들어진다. 작고 작아 보이는 선수들은 제치고 어마어마하게 커 보이던 존재가 눈에 들어왔다.
서포터즈였다.
이런 경험은 난생처음이었다. 장내 아나운서가 선수를 소개한다.
"넘버 파이브, 김남일!"
그들이 외친다.
"남!일!"
그때까지 알고 있던 유일한 경기장은 해리포터 퀴디치 경기장이었다. 그보다 멋진 곳이 여긴가? 낮고 낮은 저음으로 강하게 외치는 선수들 이름, 90분 내내 선수들과 함께 뛰며 부르는 응원가까지. 다신 없을 충격이었다. 나의 고향에 이런 곳이 있었나? 몇 만 명이 들어선 경기장, 그 모두를 압도하는 그들의 응원 소리까지. 그날 그렇게 한 축덕이 태어났다.
나의 꿈은 모두
축구로 시작해 축구로 끝났다.
축구선수를 제외한 모든 관계자가 되는 상상을 했다. 성공한 덕후가 되고자 했던 꿈, 대학교 때까지도 최선을 다해 이곳저곳에서 나만의 꿈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축구 동아리도 하고 여러 대외활동, 축구협회 계약직까지.
어느 순간부터 난 업계에서 일하고자 하는 사람일 뿐, 덕후는 아닌 척했다. 나의 태생이 부끄러웠다. 특히 한 '잘생긴' 선수가 좋아서 시작했다는 과거. 가뜩이나 여자가 없는 그곳에서 선수를 좋아해서 축구를 좋아하는 건 말해봤자 무시만 당할 것 같았다. 괜히 자존심이 상했다. 숨겼다. 덕후는 탄생했으나 본인이 '덕후'라는 걸, 그 단어를 기피했다.
그러다 팬으로 시작해 꿈이 되어버린 그곳에서 이런저런 일을 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지만 스포츠 산업에 지친 내 마음은 꺾였다. 그렇게 순수한 팬으로 경기를 관람하는 것 마저도 잠시 멀어졌다.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무엇을? 축덕이라고 인정하기까지. 이제 알았다. 행복이 아닌 슬픔을 주어도, 분노를 느껴도 다시 찾는다는 걸.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내 팀의 덕후라는 것을 깨달았다. 햇수를 세어보니 17년이다. 10대가 30대가 될 때까지. 작은 마음으로 혹은 큰 마음으로 이 팀과 이렇게 세월을 보내왔다.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다시 찾은 경기장. 더 어려워진 내 팀. 우승을 논하던 팀이 강등을 논하는 팀이 되어버린 나의 팀. 아이러니하게도 이 상황이 슬럼프를 겪던 나를 위로해 줬다. 나이는 어른이 되었지만 다른 이유로 여전히 방황하고 더 잘하고 싶어서 발버둥 치는 나처럼. 이 팀의 고통이, 지금의 어려움이 나와 동일시 됐다.
"당신과 나는 오늘부터 하나가 되었습니다."처럼 하하. 더 응원해주고 싶었다. 작은 목소리를 보태주고 싶었다. 작년보다 올해가 더 힘들어질 줄은 몰랐지만. 어쩌다 보니 매일 이 팀을 생각하던 어린 시절만큼 좋아하고 있다. 아니, 돈이 없어 비싼 유니폼은 사지 못했던 어린 시절과는 다르게 시간과 돈을 쓰며 좋아하고 있다.
그렇게 덕후는 다시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