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보러 가는 거 아니고 노래 부르러 갑니다
엄마는 노래교실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 이후론 눈이 마주치면 뜬금없이 "오늘이 가장 젊은 날~" 혹은 "새로운 시절인연~"을 풍부한 표정으로 부르곤 했다. 그 모습이 재밌어서 때론 엄마의 선창에 후창을 자처했다.
엄마는 실행파다. 모든 마음먹은 순간,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행동한다. 마음을 먹고서도 미루고 미루다 뒤늦게 하는 나와는 정반대다. 어느 날부터인가 노래를 잘 부르고 싶다고 했다. 말을 하고서 며칠이 지나지 않아 노래교실을 찾았다.
한동안 부르지 않았다. 젊은 때엔 합창단까지 했지만 노래를 놓은 지 오래였다. 갑상선 암, 그 이후부터였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내게 엄마가 말했다. "다행히 초기라 수술하고 약 계속 먹으면 괜찮대." 많이들 걸리는 갑상선암이라 해도 '암'이라는 단어에 괜히 내 탓인 것 같아 친구들 앞에서 펑펑 울었다. 그 이후론 노래하는 게 자신이 없어졌다고 했다.
십 년이 훌쩍 지난 언젠가 노래를 잘 부르고 싶다고 했다. 사실 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곳저곳 다양한 지역 단체에 가입해 활동한 때였다. 힘든 일을 겪고선 정신없이 살아야 잊히겠다며 여기저기를 일을 벌이며 다니셨다. 그곳에선 행사가 있을 때면 그렇게 노래를 시킨다면서 질색하다 결국은 자신 있는 18번을 하나 만들어야겠다고 했다.
그렇게 찾은 노래교실이 일상의 일부가 됐다. 다른 일들이 생겨서 참석이 어려워져도 노래교실은 잠깐이라도 꼭 들르신다. 왜? 재미있으니까. '신난다.' 그 한마디로 정리된다. 흥얼거리던 노래가 언젠가부턴 제법 기교도 늘고 표정까지 풍부해져 과장을 보태 흡사 가수라 해도 될 정도가 됐다. 차 안에서 노래를 불렀더니 아빠께서 "아이고. 이제 꽤 부르시네요?"라고 했다며 자랑도 하셨다.
"젊은이를 위한 노래교실 없나? 나도 가고 싶다. 부럽다!" 엄마의 자랑을 듣다 이렇게 말했는데. 있지! 나한테도. 일주일에 한 번 가는 노래방이자 노래교실! 그곳이 바로 경기장인 걸?
수줍고 소심하던 난 가족 앞에서 한 번도 노래 한곡을 제대로 불러본 적이 없다. 서른이 넘고서야 엄마랑 단둘이 처음으로 노래방을 가봤다. 세월이 지나니 별의별 이야기를 엄마 앞에서 할 수 있는 성인이 되었다. '노래 정도야 뭐 못 부르든 잘 부르든 즐겁기만 하면 됐지.' 이런 마음으로 노래방 벽에 붙어있는 Top 100 중 그나마 많이 불러 본 김범수의 '보고싶다'를 불렀다.
그날 이후로 우리 엄마는 내가 노래를 잘 부르는지 몰랐다며(상대적으로 말이지). 왜 여태껏 보여주지 않았냐면서 아빠에게도 "얘, 노래 꽤 부르더라?"라고 하셨다. 물론 유독 그날 음이 잘 올라갔다. 약간 레이백을 주는 박치던 내가 템포조절도 좀 되었고 말이야. 무엇보다 작은 목소리였는데 성량이 늘어 자신 있게 음을 올렸다. 하하.
노래가 왜 늘었지 생각해 보니 그 노래방을 열심히 다니고 나서부터였다. 우리들 사이에선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축구 보러 가는 거 아니고 노래 부르러 갑니다." 그래서 이렇게도 말한다. 홈 경기장 별칭이 '빅버드'인데 이곳을 때론 '빅버드 노래방'이라고 말이다.
(*수원월드컵경기장의 별칭인 '빅버드'는 경기장 외관이 마치 새 모양 같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노래방 위치는 N석이다. 서포터즈석이라 불리는 N석에선 경기 시작 15분 전부터 경기 종료 후 약 5분까지 쉬지 않고 노래를 부른다. 거의 두 시간을 모두 일어서서 부른다. 이 노래교실의 선생님은 콜리더다. 응원하고 응원가를 부르는 행위를 콜이라 하는데 수많은 서포터를 이끌고 응원을 주도하는 사람을 콜리더라고 부른다. 서포터석 가운데서 콜리더의 외침과 연주가 들리면 모두가 함께 따라 부른다.
이 모습이 그 어린 학생의 눈을 번뜩이게 하고 오랫동안 빠지게 했다. 처음 N석에 진입하는 건 쉽지 않았다. 좋게 말하자면 열정적이지만 그 반대일 땐 비이성적으로 보였다. 때론 무시무시해 보이기도 했다. 아주 가끔 N석에 도전하면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욕설파티에 '에잇. 다시는 여기 안 와.' 하며 피했다.
코로나 이후였을까. 번아웃을 겪고 힘든 일을 겪었다. 정신없이 살기 위해 이곳저곳을 찾던 엄마처럼 무언가를 잊기 위해 다시 축구장을 찾았다. 두 시간 동안 휴대폰은 잠시 넣어두고 푸른 잔디를 보며 크게 외친다. 스트레스는 사라진다. 신나고 재미있다.(물론 경기 내용에 따라 다르기도...) 세상살이에 찌든 어른이 되어서인지 N석의 무서움은 사라졌다. 이 세상엔 N석보다 무서운 일이 많은 걸.
팀 또한 내려가는 성적처럼 팬들의 다소 위압적이던 기세도 차츰 꺾였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의 분위기는 전보다 건전해졌다. 과거에는 20대 남성이 많아 보였지만 현재는 말 그대로 성별, 나이 무관이다. 주축을 이루는 20-30대부터 가족과 함께 오는 40-50대, 이들이 축구를 볼 땐 항상 못했을텐데 어떻게 이 팀에 빠졌는지 모를 초등학생들도. 함께 즐기는 문화로 바껴가고 있다. 합창단으로 보면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가 모두 생겨 노래 또한 한층 더 풍성해진 기분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왜 인지 모르게 어떻게 해야 노래를 크게 잘 부를지 고민한다. 목보다는 배에서부터 우러나오게 불러야 한다. 첫 음은 너무 높지 않게 잡아야 완창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자신감이 중요하다. 뒷좌석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삑사리가 나도 크게 부르던 팬을 보며 또 배웠다. '그래, 역시 자신감으로 밀어붙여야 해!'
몸도 써야 한다. 한 팔을 살짝 90도로 굽혀 어깨 위치에 든 다음, 문을 두드리듯 팔을 앞뒤로 흔들어야 한다. 처음엔 이 손을 올리는 게 매우 어색했지만 지금은 이곳에 있다면 아주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이 모든 걸 두 시간 동안 서서한다면 유산소 운동이 따로 필요 없다.
땀을 뻘뻘 흘리며 공연을 끝낸다. 다음날 목 상태를 보고 전날 퍼포먼스가 어땠는지 평을 내린다.
"아, 목이 좀 칼칼하네. 다음 경기 땐 복식호흡에 더 신경 써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