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이탈 ㅣ 2200자, 다 썼는데요
글을 빠르게 쓰는 천부적인 능력을 함양하셨다면 이번엔 생각의 속도만큼이나 더 빠르게 쓰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생각의 속도를 모두 부여잡을 필요는 없고요, 적당히 여과하여 생각 중에 가장 빛나는 생각을 글로 만들어 봅시다. 비약적인 글의 탄생을 예고하면서요. 글을 쓸 때는 일단 자신의 생각을 속시원히 털어놓을 필요가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나도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을 탑재합니다. 그냥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때는 내 생각이 맞는지, 글의 양식이나 맞춤법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순한 긍정이 아닌 낙천적인 생각으로 밀어붙입니다. 내 생각이 글로 표현되면 더 멋있어질 거라고 기대하며요!
제목을 정합니다. 보기 좋은 사진을 먼저 골라도 좋습니다. 장면 전환 효과라고 부르겠습니다. 가만히 책상에 앉아서 별다를 것 없는 나의 일상과 어제와 똑같은 하루에 어떤 글을 쓸까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뉴스를 들여다봅니다.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 비극과 감동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습니다. 어렵습니다. 슬프기도 합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열망도 듭니다. 마음이 급해집니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본인의 일상을 되돌아봅니다. 갑자기 단조로운 내 일상에 감사합니다. 마음이 안정화됩니다. 지금 여기서는 어떤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빠르게 글쓰기'의 공간일 뿐이니까요.
글을 씁니다. 주제가 달라집니다. '전쟁과 가난과 복지', '정치와 연예인과 사랑', '로맨스와 드라마와 SF'. 장르가 다채로워집니다. 상상을 덧붙이기 시작합니다. 보이는 것 너머를 쓰고 싶어 집니다. '나는 밥을 먹지만 여긴 내가 가고 싶었던 룩셈부르크다' 갑자기 소설가가 됩니다. 블로그 기자단이 될 충분한 자격을 얻었습니다. 블로그 기자단으로 내가 쓴 글로 돈을 벌 수 있게 됩니다. 2500원에서 3만 원 등의 다양한 금액으로 자신의 글을 돈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시시해 보인다면 글 쓰는 마케터가 돼도 좋습니다.
글쓰기를 시작할 때, 일기로 습관을 가장 많이 만들곤 합니다. 일기는 일상을 시간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하루 중에 가장 의미 있었거나 기억에 남는 것을 씁니다. 하지만 그런 게 전혀 없다고 생각될 때는 ' 아침 몇 시 몇 분에 일어났다.' 이렇게 시작하는 거예요. 그리고 무엇을 먹었는지, 어떤 옷을 입고 샤워는 언제 했는지 일거수일투족을 씁니다. 곧 지겨워져서 좀 다른 일상을 꿈꾸게 됩니다. 약속을 잡기도 하고 밖에 나가 산책을 해봅니다. 자연이 글감이 됩니다.
새로운 일상이 들어가게 된다면 느끼는 감정이 달라집니다. 새 감정들이 새로운 표현으로 이끕니다. 낙엽이 떨어질 때 우는 까닭은 이유를 생각할 수 없어서입니다. 헤어짐의 이유나 작별의 이유를 받아들이지 못할 때일까요? 그건 저도 모릅니다. 질문이 다시 달라집니다. 낙엽의 낙하 상태에 대한 근거는? 감수성이 풍부한 여고생은 '이유'라는 단어 대신 '까닭'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낙엽은 저에게 초등학생 때의 문학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입니다. 국민학교를 다녔던 그 시절이오. 그 시절의 감정이 만들어낸 글을 써보겠습니다.
/ 감정은 돌이켜볼 때 생겨나는 무엇이다. 뒤돌아 보지 않으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우는 까닭은 이유를 몰라서가 아니라 뒤돌아 보기 싫은 어떤 것들에 대한 생각을 잊고 감정만 기억하기 위해서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뇌가 알아서 쓰레기통으로 보내준다. 분리수거가 잘 되었기 때문에 나는 그때 그냥 운 거다. 그러니까 그때 내가 왜 울었는지 뒤돌아보고 이유를 찾지 않으련다, 이제는. 나는 긍정의 상태에 다다랐다.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하여. <감정이 만들어낸 글>
하지만 곧 이성은 우는 것을 멈춰 달라고 합니다. 종교라도 믿어보라고 합니다. '기도라도 해!'라며 감정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한 여러 가지 생각들이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청승맞다거나 주책이라는 말은 부정어가 아닌 지 오래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본인 스스로 입에 잘 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거니와 사랑받을 수 없는 자는 신이 가장 두려워하나니 본인을 미워하는 순간조차 진실로 자신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 임을 하늘의 크기만큼이나 만연하게 핀 봄의 꽃만큼이나 이내 곧 알게 되기 때문. <감수성 짙은 한국인과 종교를 믿는 한국인 : 종교와 사계절의 연관성>
비판적 글쓰기의 시작
" 벼는 익을 수로 고개를 숙인다.”
" 한국인의 겸손은 자기애의 표현이다. "
거슬리는 어떤 문장을 발견합니다. 그 문장을 봅니다. 문장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씁니다. 왜 싫은지, 혹시나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는지도 알아봅니다. 겸손이 중요한 인성의 덕목인지 아닌지 살펴봅니다. 오히려 상대를 기만하는 일은 아닌지. 어느 다큐멘터리에서는 한국인은 유난히 믿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상대의 말을 귀담아듣는 경청의 달인이나 상대의 말을 믿는 국가라는 겁니다. 특히나 그럴 사람에게 겸손이라는 이유로 무언가를 말할 때 누군가는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책, '세계 1등은 다르게 일한다'에서는 새로운 속담이 등장합니다. "초가삼간이라도 태워서 빈대 한 마리를 잡자."라는 기존의 속담을 변형시켜 돈키호테 격 전략이 탄생합니다. 말도 안 될 만큼 완벽성을 추구하겠다는 겁니다. 책, '디즈니만이 하는 것'에서는 '조금 다른 것'을 완벽하다는 것으로 여깁니다. 앞의 이야기는 진짜 완벽성을 변형된 속담으로 표현했고, 뒤의 완벽성은 완벽하다는 의미를 재해석한 것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겸손의 재해석이자 변형된 표현은, 모든 한국인과 저희 집에 오는 손님에게 대접하고 싶은 겸손은, '얼마나 드실지 몰라서 차린 것이 많습니다.'입니다.
여기서 제가 외식 경영자라면 '양해 바랍니다. 국내산만 사용하여 깍두기가 4개만 나갑니다. 죄송합니다.''라며 메뉴판에 크게 표기를 할지도 모릅니다. 차린 것이 없어 보여도, 손님에게 사과를 하면서도 당당하게 장사를 할지도 모릅니다.
에세이 작가로서의 한 걸음
전문성 있는 글로 보이는 방법은 프레젠테이션을 잘하는 방법과도 유사할까요? PPT의 전문성은 숫자, 데이터를 보여주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일상의 글에서 숫자는 날짜와 시간입니다. 일기는 전문성을 드러내는 글이 아닙니다. 일기가 전문적 일 필요는 없지만 비슷해 보이는 일상의 글들을 조금은 다르게 표현한다면 문학적 가치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지금 제가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은 오후 0시 00분입니다. 모든 시간을 알차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독자들을 끌어당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전의 일 : 커피를 마십니다. 커피에 대해서 써봅니다. 커피를 마시는 장소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바리스타 친구를 떠올립니다. 자주 가는 카페, 창가의 배경, 그때 찍은 사진들을 떠올려봅니다.
오후의 일 : 침대에 눕습니다. 침대는 가구인가 생각합니다. 가구를 팔거나 구매할 생각을 해봅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판매자의 수고로움 등을 떠올려 봅니다. 잠자는 시간을 바꿀까도 생각해 봅니다.
오전/오후 정도로만 나눠도 일상의 주제가 풍부해집니다. 오전의 일과 오후의 일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라는 것이 글 쓰는 입장에서 가장 큰 고민이거든요. 그런 고민이 나눠진 시간으로 사라집니다. 에세이 작가가 되는 첫걸음이 아닐까요? 알파벳을 알면 읽을 수 있듯이 다양한 주제(글감)를 알면 글도 자연히 쓸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진정성: 진짜 당신의 마음이 들어갔습니까?
가짜 공감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왜 진정성은 글 잘 쓰는 사람의 무기가 될 수 일을까요? ‘네 말이 맞아.’해놓고 실제는 그렇지 않다면 큰 실망을 일으킵니다. 진정성은 본인이 정말 느꼈던 그대로를 쓰기 때문에 그 마음이 타인에게 전달되는 것이 확실해집니다. 마음의 작용에 관해서는 심리학 박사가 아니라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이미 문장에 담긴 마음이 크기를 내심 간파하곤 합니다. 오타가 많더라도 표현이 유치하거나 미숙하더라도 쓴 사람의 나이나 당시의 환경, 심정을 조금이라도 고려해 본다면 한 두 문장으로 감동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진짜 공감이 필요하더라도, 그 공감을 받더라도 문제의 해결책은 되지 않습니다. 글을 잘 써야 한다는 정당성을 줄 순 있겠지만 진짜 잘 쓰게 만드는 글은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까요? 쓰지 않으면 결국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글은 자기 계발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무조건 글을 잘 쓰는 사람이다. 나는 한국어를 할 줄 알고 늘 생각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한다 해서 책상에 앉는데 까지 걸리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도 모릅니다. 이럴 때 마감기한이 있는 글쓰기는 큰 도움이 됩니다. 어쩔 수 없이 어떻게든 글을 쓰는 상황은 우리를 정말로 쓰도록 합니다.
글을 쓰는 상황엔 주제가 주어집니다. 선례를 살펴보는 방법이 도움이 되겠지만 자칫하면 본인의 색깔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대신해서 자신의 경험을 특별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특별하게 바라보는 연습, 생각들.>이라는 글을 살펴보겠습니다.
일상을 특별하게 바라보는 연습, 생각들.
가장 가까운 곳에 앉는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 잊는다. 잊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알지 못하는 세계에 들어왔다. 잊을 수 없지만 잊을 수 있다고 문장으로나마 믿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특별한 생각은 없다.
가장 먼 곳에 앉는다. 특별히 잘하는 것은 없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지만 앉을 곳이 있다는 여기, 어딘가에 무한히 감사한다. 감사의 마음을 주체할 수 없을 때, 내 마음이 어여뻐서 저장해두면 안될 때 재빨리 메모장을 찾는다. 이 생각은 특별해!
감사하면서 구토가 반짝였던 경험을 다시 떠올린다. ‘술을 몇 번이나 먹고 구토를 진짜 했었는데’ 하며 누군가 내 머리를 쥐어박는 생각에 짠하다. ‘아직 우리 아빠 힘이 세신걸?’ 새로운 상상 속 감사에 어처구니없게도 눈가가 촉촉촉. 귀여운 말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