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색깔 | 블로그에 일기 씁니까
그림일기의 부활 ; 사진일기
원하는 글씨체를 골라잡는다.
색도 크기도 마음껏!
일기를 쓰면 좋은 점 ; 모범상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질서를 지키는 어린이로 자란다. 일기의 특징이 하루를 되돌아보게 되기 때문에 그날 느꼈던 일들 중에 가장 좋은 점들을 상기하면서 기쁨을 두배 얻는다. 반대로 속상한 일들에 대해선 모두에게 알리게 되어 고자질을 피할 수 있다. 때로는 그냥 썼다는 이유로 상을 받는다. 한 바닥을 채우면 얻게 되는 ‘보람’이라는 감정은 내 거.
손으로 일기를 쓸 경우 ; 알아볼 수 있는 글씨체를 만들게 되면서 수업 필기하기가 쉬워진다. 편지 쓰는 시간을 환영하게 된다. 하지만 영 악필이라면 그냥 키보드를 두드리면 된다. 원하는 글씨체를 골라잡는다. 색도 크기도 마음껏!
초월적 글쓰기란
이 날 나는
세상의
모든 법칙을
알고 싶었다
글을 쓸 때 때로는 의식하기도 전에 내 생각을 뛰어넘기도 한다.‘모든 법조사항’이라는 글은 당일 일기가 아니다. 이 날 나는 세상의 모든 법칙을 알고 싶었다. 하지만 그때를 떠올리며 끄적이다 보니 서면의 지하철까지 시선이 이동했다. 재밌게도 법을 공부했던 시즌에 글을 써서 그런지 모든 법칙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의 소리가 ‘모든 법조사항’이라는 제목을 낳게 했다. 말투도 평소와 다르게 썼다. 이유는 찾지 못함.
뉴스를 소재로
뉴스를 본다. 내가 관심 가는 분야를 검색한다. 읽기 좋은 글을 먼저 읽는다. 그러다 따뜻한 환대라는 좋은 언어를 만난다. 내 생활에 어디에 쓰일 수 있을까. 좋은 언어를 잊지 않게 만드는, 외국어를 익히는 방법을 쓴다. 반려견을 생각해낸다. 항상 따뜻한 환대로 주인을 맞이하는 강아지! 어느 기업의 좋은 뜻이 우리 집 강아지의 견생 철학을 만들어 낸다. 뉴스 속 문장이 내 것이 될 수 있도록 다르게 표현해보고 다르게 써보고 다르게 응용해본다. 자주 보는 뉴스는 매일경제/뉴닉/한국경제 뉴스레터/한겨레 뉴스레터.
뉴스 보는 게 일상이 되면 일기가 비일기가 된다. 일기 안에 내 소비생활, 경제가 드러난다. 한국의 경제와 나의 살림, 밑천, 생활 스타일이 보인다. 치킨을 누구와 어디서 어떻게 얼마에 먹는가. 타인의 언어에 에세이 아닌 것이 없게 된다.
6,900원짜리 마트치킨이 인기라지만
20,000원(19,800원)을 더 많이 사 먹는 이유
내가 먹었던 마트/슈퍼 치킨은
두 번을 기약하기 부족한 맛이었다
보통 우리 집(3~4명 기준)에서 먹을 땐
치킨 한 마리를 다 먹지 못한다 (소식좌라서?)
느끼해서 적당량을 채우지 못하는 걸까?
우리 집은 늘 남겼고 다음 날에 다시 손이 간다
6,900원짜리는
오늘 샀던 걸 3시간 뒤에 먹는 기분이었다
다음 날 먹기에 조금 부담스럽다
결국 한 끼의 식사로 충분한가 따졌을 때
치킨 브랜드의 것을 먹는 게 나에겐 이득이다
20,000원의 치킨을 산 게 아니라
10,000x2 day로 계산하면
6,900원 을 (간식 느낌) 하루에 다 먹는 것보다
경제/시간 적으로 이득을 얻게 된다
6,900원이 인기 있다는 말이 사실일까?
뉴스는 사실 값이 있으니까 뉴스다
하지만 우리가 눈에 바로 보이는 것을 산다면
내일 다시 먹을 일이 없는 치킨을 생각해야만 한다
ex. 캠핑장에 갔을 때,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8월은 휴양의 계절이다, 뉴스는 사실을 말했다
잘 읽히는 글
글은 읽는 사람이 누군가인가를 어디서 글을 보는 가에 따라 잘 쓰는 글을 넘어 잘 읽히는 글이 탄생할 수 있다. 오디오북을 겨냥하고 글을 썼다면 글을 쓸 때 무엇이 달라질까요? 위의 두 글은 블로그형 글쓰기라 할 수 있다. 모바일로 보는 것이 최적화된 글은 종종 문장이 완성되지 않았지만 행이 달라진다. 정보를 빨리 읽고 싶은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방식의 글이다. 첨부된 기사나 사진들로 여러 가지 정보 제공도 쉽다. 책을 읽는 것과는 또 다르게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얻게 된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지하철에 앉아 있다 보면 밖이 보이지 않듯이 잘 읽다가 홍보성 글인 것을 전혀 모를 때도 많다. ‘내돈내산’을 써야 할 만큼 포스팅이 마케팅이 되고 있다. 그렇다고 제공된 글만 쓸 순 없다. 우리는 진짜를 결국 따르게 되고 좋아한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필요는 없다.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해준다면 그건 마케팅된 글이더라도 의미 있는 읽기 활동이 된다.
리뷰하는 것들 : 서와 맛
책을 먹는 게 아니 책을 읽고 먹은 것이 주된 일상이라면 그날 읽은 책과 그날 맛본 것을 평가하는 글을 쓴다. 다시 비일기(에세이)가 된다.
나 이제부터 책 소개 넘어 빵 책 소개한다. 나 빵순이는 아니고 싶다, 빵은 밉지 않을 뿐이다. 책 소로보 크림빵은 출판사 파리바게뜨에서 출간됐다. 저자는,,,? 누군가 소보로 안에 최초의 크림을 넣었을 텐데 성함이,,, 저자는 기업(SPC)으로 돌리자. 치킨 같은 소보로 본격 리뷰해본다.
하얀 눈 덮인 소보로 빵은 한 더위 크리스마스를 연상케 한다. 소보로에 보이는 슈가, 이거 뿌려진 소보로 흔치 않다. 크림이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그냥 소보로빵보다 알게 모르게 손이 갔을 만한 비주얼이다. 이미 빵맛이 무엇인지 아는 내게 슈가까지 있다니. 구매욕 +2 상승한다.
크림의 맛이 도넛과 비슷했으나 크림의 양은 그보다 작았다. 생각해보니 왜 많아야 되나? 홈트의 시대에서는 너무 많은 양의 크림과 밀가루 섭취는 좋지 않다. 실망할 것 도 없다. 질소 포장이 아니란 얘기다. 건강을 ‘먹지 않으면서 고려한’ 웰빙 빵으로 여겨도 되겠다. 지금 3~4번 한 입 먹는데도 크림을 전혀 흘리지 않고 먹고 있다. 어째서? 흘린 크림도 집어 먹고 싶은 내 두 손가락의 수고로움을 없애주기 위함일까?
이 책 소보로빵은 독자의 가치를 극대화시켰다. 도넛 가게의 상승세에 빵이라는 본질을 놓치지 않고 크림에 기죽지 않는 소보로라는 제품의 절대 기능까지 잃지 않으며 존재감을 빛낸다. 개인의 가치와 일치화다.
혹여나 흘릴 크림 마저 보존하기 위함일까? 아니면 혹여나 흘릴 소보로 가루(?) 라도 바닥에 양보하지 말라고 저 물결치마 모양 접시를 함께 빵 봉지 안에 넣어 뒀을까. 배려가 소비자의 소비를 촉진시킨다.
이때 난 다른 책 한 권이 떠올랐다. 빵과 어울릴만한 책 추천은 절대 아니다. 그건 너무 비위생적이다. 나는 소보로, 손을 쓰고 먹었다. 책과 함께 할 수 없다. 거짓말이었다. ‘작지만 반짝반짝’ 과함께 하고 있다. ‘작지만 반짝반짝’. 소보로에 크림이 들어간 것이 특이사항이듯 책의 속지가 핑크색일 확률도 반짝인다.
꿈의 세계에서 조차 나는 법을 지키고 싶다. 빵과 꿈의 공통점은 shift 발음이 들어간다, 외자다, 다의어다. 저자는 꿈에서 현실에서와 다르게 러시아워 없는 드라이브를 즐긴다. 자각몽의 상태를 고백한다. 자각이란 현실에서도 가능하다. 빵을 먹는 속도를 자각한다면 러시아워 없는 드라이브처럼 살찔 염려 없는 미식가가 될 수도 있다. 내가 지키고 싶은 법은 꿈의 세계에서 장발장이 되지 않는 것이다. 갑자기?
장발장과 빵과 이 책과 파리바게뜨는 유사성이 많다. (어디에서?) 동네 빵집의 상권은 마트와 시장의 대립구조에서 공정거래위원회의 경쟁을 부추긴다. 아르테라는 출판사는 계열사일까 독립출판사 일까. 독립은 아니고 북이십일의 브랜드다.
장발장은 사실 빵을 훔친 적이 없고(어린애의 생계수단이라 해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가만히 있어도 위협적이다. 경영학적 접근으로 보면 위협은 위협일 뿐일 테지만 자기 계발적 분야로 넘어가면 기회의 요소가 된다. 기업이 가만히 있는다고? 네! 기업이 강한 것은 근로자에게 돌아가는 복지 덕분이다. 마트와 시장이 또 한 번 붙는다. 나는 시장에도 천장이 생겼으면 한다.
그래서 말인데, 장발장이 파는 빵은 인기가 많다. 장발장의 빵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것일 때 이미지는 만들어질 수 있다. 대기업은 그것에 강하다. 그러나 음식은 real 먹는다. 전지현이 될 것 같아서 소보로를 사지 않는다. 파리에 온 것 같아서 빵을 먹진 않는다. 작지만 반짝반짝 저자 이공 출판 아르테를 읽고.
*맛있으면 소비할 뿐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타가 있다면 직접 고치겠습니다. 있어도 놔둔 것 인지도 모릅니다. 어떤 댓글은 누군가에게 아픔일 뿐입니다. 큐피드의 화살이요.
쓰면서 쓸 주제를 찾는다
나와 오타, 다이어리
2021. 11. 25. 1:10 ・ 비공개
풀푸루출풀풀. 요즘 나는 오타 하나에도 예민하게 구는 예민 보스가 되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쓴다… (오타가 또 생겨버렸다) … 그래도 일단 써본다. 으흠! 며칠 전 산책을 했다. 자주 가던 곳인데 며칠 사이에 더 멋진 곳으로 변해있었다. 세상의 발전 속도를 간접적으로 체감하는 하루였다. 하하하
요전의 나는 모든 맞춤법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편이다. 반대로 오타가 힙하게 느껴질 만큼 쿨하게 보려고도 했다. 그런데 오늘 오타를 보니 영… 마음에 안 든다. 뭐 어차피 누가 그렇게 볼까 싶어 관종의 미를 꾹꾹 누른 채 다이어리를 쓴다. 다이어리… 를 쓴다. 나는 쓴다. 쓰고 싶어 나는 쓴다. 쓰면서 쓸 주제를 찾았다.
작년 연말의 나는 예쁜 다이어리를 하나를 예쁜 마음으로 예쁘게 쓰다가 지저분하게 만들어버렸다. 초반에는 예쁜 글씨체로 꾹꾹 담아 쓰다가 글씨체보다 나중에는 쓰는 것 자체에 더 큰 의미를 뒀다. 이때 다이어리의 큰 효력을 경험했다. 안 좋은 일이 있었는데 하루에 할당된 칸마다 감사한 일들을 찾아내며 그 일을 극복하는데 힘을 주었다.
우리가 오타를 쓰는 이유는 뭘까? 오타는 쓰는 게 아니고 무언가 성급해서 쓰이는 것 같다. 그냥 좀 피곤해서 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글에 성의를 들이면 안 돼서, 정성을 들이면 내가 상처받을까 봐. 아니면 키보드나 터치 설정이 잘못된 거다. 아니면 그냥 그냥 그냥
풀 색의 사진을 보고
풀을 여러 번 글자로 쓰다가 오타가 생겼다.
그런 과정을 일기에 담다가
문장과 문단을 완성시켰다.
그대로 일기가 되고 일기의 제목도
만들어진다. 사진은 굉장히 단순하다.
하늘과 나무를 담은 것이다.
쓰면서 주제는 다이어리와 오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