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개성 | 시적으로 느껴집니다
'시적이다.'라며 감탄을 자아냈던 적이 있습니까? 그냥 문체만 바꾸면 그만인 것을요. 놀랍게 생각하지 마시고 쓴 글들의 문장에 마침표 앞의 어절을 삭제합니다. 시가 완성되는 순간이니 기뻐합니다. 제목은 고심합니다. 그럴싸한 작가가 된 기분에 취합니다. 글쟁이가 되셨습니다. 새벽에 다시 보면 안 될지도 모르지만 초보 시의 모습이 그런 것입니다.
여기에 쓰인 것은 색을 제외하면 글과 선이 전부입니다. 읽는 사람들에게 주고 싶은 것을 그냥 주는 겁니다. 저는 여기서 (밝은 색의 바탕에) 미소와 행복한 날을 주고 싶었습니다. ‘행복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으로 잠시나마 읽는 사람들, 개개인이 소유한 행복을 상기시켜 주고 싶었습니다.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원칙을 담은 언어입니다. 맛있게 먹고 친절하게 말하고 나를 사랑하자는 알기 쉬운 말을 짧게 한 곳에 썼습니다. 생활에 좋은 습관을 도표화하여 확인하게 쉽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런 것도 좋은 글쓰기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읽으면서 내 것으로 만들 습관을 찾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보다 멋진 자기 계발은 없습니다.
대단히 대단해 보이는 습관이나 원칙 말고도 쓸 수 있습니다. 취미는 어떤가요? 다른 사람들과 취미를 글로 공유하는 일로 취미 부자의 반열에 들어갑시다. “취미가 무엇입니까. 책 읽기입니다.” 빨리 쓰면서도 행복한 글쓰기가 됩니다.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떤 글을 쓰면 좋을 까요 라는 질문에는 틀린 말이 많습니다. 한 게 없는 사람이 없는 데 이 질문이 왜 나왔냐고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 게 없다고 생각하는 자신을 들여다볼 시간입니다. 가장 많은 글 쓰기가 예고됩니다.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이 가장 유용한 시간, 시기, 타이밍, 계절, 때. 글 쓰기 페이지로 도착입니다.
그러고 보니 내 생일에 태어난 사람은 어떤 삶을 사는지 사주 철학적 관점으로 글을 써보고 싶어 집니다. 정확히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보다 철학을 연구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미래를 걱정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무당을 찾아가나요? 그럼 무당의 언어를 듣습니다. 타로 언니를 찾아가나요? 카드를 읽습니다. ‘당신의 미래는~’ 그대로 생각해도 좋고 그 반대로 생각해도 좋아요. 순간, 힘이 나는 문장을 내 것으로 만듭니다. 눈물이 날지도 모릅니다. 미래를 내가 만들겠다는 각오가 된다면 나에게 고마워서일 테고 미래가 아직 오직 않았으니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게 지금 세대의 정신이라고 눈물을 조금 흘려봅니다. 감동의 눈물을 잊지 말고 메모해 봅니다. 좋은 얘기를 들었다면 역시나 메모해 둡니다. 친구의 점괘가 탐나나요? 슬쩍 내 점괘나 니 점괘나 똑같이 바라봅니다.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잘 먹고 잘 사는 길에 5만 원이나 투자했다면요.
귀한 사람을 알게 되었다. 서로의 감정을 다 알지 못한 채 우리는 많이 싸웠다. 나는 단 한 번도 그 사람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말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 사람’을 공식적으로 지칭하는 일은 오늘이 첫 시도다. 나는 많은 해가 지나는 동안 좋은 연애를 하지 못했다. 나는 지나치게 솔직했고 한편으로는 늘 무언가 숨기는 것이 있었다. 그것이 사회적 통념이든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든 나의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상대를 무척이나 사랑했고 사랑받았다. 그 기억은 오래도록 보관될 것이다. 지금부터 살게 될 나는 오직 한 사람, 한 상대에게 내 모습을 보여주기로 결심했다. 그 귀한 사람에게 잘 정제될 필요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 어떤 나도 당신도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다.
오늘 당신은 누굴 알게 되었고, 어떤 사람을 알고 싶나요? 그걸 쓰면 됩니다. 글감을 찾지 말고 봅니다. 어디에 앉아 있습니까? 정말 무엇을 봅니까? 침대에 앉아 있다면 침구가 보입니다. 침구에게/침구란/침구처럼/침구지만, 친구지만 다양한 시작으로 글을 써봅니다. 마침표가 나타날 때 까지만요!
문단이 되면 있어 보이지 않나요? 문장으로 끝을 맺을 수도 있겠지만 조금 더 써봅시다. 한 단어가 한 문장으로, 문장이 문단으로, 문단이 말문을 트이게 해 완성작으로 이어집니다. 기분이 좋습니다.
꼬꼬무의 생각은 1만 가지에서 2만 가지에 그치지 못하고 5만 가지의 잡념들로 나를 버겁게 합니다. 글을 쓰면 그 가지들을 단칼에 자를 수 있습니다. 고소장의 페이지는 한 장이면 되고요. 감사편지 한 장으로도 진심을 전할 수 있습니다. 5만 가지로 생각이 접어들 땐 역시 글을 쓰는 거죠? 말할지 못할 때 말입니다. 섣불리 나설 수 없다고 판단될 때 말입니다. 어떤 내 생각은 아직은 나만 알았으면 하는 비밀 이야기라서요. 많은 고백이 편지에 담기는 이유처럼요.
글을 Speed 하게 쓰려는 목적에 대해 물으신다면 시간과 자신감을 찾아 준다는 겁니다. 자신감은 필요할 때 꺼내 쓰면 좋은 감정인데요. 자신이 있다는 이유는 무언가 해냈을 때 쓰는 표현이죠. 자신 있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내 생각이 거침없이 틀린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생각의 자유를 생각한다면 어떤 생각이든 글로 표현될 수 있지요. 쑥스러움은 뒤로한 채 나의 욕망과 꿈들을 글로 적나라하게 표현할 때, 그것은 옳은 삶에도 맞는 일인가 다시 자문해볼 필요도 없이 “나는 괜찮은 사람이기에 이렇게 빠르게 글을 쓰면서 문장을 완성한다.” 지금의 저처럼요. 아닌 사람은 반성의 글 쓰기로 넘어가시면 됩니다. 건방진 가요?
처음으로 빠른 것이 아닌 한 자 한 자 느리게 글을 써봅니다. 나는 과연 이 글을 읽는 타깃을 정확하게 생각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글을 썼는가를 자문합니다. 남녀노소 모두가 읽었으면 하는 나의 바람은 욕망일 뿐인가 실현 가능한 꿈인가 생각합니다. 꿈에 한계를 두지 않을 때는 책임이 있어야 합니다.
이 글을 읽고 대다수가 제가 목적한 바에 따라 글을 빠르게 쓰면서 자신감을 얻었다면 좋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제가 쓴 글을 수정할 필요도 있습니다. 독자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목적 달성 여부에 대해 알 수 없으니 이 글은 가치가 없어질까요? 글의 가치 기준은 역시, 제가 정합니다. 저작자는 저입니다. 저는 약을 파는 것이 아니라 생활과 가치관, 글을 잘, 빠르게 쓸 수 있는 것에 대하여 쓰고 있습니다. 부작용이 없는 글이기에 자신 있게 쓰지 못했다면 그것을 반성하겠습니다.
직접 쓴 글에 자신 있어야 하는 이유에는 ‘생각한 것을 옮겨 쓸 수 있음에 대한 특권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어디선가 왔고 언어가 탄생했고 표현할 곳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특권을 혼자서 누리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모두에게 나눌 수 있는 글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결국 글은 읽고 쓰는 것입니다. 쓰고 있으면 동시에 읽고 있는 것입니다. 쓸 수 있으려면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언어를 알아야 합니다. 책을 살 수 있거나 쓸 수 있는 도구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 가지 신체기관이 쓰고 읽게 도와줍니다.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이 행위를 즐길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못하다면 반찬 투정을 하지 않으려고 맛없는 것을 먼저 먹던 제 어린 시절처럼 빠른 글쓰기를 추천드립니다.
자막을 읽고 쓰는 것은 또 다른 식의 글쓰기입니다. 언어를 그대로 따라 쓰기도 하지만 내가 했던 말들, 상황들을 재구성하여 그때의 시점과 글을 작성하는 시점을 달리하기 때문에 gap이 발생합니다. 과거가 현재가 되고 현재가 과거에 속하는 것이죠. 생생한 현장감을 전하기에 훌륭한 방법이 됩니다. 명장면이 명대사와 함께 존재하는 것처럼요. 소설 속 주인공이 한 말이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 이유는 그 속의 장면이 아름답게 묘사되어서 일지도 모릅니다.
나의 일상을 그렇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일기를 서술형이 아닌 대화형으로 만들어 본다면 영상편집을 다룰 때도 실력을 발휘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자막을 보려고 영상을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그렇습니다. 한 사람의 말투에서 깊은 호감을 느끼기도 하고 나와 다른 사람이라고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글쓴이의 의도에 따라 생긴 것은 아니니 창작자의 첫 의도를 모르거나 그 의도가 없을 때 자막을 볼 때만큼은 편견 없이 봐주는 것이 어떤가 싶습니다.
특히나 요즘은 일상을 담은 유튜버들이 많습니다. livig their life를 관람하고 있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그들에게 일상은 나와 조금 다를 때가 있거든요. 그렇지만 크게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일상인 것입니다. 요리를 하고 밥을 먹고 간식을 먹습니다. 본인의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걷습니다. 걷는 것만큼 쓸 수 있다는 믿음이 다시 한번 생각납니다. 1보1자!
하루 10000보가 유행이었습니다.
하루 10000자도 트렌드가 될 수 있습니다.
매일매일 10000자가 힘들다면,
하루쯤은 도전해 볼만한 글쓰기 분량입니다.
생각보다 할 만하니 도전해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