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ed Writing.

글의 희망 | 달리고, 걷고, 씀

by 드아니

기는 쓰기랑

비슷한 게 있던데


예전에 병원에 갔을 때 의사 선생님이 내게 추천한 것은 땀 흘리는 운동이었다. 간단한 처방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실천하는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운동을 해도 땀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한 운동은 건강을 지키기엔 부족했던 것이다. 나는 뛰는 것보다 걷거나, 집에서 앉거서, 누워서 하는 운동을 했다. 계절이 바뀌면서 여름에는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났다. 그 땀은 온도가 올라가서 나는 땀이지 내 활동량과 비례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겨울이 아닐 때도 두꺼운 옷을 입고 운동을 했다. 운동을 많이 하지 않아도 많이 한 것 같은 충실한 기분이 실제로 내 몸에 적용될 것 같아서다. 꼼수지만 상상의 힘은 ‘없는 레몬’도 있는 것처럼 만들어 입안의 침을 고이게 하니까.


나는 가벼운 운동을 하고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작가는 새벽에 그저 달리기 시작했다. 걷는 것이 지겨웠기 때문에 달리는 운동에 대한 자극을 다시 받았다. 나는 또 다른 책을 읽었다. 달리는 것을 명상이라고 표현된 것을 봤다. 오늘은 달리기와 소설이 같다는 이야기도 읽었다. 오늘부터 달리기를 하고 싶진 않다. 곧 말복이고 매미소리가 크다. 내일부터 달리기엔 새벽이 적당해 보인다. 내 새벽은 아침에 가까운 새벽이 아니다. 모두가 잠자는 밤의 새벽에 나는 달리고 싶다. 벌레 물리기에 조심스러워 바르는 물파스를 안전장치 삼아 새벽에 달릴 것이다. 한 번은 달려봤다. 걸음수를 확인하며 걷는 것과 많이 달랐다. 놀랄 만큼 기분 좋음, 기분 좋은 심장, 몸의 기능을 느꼈다. 달리 수려한 표현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달리는 것은 마음이 좋아하는 일이기도 했다. 나는 우연히 달리기가 포함된 3권의 책을 읽고 예전보다 많이 달린다.


어이없게도 나를 바로 행동하게 한 것은 ‘그냥 달렸다’는 느낌의 문장이었다. 영화 <중경상림>에서도 달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이 달린 이유는 소설을 쓰기 위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전 연인을 잊기 위해 등의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내가 달리는 이유가 행동으로 표현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내가 이루고 싶은 것들과 직결됐을 때다. 나는 건강보다 꿈과 성취를 선택했으나 달리기는 둘 다 가능토록 해준다. 꿈꾼다는 것은 건강한 목표 달성에도 기여한다. 밸런스 게임에서 자주 돈과 외모 등으로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쏟아진다. 나는 함께 가능하다. (새벽에 그냥 달린 벤저민 하디(작가)는 6개월의 달리기를 하고, 마라톤 대회도 나가고, 고향을 벗어나 자신만의 커리어를 쌓는 항로를 시작한다.) 내가 필요한 게 꿈이고 꿈이 돈이라면 나는 돈을 밝힐 것이다. 나는 꿈을 추구한 것이다. 그래서 달릴 수 있다.




완벽한 글보다

완전한 글이 나름대로 좋은 글





우리가 쓴 글은 어차피 대체 불가능

모든 ‘나’는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기 때문.




글 쓰기 전에 책 읽기


마음을 얻는 가장 쉬운 방법에는 (친구가 되고 싶은 상대와 똑같은) ‘책을 읽는다’에 있다. 책은 읽기가 쉽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라 해도 한 권의 책을 속독하는 법을 모르는 자가 단숨에 읽으려면 대단한 집중력이 필요하다. 상대와 같은 책을 읽고 1시간 이상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가 되려면 더 많은 기억력이 필요하다. 만약 문장을 통째로 외워버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학식에 놀라 대화하는 것이 도리어 불편해 질지도 모른다. 책의 제목만 알아도 쓴 사람이 누군지만 알아도 친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의 영역은 속이기 쉽다. 한 권이 책이 그 사람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가장 많이 팔렸다는 이유 만으로 종교와도 상관없는 성경을 찾았다. 나는 불교에 여전히 가까운 사람이다. 절이 좋고 신을 생각하는 것이 힘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불교에 가깝다는 것은 내가 태어난 이곳의 절이 교회의 상술보다는 더 친환경적으로 여전히 꾸밈없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 권의 책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작은 배경과 그 사람이 말하고자 하는 주장과 그 사람이 살고 싶은 방향들을 읽을 수 있다. 사회를 찬란하는 글과 소설 속에서 자신의 소망을 드러내는 글에는 차이가 있다.


책은 읽기가 쉽다. 읽기가 쉽지 않을 때는 친구가 되기 어려운 상대와 불편한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20대의 여자가 배우자가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과 단 둘이 커피를 마시는 일은 흔치 않다. 불편한 자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갑자기 너의 남자 친구가 있냐고 묻는다거나 나아가 옆에 앉으라고 말하는 작자 들이다. 그럴 때 왜 나는 이 귀한 시간과 이 귀한 몸을 떠올리게 된다. 몸의 보험이 일반인들에게 무상 제공되어야 하는데…! 그래서 마음을 얻는 수단으로 서의 글은 마음을 얻기 우려스럽다. 사람의 책이 물건은 아님!




무슨 글을 쓰는 어느 사람의 루틴


아침

저는 환기를 가장 자주 하고요! 보통은 눈 비비고 일어나 커피를 타러 갑니다. 여름에 먹는 차가운 커피로 정신을 번쩍 깨우고 나면 기분이 조커던요. 그러고 나면 나는 달린다. 어떤 옷이든 나갈 수 있을 만큼의 소양을 갖춘 옷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간다. 이때 주춤거리면 영 그날은 집순이가 될까 봐 나가자는 건강한 열망이 사그라들기 전에 나는 얼른 마스크를 찾는다. 현관문을 연다.


어른의 일기로 만든다. 일상에 건강을 많이 생각한다면 그렇게 된다.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는다는 말은 꼭 쓴다. 그렇지 않으면 비타민을 챙겨 먹는다는 것을 강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타민과 오메가 3와 단백질을 먹는다. 그리고 앉는다. 쓴다. 하루의 즐거움을 일으킬 수 있는 신선함을 쓴다. 무언가 없는 것을 있다고 생각해도 된다. 아침에 쓸 때만큼은 없어도 있는 것이다. 깨끗한 종이에 마음에 드는 문장을 좋은 자세로 반듯하게 옮긴다.


책을 펼친다. 지식인의 글들을 살펴본다. 모닝 루틴으로 괜찮은 글들은 저녁에 선별해 놓기도 한다. 뉴스의 사실보다 나은 무언가를 읽고 읽고 읽어서 표시해둔다. 이웃들의 일상을 보는 것도 일상이 된다. 아침의 종류는 잊고 쓰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매일 바뀌기 때문에 ‘아침’으로 통일되었다. 이게 ‘나만의’라는 수식어가 붙어야 하는진 모르겠다. 그냥 ‘나의’ 일과다. 일상의 일상에 스트레칭을 추가한다.


점심

프리랜서로 글을 쓰고 있다. 그 글이 더 수려해질 수 있도록 더 많은 글을 쓴다. 1000 단어를 채우려고 노력한다. 500자를 우선 채운다. 성근 언어를 지우고 다른 문장으로 남긴다. 지운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햇빛을 보러 나간다. 짧은 광합성은 반드시 한다. 5~15분, 20분이 될 때도 있다. 길지 않은 낮 산책을 즐긴다. 자전거를 타기도 한다. 점심을 먹는다. 커피를 마신다.


저녁

왠지 모르게 나와 닮은 듯한 사람들의 영상을 본다. 따뜻한 마음이거나 잔잔하지만 재밌기도 한 그런 일상의 영상들을 주로 보다가 잔다. 여기서 요가나 명상(좋은 걸 보고 들으면 그게 명상이다), 스트레칭을 한다. 어쩔 때는 마감기한을 만들어 잠이 오기 전까지 계속 쓴다. 보통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내어 대화를 나눈다. 간단하게 먹고 줄넘기를 한다. 달리기를 한다. 이 루틴으로 불리는 주 7일 지속한다. 그 외 영화, TV, 쇼핑, 여행, 영상 촬영과 편집 등의 취미생활은 때에 따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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