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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아니 Apr 08. 2024

젊은 날의 세상

다 젊음 이겠거니 하면 되는


 

내 젊은 날의 세상은 캐주얼했다. 다녔던 직장에 따라 스타일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했지만 보통은 캐주얼했다. 내 젊음을 서른에서 1년 5개월쯤 지내보니 거울 앞에선 나의 모습이 유치해 보였다. 이전보다 나를 성숙하게 만들고 싶은 욕구가 확실히 생겼다. 단발에서 긴 머리로 운동화에서 구두로 나와 어울릴만한 다른 향을 찾고 있다. 내 젊은 날의 세상은 탈 캐주얼을 원하고 있다.


내 젊은 날의 세상은 변화였다. 직업이 여러 번 바뀌었다. 결혼과 아이, 반려자에 대한 생각, 부자를 보는 시선, 성실의 시대에서 게으름을 찬양하는 등 가치관의 변화가 잇달았다. 좋고 나쁨의 개념이 모호해지고 종교의 순기능도 발견했다. 입맛도 달라졌다. 추구하는 스타일도 달라졌다. 책과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내 젊은 날의 세상은 끊임없는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내 젊은 날의 세상은 잔소리였다. 밥 먹으라는 잔소리, 일찍 일어나라는 잔소리, 책은 이제 그만 읽어라는 잔소리가 대부분의 레퍼토리였다. 공복에 잔소리야말로 가장 괴로웠다. 정정한다. 공복의 잔소리는 언제나 고맙다. 그녀의 온정을 받고 있으니 감사하고, 힘내어 소리칠 만큼 건강하시니 감사하고, 나대로 꿋꿋하게 꿈꾸고 있다는 증거니 감사하다. 내 젊은 날의 세상은 잔소리 덕에 강해졌다.


내 젊은 날의 세상은 연애였다. 유난히도 연애였다. 모든 것을 연인에게 털어놓고 위로받았다. 그런 연인에게 상처 주고 뼈저린 후회도 있었다. 나쁜 연애에 대한 기억은 마음에 새겨져 몇 년이 지난 뒤에야 놓아주기도 했다. 좋은 연애에 대한 기억도 마찬가지다. 세상에서 가장 착했던 연인에게 받은 헌신은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어 주었다. 내 젊은 날의 세상은 연애가 직업이었다.



세부시티 하늘


내 젊은 날의 세상은 꿈이었다. 꿈이 있어 행복했고 꿈이 안 이뤄져 안달 났다. 끊임없이 꿈을 꿨고 운이 좋게 이룬 적도 많았다. 꿈꿔왔던 이상형이 눈앞에 나타나기도 했고 나 자신이 누군가의 이상형이 되기도 했다. 꿈이 좌절되었을 때 보다 아무런 꿈이 없을 때가 더 견디기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불가능해 보이는 꿈일수록 내 삶에 원동력이 된다는 것도 알았다. 내 젊은 날의 세상은 돌아보니 모든 게 꿈같다.


내 젊은 날의 세상은 감사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했다. 이유 없이 감사했다. 못난 내 모습에도 감사했다. 힘든 일에 더 많이 감사했다. 누구에게나 감사한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감사가 보다 나은 관계와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줬다고 믿는다. 감사한 마음이 관점을 변화시켜 모든 것을 조화롭게 만들어 줬다고 믿는다. 내 젊은 날의 세상이 존재해 감사합니다.


내 젊은 날의 세상은 나 자신이었다. 온통 나, 나, 나 밖에 몰랐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나와 치열하게 보냈다. 나만의 드라마를 찍고 내대로의 자기 계발을 했다. '나' 이면서도 '나'이지 못해 내가 되길 바라기도 했다. 내 젊은 날의 세상은 나를 위한 나에 의한 나의 세상이었다.


내 젊은 날은 현재이기도 하고 더러는 아직 오지도 않았다. 그런 내가 무슨 젊은 날을 그려볼 까 싶어 주제 선정에 거부당할 뻔한 내 젊은 날은 그 귀함이 흔했고 도전임과 동시에 후회이기도 했다. 그 젊음 덕분에 다시 용기 내길 반복하고 있다. 젊어서 누릴 수 있었던 모든 아픔에 대해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나이가 되려면 몇 년의 젊음이 더 흘러야 할까. 조금 더 아프면서 보내도 좋다. 다 젊음이겠거니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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