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꾸미는 여전히 맛있었다
암일 가능성이 90퍼센트란다. 반도 아니고, 3분의 2도 아니고, 90퍼센트. 이건 100퍼센트 암인데, 혹시 아주 티끌만 한 확률로 아닐까 봐 내놓는 숫자 아닌가? 얼빠진 얼굴로 세침 검사한 곳을 거즈로 꾸욱 누른 채 친구가 있는 로비로 나왔다. 나는 내 표정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몰랐지만 나중에 친구가 말하기를, 그때 내 얼굴을 보자마자 알았다고 했다.
‘아 뭔가 큰일이 생겼구나.’
진료비 계산을 하려고 로비에 앉아 친구를 바라보는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친구는 무슨 일이냐며 연신 물었지만 나는 내가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눈물범벅이 되어 수납 창구에 갔다. 카드를 쥔 손이 덜덜 떨렸다. 눈물은 하염없이 흐르는데 한 손으로는 지혈을, 다른 한 손으로는 계산을 하느라 눈물 닦을 손도, 닦을 정신도 없었다. 수납해주시던 간호사님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너무 놀라셨을 거다, 빨리 수술받으시면 괜찮다’ 같은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정작 나는 그 위로를 받을 정신이 없었다. 친구가 대신 수납 뒷마무리를 하고 일단 어디라도 앉아야 할 것 같아서 병원 건물 1층 카페로 갔다.
친구는 현직 대학병원 간호사다. 위중한 환자들을 만나는 게 일상인 사람인데도 가까운 친구의 암 의심 진단에 많이 놀란 것 같았다. 친구는 내게 따뜻한 차를 시켜줬고 횡설수설 이어지는 내 이야기를 다 들어줬으며 함께 울어주었다. 그리고는 이내 보호자 마인드로 나를 안심시키기 시작했다. 간호사 친구들에게 수소문 해 유명한 병원을 알아봐 주겠다며,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에도 원한다면 같이 가주겠다며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이 순간 나 혼자가 아니라 어찌나 다행인지. 혼자였다면 어찌할 바를 몰라 울고만 있었을 것이다.
그 날 친구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다 기억나지 않는다. 결론은 ‘저녁이나 먹자’였고, 우리는 자주 갔던 주꾸미 볶음집에 갔다. 병원에 들어갈 때만 해도 10분 만에 나와서 맛있는 저녁을 먹으러 가려고 했는데, 병원에서 나올 때는 90퍼센트 암 환자가 되어 ‘주꾸미 같은걸 먹어도 될까? 너무 자극적인 거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마음만큼 입맛도 바로 바뀌지는 않아서 주꾸미 볶음은 여전히 맛있었다. 어마어마한 이야기를 듣고도 이렇게 맛있게 식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며 친구와 함께하는 저녁이 저물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