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옴 Nov 15. 2019

5. 착하긴 착한 데 깡패

세상에 착한 암이 어딨어

힘들 때 곁에 누군가 함께 한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동시에 잔인한 일이기도 했다. 나조차도 믿기 힘든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리는 일은 수술에 대한 두려움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그때만 해도 '암'이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는 것 자체가 너무 어색했고, 말하는 순간 그게 사실이 되어 버리는 것 같아 두려웠다. 가족력도 없는 집안에 20대 암 환자라니. 내가 가족력의 시작이라니! 불효자식이 따로 없었다.     


우리나라 국민이 기대수명(82세)까지 생존할 경우 암에 걸릴 확률은 36.2%다. - 국가암정보센터


 아마 암 경험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내가 왜 암에 걸렸는지 생각해 볼 것이다. 그런데 사실 3명 중 1명이 암 환자인 세상에서 ‘왜 하필 내가! 왜 나만 이런 병에!!!’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이다. 우리 주변에서 암 환자나 암 환자 가족을 찾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고,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새로운 암 환자들이 생겨나고 있다. 심지어 병원에 가보면 2~30대 암환자들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내 주변엔 없는데...?’라면 큰 행운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20대 암 발생률 1위를 차지한 갑상선암은 5년 상대생존율이 100%가 넘을 정도로 다른 암에 비해 예후가 좋다. 갑상선암의 여러 종류 중 90%를 차지하는 유두암이 특히 생존율이 높은 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갑상선암을 흔히 '착한 암'이라고 부른다. 갑상선암 환자의 지인들은 종종 ‘착한 암’이니 ‘거북이 암’이니 하며 위로를 한다. 그 말을 들으면 두 가지 생각이 든다.     


'그래, 죽지 않고 사는 병이니 얼마나 다행이야. 수술 잘 받고 관리 열심히 하면 남들보다 더 건강하게 살 수 있어.'     

'착한 암? 세상에 착한 암이 어딨어? 자기가 걸려도 그런 소리가 나올까?'   

  

전자와 같은 긍정적인 생각은 갑상선암 환자 본인에게 도움이 된다. 어차피 이미 걸려버렸는데 수술 전까지 마음이라도 편하게 지내는 게 본인에게 더 낫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통 암 진단을 받은 직후에는 긍정적인 생각을 갖기 어렵다. 짜증을 내거나 분노한다. 현실을 부정하기도 한다. 내 경우에는 ‘착한 암’ 소리를 하루 동안 다섯 번 들은 적이 있다. 좋은 말도 한두 번이지 만나는 사람마다 착한 암이 어쩌고 하면 없던 화도 치솟는다. 

    

“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해요. 잘 치료받고 올게요.”     

 그래도 날을 세우지 않고 상냥하게 대답하는 것 보면 내가 사회화가 참 잘 된 사람이구나 싶다. 혹자는 스트레스가 암의 큰 원인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때로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는 노력에 더 스트레스받기도 한다. 가끔씩은 속마음도 뱉어내고 묵은 감정도 풀어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니 그 답답한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고, 꾹 참아내는 자기 자신의 모습에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혹시 주변에 환자가 있다면, 한 번쯤 그저 묵묵히 들어주며 고개를 끄덕여 주면 어떨까? 그 한 번의 배려가 환자에게는 큰 사랑으로 느껴질지 모른다.     

이전 04화 4. 90퍼센트 암 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