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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옴 Nov 15. 2019

6. 내 몸을 맡기는 결정

병원 선택 이야기

위기가 닥치니 그동안 숨겨졌던 추진력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검사했던 병원에서 갑상선암이라는 결과를 받자마자 수술받을 병원을 찾아 나섰다. 나의 병원 선택 기준은 이러했다.     


1. 대학 병원인가 - 감기 몸살도 아니고 큰 병원이 믿을만할 것 같았다.     

2. 집에서 다닐 만한 거리인가 - 수술 후에도 병원에 자주 가게 될지 모르니.     

3. 수술을 빨리 받을 수 있는가 - 내가 먹는 음식이 나 말고 혹을 살찌우는 느낌이 싫어서 하루빨리 떼고 싶었다.     

1번과 3번은 대게 충돌한다. 보통 이름난 병원(흔히 빅 5라고 부르는)은 수술은커녕 외래 예약 잡기도 쉽지 않았다. 특히 갑상선암으로 유명한 몇몇 병원은 외래 진료만 한 달을 기다리고 수술은 3개월 이상 기다리는, 말 그대로 기다림의 연속 끝에야 겨우 발을 들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다고 대기 없는 병원을 냉큼 선택하자니 걱정이 되었다. '첫 수술이 중요하다', '반절제로 끝날 수 있는 케이스인데 전절제를 했다더라', '갑상선만 떼면 되는데 부갑상선까지 떼 버려서 평생 약을 먹는다더라' 하는 무서운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서 고민이 되었다. 

    

질병마다 어느 병원의 어느 교수가 유명하다더라, 일명 ‘명의’가 있다고 한다. 내 평생 처음으로 수술을 받아야 할지도 모르는데, 그것도 무려 암일지도 모른다는데 좋은 병원, 이름난 의사를 찾고 싶은 마음이 당연히 들었다. 그런데 조금 더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려고 했다. 나에게 가장 좋은 병원은 어디일까. 내가 믿을 수 있는 병원은 어디일까. 고민만 하다가 시간을 흘려보내는 건 아닐까. 결국 나의 답은 1, 2, 3번의 조건을 고루 만족시키는 병원이었다. 사실 수술받을 병원을 결정하기 전 세 군데의 병원 후보를 추려 두었었다.     


 A 병원, 외래 진료를 보는 데만 3개월이 걸린다고 했다. 갑상선암 분야의 명의가 계시는 병원이었다. 역시 A 병원에서 수술 받는 환자들이 많았고 후기도 만족스러워 보였다. 혹자는 "외래 진료를 당기려면 매일 전화를 해야 한다더라. 그래야 빈자리에 넣어 준다더라."라고 했다. 결국 진상 고객님이 되라는 말이었는데 나는 그렇게 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 예약해 둔 자리니 취소는 않고 두기로 했다.     


B 병원, 국내 손꼽히는 대형 병원으로 예약이 어려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2주 뒤 예약을 잡을 수 있었다. 2주를 기다려 병원 로비에 들어선 순간! 늘 그런 건지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 날 유독 붐볐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엄청난 병원 규모와 인파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로비에서는 톱스타 사인회를 연상케 하는 대규모 행사가 진행 중이었고 그 뒤로 수납 창구가 두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늘어서 있었다. 정신만 없는 게 아니라 앉을 의자도 없었다. '이렇게 사람이 많고 병원도 큰데 환자 앉을 의자가 부족하다니...' 부산한 로비의 모습과는 달리 교수님의 진료는 친절하고 여유로웠다. 암 진단을 받고 목을 아무리 만져봐도 혹 덩어리가 만져지지 않았는데, 교수님은 그 위치를 찾아 만져보게 해 주셨다. 수술 방향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명해 주셨다. 

    

"열어 봐야 알겠지만 전이가 없다면 반절제로 끝날 수도 있겠네요. 로봇수술은 별로 추천하지 않아요. 절개로 하시죠."     


반절제 이야기가 나오자 나는 내심 불안했다. 반절제를 하게 되면 혹시 남아 있는 갑상선 반쪽에 암이 재발되지는 않을까 찝찝했다.     


C 병원, 서울 소재 대학 병원으로 갑상선 센터가 따로 있고, 암센터에서 갑상선 암 진료를 받을 수 있다. (갑상선암은 암센터에서 진료하지 않는 병원도 있다.) 첫 외래 진료가 있던 날, ‘여기부터 암센터입니다’라고 적힌 선을 주뼛주뼛 넘어섰다. ‘암센터’라는 말이 너무 낯설어서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은데 잘못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갑상선 센터장이신 내분비내과 교수님께 외래 진료를 받고 내 목에 있는 혹이 어떤 암인지 크기는 어느 정도 되는지 비로소 정확히 들을 수 있었다. C 병원에서는 첫 외래 때 바로 수술 날짜를 정해주어서 진행이 빠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나는 C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앞서 이야기했던 조건들을 거의 다 만족시켰고, 다른 병원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그만큼 여유로워서 의료진들이 친절했다. 환자마다 상황이 다르고 고려해야 하는 조건이 다르니 C 병원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결국 환자 마음이 편한 병원이 정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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