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기다리는 3주의 시간
수술 날짜가 잡혔다. 수술 날까지 남은 시간은 3주.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 생각했다.
교육 공무원의 병가 일수는 60일이다. 수술 후 몸 컨디션이 어떨지 가늠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최대한 병가 일수를 남겨두고 싶었다. 그래서 수술 직전까지 근무를 하기로 했다. 암을 경험하면서 정말 놀라웠던 것 중 하나는 암이 웬만큼 진행이 되기 전까지는 아무런 증상이 없다는 것이었다. 몸 컨디션은 아무 문제없었다. 문제는 마음 컨디션이 좋질 않았다. 목에 암 덩어리를 달고 업무를 하는 것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다투거나 문제를 일으켜도 내 목의 암덩어리보다 중요치 않게 느껴졌다. 내가 먹는 음식이 나 대신 암 덩어리를 살찌울 것만 같았고, 내가 운동을 하면 나 대신 암 덩어리가 왕성하게 자라날 것 같았다. 이런 상태로 3주를 보낼 순 없었다. 나는 마음가짐을 다잡기로 결정했다.
‘수술할 때까지 그동안 안 해봤던 일들을 해보자.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고민 없이 하자.’
바빠서 못하고, 피곤해서 못하고, 돈이 아까워 못하고, 낯설어서 못했던 수많은 일들을 ‘그냥’ 생각 없이 시도해 보기로 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의 가장 큰 효과는 아마 나일 강변에서 술을 마시든, 책을 쓰든, 돈을 벌든, 우리가 당장 일어나고 있는 일로부터 가장 중요한 일로 시선을 돌리게 해 준다는 것이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덜 의존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 알랭 드 보통, “불안”
갑상선암 중 90%를 차지하는 유두암은 암 중에서 예후가 좋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수술을 한다고 해서 생사를 넘나드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20대의 인생에 파도처럼 밀려온 ‘암’이라는 단어는 삶에 대한 관점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이전의 나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 사생활이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원체 사람에 대한 의심이 많은 데다가 안정지향적인 사람이다 보니 나를 둘러싸고 있는 보호막은 검증된 친한 사람들 앞에서만 한 꺼풀 벗겨졌다.
언제까지나 건강하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껴보니 이 세상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지만,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만 정작 그렇게 살지 못한다. 업무가 많이 쌓여 있으니까 오늘은 나보다는 업무를, 갚아야 할 대출이 남아 있으니까 오늘은 나보다는 돈을, 친구들과의 관계를 지켜야 하니까 오늘은 나보다는 친구들과의 만남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심지어는 가족조차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그 당연하고도 명확한 진리를 잊지 말고 살자는 다짐, 그 다짐으로 수술을 앞둔 날들을 버텨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