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옴 Nov 15. 2019

19. 방사성 요오드 치료(1)

암세포, 널 죽여야 내가 살아

방학을 하고 이제 조금 살만 하다 싶을 즈음, 두 번째 고비가 다가왔다. 갑상선암에 있어 일종의 항암치료 격인 '방사성 요오드 치료'이다. 이 치료는 갑상선 세포가 요오드를 흡수하는 특성을 이용한 치료 방법이다. 원리는 이러하다. 갑상선 전절제 수술을 마친 환자의 몸에는 갑상선은 없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갑상선 미세 조직이 남아 있다. 방사성 요오드(방사능을 내는 요오드 동위원소)를 우리 몸에 투여하면 남은 갑상선 조직이 요오드를 꿀꺽꿀꺽 흡수한다. 갑상선 세포는 방사선에 조사되어 파괴된다.    

           

방사성 요오드 치료는 수술로 미처 제거하지 못한 암세포를 파괴하는 목적과 혹시 모를 재발을 방지하는 목적으로 실시된다. "재발을 막아준다니! 당연히 해야지!"라며 담당 교수님의 제안에 냉큼 하겠다고 답했다. 그때는 몰랐다. 이렇게 힘든 치료인지. (아마 알았어도 어쩔 수 없이 치료받기는 했겠지만.)        

       

치료 효과를 높이려면, 즉 방사성 요오드를 투여했을 때 갑상선 세포가 요오드를 꿀꺽꿀꺽 흡수하게 하려면 치료 전 일정 기간 동안 요오드에 굶주린 상태로 만들어 줘야 한다. 그러려면 일정 기간 동안 요오드가 함유된 음식을 먹지 말아야 한다. 보통 요오드가 많이 함유된 음식 하면 미역, 다시마 같은 해조류를 떠올린다. 그래서 순진하게도, '김이나 미역국만 좀 참으면 되겠지.'라고 생각했었다.   

            

방사성 요오드 치료 전 2~3주 정도 저요오드식을 실시해야 한다. 요오드가 많이 들어있는 천일염(을 비롯하여 바다에서 나는 거의 모든 것), 해조류, 계란 노른자, 천일염을 사용한 김치류, 붉은색소가 들어간 가공식품, 통조림 식품, 심지어는 붉은 색소가 들어간 약(예를 들어 포비돈, 감기 시럽) 등... 너무 많아서 차라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세는 게 빠를 지경이다. 이 모든 금지 식품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천일염이다. 천일염이 금지되는 순간 먹을 수 있는 음식은 확 줄어든다. 소금은 모두 천일염 대신 정제염으로 바꿔야 한다. 천일염이 들어있는 가공식품도 금지된다. 그래서 이 기간 동안 외식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실제 저요오드식 기간 중 학교 급식을 먹을 수 없어 도시락을 따로 챙겨 다녔었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식욕은 위대하고, 세상에 맛있는 음식은 많다. 입원 기간까지 포함해 딱 3주, 먹고 싶어도 참아 내야 한다. 이 치료로 남은 암세포가 파괴되고 재발을 막아 준다는 데 최선을 다 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차피 받아야 하는 치료, 이 인내의 기간을 좀 더 즐겁게 견뎌 보기로 했다. 가능한 범주 내에서 최대한 맛있는 음식을 찾아내 먹기로 했다. 다음은 내가 저요오드식 기간 중 가장 즐겨 먹었던 식품이다.        

       

1. 군밤     

저요오드식 기간 중 밥과 반찬을 잘 챙겨 먹기가 생각보다 어려워서 고구마, 옥수수, 밤처럼 먹기 쉬우면서도 든든한 간식거리의 도움을 받았다. 그중 제일은 군밤. 시중에 밤을 구워서 파는 상품이 많이 나와 있어서 쉽게 구입할 수 있었다. 저요오드식 기간 중에는 가공식품을 살 때 뒷면의 성분 표시를 꼭 확인했는데, 밤 100%라고 적혀 있어서 안심하고 먹었다. 질리지 않는 달달한 맛에 적당히 배부른 포만감까지! 밤은 입원할 때도 들고 갔을 정도로 가장 사랑하는 간식거리였다.(+자매품 고구마 말랭이, 감말랭이)         

      

2. 누룽지     

아침을 굶으면 오전 수업할 때 힘이 떨어져서 늘 아침을 챙겨 먹는데, 간편하게 빈 속을 채워주는 누룽지가 있어서 견딜 수 있었다. 쌀 100%로 직접 집에서 눌린 누룽지에 물을 부어 끓여 먹으면 간편한 아침식사가 된다. 가끔 낮에 입이 심심하면 과자 대신 먹기에도 좋다.               


3. 쌀과자     

아기 과자 중에 은근히 저요오드식 기간 중 활용할 수 있는 간식거리가 많았다. 특히 쌀 100%로 만든 쌀떡 뻥은 천일염이나 향료 같은 것이 들어 있지 않아서 안심하고 먹을 수 있었다. 강하고 자극적인 양념에 길들여진 내 입에 쌀떡뻥은 그리 맛있지 않았지만, 과자 같은 바삭한 식감이 그리울 때 한 번씩 먹기 좋았다. 씹다 보면 쌀 특유의 달달한 맛도 난다. 쌀과자 맛이 밋밋할 때 딸기와 설탕으로만 만든 딸기잼을 살짝 발라먹는 것도 맛있다.(딸기에 박혀 있는 씨 때문에 딸기를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하는 병원도 있다고 하니 주의하세요)       

        

저요오드식 기간에는 하이에나처럼 '이건 먹을 수 있을까, 저건 먹어도 될까'하며 식품 성분을 뒤져 보게 된다. 그러다 우연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발견하면 너무 기쁘다. 특히, 빵과 떡볶이가 정말 많이 먹고 싶었다. 그래서 저요오드 빵을 주문해 먹어 보기도 하고, 무요오드 고추장을 사용해 떡볶이를 만들어 본 적도 있다. 먹지 말라고 하니 더 먹고 싶은, 청개구리의 마음이 이런 건가 싶다. 3주간의 저요오드식 기간이 너무 고통스럽지만은 않기를 바란다.

이전 18화 18. 회복과 근무를 동시에 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