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편의점에서 산 군것질거리들로 저녁을 때우곤 한다. 하루 종일 선 채로 일하는데 집에 와서 밥까지 차릴 생각을 하면 이따금 진절머리가 난다. 앉아서 요리해도 되는 주방이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게 있을 리 없지. 밤 10시에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도 일이다. 장 보고 돌아오면 벌써 10시 반. 뭔가를 해 먹고 설거지까지 하면 자정이 다 돼있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피곤한 몸에 배까지 고프니 필요 이상으로 뭔가를 더 사기도 한다. 도시락은 이미 시리즈별로 거의 다 먹어봤다. 공업의 맛. 이제 냄새만 맡아도 물린다.
해 먹지도 사 먹지도 못하겠다면 떠오르는 선택지는 군것질뿐이다. 편의점의 잘 진열된 과자와 음료수를 보면 기분이 좋다. 집 앞 편의점은 사나흘 주기로 새로운 물건이 들어와 갈 때마다 새롭다. 저번 주에는 생크림이 들어간 롤 케이크가 들어왔는데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떠먹는 우유 생크림 케이크가 새로 들어왔다. 뭘 살까. 과자도 케이크도 오늘은 둘 다 별로다. 그때 계산대에 보이는 찹쌀떡이 눈에 띄었다. 결국 찹쌀떡 두 개와 딸기우유 하나를 사서 가게를 나섰다. 집에 바로 들어갈까 하다 밤공기가 좋아 놀이터 벤치에 앉아 찹쌀떡 한 봉지를 뜯어먹었다.
요즘처럼 날이 따뜻해지면 집에 들어가지 않고 사 온 것들을 밖에서 먹기도 한다. 편의점을 나서자마자 포장을 뜯고 먹으며 걸을 때도 있고, 놀이터 벤치에 앉아 하나씩 맛을 보기도 한다. 4월이 되고 공원 화단에 목련이 피면서는 벤치에 앉아 지주 뭔가를 먹었다. 밖에 앉아 군것질을 하고 꽃냄새를 맡다 보면 기분 좋게 정신이 산만해진다. 그때마다 과자가 더 달게 느껴진다. 스마트폰은 잠시 내려놓고 찹쌀떡을 우물거리며 먹었다. 목이 막혀 딸기우유를 한 모금 마셨다. 멍 때리면서 먹기도 하고, 다시 현실세계로 돌아와 아파트 단지의 밤 풍경을 보면서 먹기도 했다.
예전에 살던 동네에는 편의점 대신 구멍가게가 있었다. 시내 복판이었지만 개발된 지 20년이 넘은 연립주택 단지라 유독 그 구역에만 편의점이 들어오지 않았다. 구멍가게에는 늘 있던 물건만 있고 어떤 날은 그마저도 없어 그냥 돌아갈 때가 많았다. 그래도 이사 갈 때까지는 그곳에 자주 드나들었다. 검은 점이 얼룩덜룩한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가게에 쳐들어온 이후부터는 더 자주 들렀다. 털 달린 짐승을 싫어한다는 할머니는 틈나는 대로 고양이를 쫓아내려 했지만, 워낙에 필사적으로 매달린 탓인지 이내 그 가게의 식구가 됐다. 과자박스 안에서 몸을 굴리며 노는 고양이도, ‘그래, 내가 졌다’는 눈빛으로 체념하듯 정을 줘버린 할머니도 다 귀여웠다. 지금은 그곳도 재개발구역이 되어 구멍가게도 할머니도 고양이도 다 떠나고 없다.
고단한 나날들이이어지면 너무나도 당연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잊어버리곤 한다. “스타워즈를 찍은 감독이 누구였지?” “친구랑 저녁 먹기로 한 게 모레였던가?” “귀가 접힌 고양이 이름이 뭐더라?” 멍하니 놀이터 벤치에 앉아서 사온 과자들을 우물대며 씹다 보면 그렇게 잊었던 것들이기억나기도 한다. 방금 이야기한 구멍가게와 아기 고양이가 불쑥 떠오른 것처럼. 뭔가가 떠오를 때마다 가까스로 기억난 것들을 흘려보낼 수 없어 핸드폰 메모장을 켠다. 시간이 지나면 조지 루카스, 모레, 스코티시폴드라고 쓰인 메모의 뜻이 뭔지 몰라 한참을 헤매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