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상가에서 점심을 먹었을 때 일이다. 일식 돈가스 전문점이었다. 로스가스를 시키려는데 문득 메뉴판 하단의 경양식 돈가스가 눈에 띄었다. 부위는 똑같이 등심. 표기된 고기의 부위와 무게도 같다. 근데 경양식 돈가스의 가격이 1000원 더 비쌌다.
이유가 뭘까? 소스의 양이 다른가? 아니면 소스의 종류가 다른가? 사진상으로 보니 두 소스의 색이 어딘가 달라 보였다. 로스가스의 소스는 어둡고 걸쭉해 보이는 반면, 경양식 돈가스의 그것은 훨씬 붉고 말간 느낌이었다. 근데 왜 이런 쓸데없는 차이에 꽂혔냐고? 둘 다 맛있어 보였으니까. 원래 이 가게는 두툼한 일식 프리미엄 돈가스를 파는 곳이다. 근데 이 레시피를 응용해 경양식 돈가스를 만든다면? 이게 맛없을 리가 없잖은가!
메뉴는 두 개고 점심시간은 하루 한 번뿐이다. 오늘 실패하면 다음을 기약해야 한다. 나는 나의 행복을 미래로 떠넘기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더 맛있는 돈가스를 먹고 더 나은 오늘을 살고 싶다. 때마침 카운터에 사장님이 계시기에 여쭤봤다.
“저기, 사장님. 경양식 돈가스랑 일식 돈가스는 많이 다른가요? 가격이 천 원 정도 차이가 나던데.”
“아, 그게 말이죠. 음…. 잠시만요!”
갑자기 사장님이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 일에 관해서는 전혀 모르시는 느낌. 얼마 뒤 나지막하게 들리는 사장님의 목소리. “로스가스랑 경양식 돈가스랑 뭐가 달라서 가격차이가 나지?”시간이 몇 분 흐른 뒤에야 주방에 계신 사모님이 조리법의 차이에 대해 알려주셨다,
“아, 일식 돈가스에 들어가는 소스는 사과 파인애플인데 신맛이 좀 더 강하고 농도도 진해요. 경양식 돈가스에 끼얹는 소스는 양파랑 토마토 베이스! 색이 좀 더 붉죠? 끼얹어서 먹는 거라 감칠맛은 이게 더 강해요. 케첩이랑 우스터소스도 배합돼 있어요. 그리고 위에 생크림이 살짝 올라가지. 요즘엔 이게 좀 더 잘 나가요.”
설명을 들은 나는 망설임 없이 경양식 돈가스를 시켰다. 사모님이 말씀하신 대로였다. 캐러멜 색에 가까운 일식 돈가스 소스와는 달리 경양식 돈가스의 그것은 한층 붉었다. 소스에 적신 돈가스를 한 입 먹는 순간 적당한 산미와 함께 강한 감칠맛이 느껴졌다. 토마토소스 스파게티를 먹을 때 느껴지는 그 감칠맛이었다. 그 뒤로는 고소한 생크림의 향이 스쳐갔다.
한마디로 내가 어릴 때 정신 못 차리고 먹었던 경양식 돈가스의 맛, 그 자체! 아니, 그 이상이었다. 여기에 고기까지 두툼해 나무랄 데 없었다. 완벽한 점심식사였다. 사장님이 막힘없이 대답해 주면 더 좋았겠지만. 그건 그것대로 배울 게 생겨 좋았다. 좋은 서버는 음식에 대한 설명을 조리 있게 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그래야 구매 과정에서 오해가 생길 여지를 없앨 수 있고, 손님의 선택권을 온전히 보장해 줄 수 있으며, 동시에 구매 욕구까지 고취시킬 수 있다.
무엇보다 당신이 사장이라면, 정통함은 의무다. 그것이 곧 손님에게 신뢰를 주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에 정통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당신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더불어 당신이 정통해야 직원들에게도 빈틈없는 교육이 가능하다. 가족들끼리 뭉쳐 창업을 했다면 더더욱 유념해야 한다. 각자의 역할을 핑계 삼아 분야마다 선을 긋게 되면 어딘가는 사각지대가 생기기 마련이다. 경양식 돈가스에 대한 질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