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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에게 맞출 수 있는 건 최대한 맞추자

by 일로



Menu 25. 손님에게 맞출 수 있는 건 최대한 맞추자


어느 날 SNS에 뜬 ‘반도의 흔한 중국집 메뉴판’이라는 내용의 글을 봤다. 자세히 보니 메뉴판에 적힌 세트메뉴의 종류만 무려 40가지였다. 짜장면 2인분에 만두, 짜장면 3인분에 만두, 짜장면 4인분에 만두…. 이 글에 다 옮길 수 없을 만큼의 경우의 수가 메뉴판에 다 담겨 있었다(저 크기의 메뉴판을 만든 것도 신기하다). 존경스러웠다. 반어법이 아니다. 손님의 모든 기호를 최대한 반영하겠다는 사장님의 의지가 느껴졌다. 세트메뉴 수십개를 구성했다는 건 재료 원가와 메뉴 원가가 모두를 완벽히 알고 있다는 뜻이다.


어느 가게인지는 모르겠으나, 사장님께 진심으로 존경을 표한다.


물론 이는 특수한 경우다. 현실적으로 모든 가게가 이런 구성을 만들기는 어렵다. 중화요리 전문점이 아닌 곳에서는 특히 그렇다. 일단 메뉴판을 제작하기가 어렵고, 0.5인분을 만들기 적합하지 않은 음식들이란 게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주방에 굉장한 피로감을 안겨준다. 주방은 몸으로 움직이는 공간이다. 의지가 아니라 몸에 새겨진 습관에 의해 움직인다. 계산할 게 많아지면 오히려 그 때문에 실수가 많아진다. 물론 손님의 기호를 제한하는 것도 도리는 아니다. 전부는 아니라도 최대한 맞춰줄 수 있어야 한다.


우리 가게에는 돈가스와 메밀국수 세트가 있다. 이 경우 돈가스는 등심인데, 이를 안심으로 바꿔줄 수 있는지 문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때는 등심과 안심의 차액만큼 추가해 계산한다. 반대로 우동이 들어간 돈가스 세트를 메밀로 바꿀 수 있는지 문의하는 손님도 있다. 역시 우동세트와 메밀국수 세트의 차액만큼 추가한 뒤 결제에 반영한다. 금액 차이는 보통 1,500원에서 2,000원 정도다. 나는 손해를 볼 일이 없고, 손님은 원하는 기호에 맞춰 식사를 할 수 있어 좋다. 약간의 수고가 들지만 결과적으로 모두가 행복한 선택이다.


반대로 세트 메뉴에서 구성 상품 중 일부를 빼달라고 할 때도 있다. 생각 외로 이런 경우가 적지 않다. 보통은 해산물 알레르기가 있어 돈가스 모둠 정식에 새우튀김을 빼달라는 요청들이다. 이때 “알겠습니다”하고 메뉴 값을 다 받는 건 도리가 아니다. 예의상으로라도 가격에 맞게 다른 구성으로 바꿔드릴지 여쭤보자. 그마저도 괜찮다고 한다면 그때는 이미 이것만으로도 양이 많아서 벅차다는 의미일 수도 있기에 본래 가격을 받아도 큰 무리는 없다. 다른 구성으로 바꿀 때를 대비해 메뉴별 단가는 기본적으로 다 파악하고 있자. 정 모르겠으면 주방과 상의하자. 이런 몇 마디 말만으로도 손님들은 당신의 호의를 읽는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 첫째, 우리가 손해를 보면 안 된다. 한 두번 손해를 보는 건 괜찮다. 하지만 손해를 감수한 전례가 남는다는 건 또 다른 얘기다. 손님의 요구가 메뉴의 가격을 초과할 경우 “죄송하지만 이 구성으로 하면 단가를 넘어서서요. ”한두 번 서비스로 드리는 거야 괜찮지만 계속 이렇게 내드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부디 이해 부탁드립니다.”라고 하면서 벗어나자. 손님이 손해를 보는 것은 도리가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손해를 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보통 이렇게 말씀드리면 다들 이해한다.


둘째, 메뉴에 대한 존중이 결여된 부탁은 정중하게 거절하자. 이를테면 돈가스정식인데 곁들여 나오는 공깃밥을 초밥으로 바꿔달라는 등 메뉴의 본래 취지를 벗어나는 요구는 받아들이면 안 된다. 여기서부터는 일이 복잡해진다. 잘못하면 수백 가지의 경우의 수를 머릿속에 넣고 일해야 할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정찰제의 기본 원칙이 흔들린다는 데 있다. 손님의 기호를 최대한 맞추고자 부분적인 조율을 하는 것이지 흥정이 주가 되면 안 된다. 어떤 경우에도 가게의 근본적인 원칙을 흩트리는 부탁은 받지 않는 게 식당과 고객 모두에게 좋다. 융통성이 형평성을 무너뜨리면 다른 손님에게 피해가 전가된다. 잘 알겠지만 이때 거절은 정중하게 하는 게 좋다. 여기에 맞는 응대 레퍼토리를 만들어 놓기를 권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손님의 기호를 최대한 반영하려는 노력을 견지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가게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음식점은 천지에 차고 넘친다. 모두가 웃는 낯으로 손님을 맞이한다. 하지만 ‘여러 제약사항이 있지만 그럼에도 당신이 원하는 것을 최대한 맞춰주고 싶다’고 말해주는 가게는 흔치 않다. 이러한 제안들은 손님들에게 인간적인 환대를 받고 있다고 느끼게 한다. 상기한 원칙을 지키고 고객과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면 말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환대는 당신이 이 공간의 주인임을 말해주는 증거다. 오직 주인만이 손님을 대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에 지인들을 초대한 것과는 다르지 않으냐고? 그렇다면 고객이야말로 진정으로 환대받아야 마땅할 존재일 것이다. 내 가게까지 직접 찾아와 금전적 대가까지 치러 주니까. 그들을 인간적으로 환대하지 않을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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