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u 26. 손님의 몸짓을 읽자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책, 자기 계발서 애독자라면 많이들 알고 있으리라. 말 그대로 어떤 분야에서든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으려면 1만 시간은 쏟아부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1993년 미국 콜로라도 대학교의 심리학자 앤더스 에릭슨(K. Anders Ericsson)이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굳이 1만 ‘시간’에 갇혀 있을 필요는 없다 생각한다. 경험해 보니 무엇이든 만 번 이상 반복하면 어느 누구든 일정한 경지에 다다를 수 있더라. 사람을 만 명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루에 열 명의 손님만 만나도 한 달에는 300명, 일 년이면 3,600명이다. 10년이면 무려 3만 6,000명이다. 이 정도 되면 손님들의 몸짓이나 눈빛만 봐도 원하는 바를 읽을 수 있다. 각 연령대 별로 나타나는 생활양식과 행동 패턴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그 자체가 하나의 빅데이터인 셈. 이를 서비스에 이용하면 손님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물론 모든 경우 예측이 맞는 건 아니다. 그래도 열 번 중 아홉 번은 생각한 바대로 흘러가는 편이다. 그럼 나머지 한 번은? 그냥 “어이쿠, 죄송합니다!”하고 무던히 잘 넘어가면 된다. 이런 일이야말로 실수를 두려워하면 안 된다. 아홉 번의 성공이 초래하는 효용이 한 번 실패했을 때의 비용보다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낀 십여 초의 시간이 축적되면 일에 큰 도움이 된다. 일이 적체되는 사태를 미연에 막을 수 있다. 시간도 아끼고 고객 만족도도 높아진다면 이를 실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손님의 몸짓을 어떻게 읽냐고? 자주 보면 보인다. 추위를 느끼는 손님은 손을 자꾸 주무르듯 만진다. 주로 나이가 지긋하신 여사님들이 그렇다. 날씨가 추워지는 10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는 해당 범주에 속하는 손님들에게는 따뜻한 물을 제공하는 게 좋다(생각보다 찬물을 대하는 성별과 연령 간 차이가 확연하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물이 너무 뜨거워도 안 된다는 것이다. 생각 없이 입에 가져갔다 크게 데일 수 있다.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각각 8대 2로 섞어서 나가면 좋다. 우리 가게는 물통을 가져다 드리는 데 어떻게 하냐고? 이 경우 직접 컵에 따라서 드리는 게 반응이 더 좋다. 대부분의 여사님들이 물을 적게 드시니 물통을 리필하지는 않을까 너무 걱정 안 해도 된다(미지근한 물통을 따로 한두 개 두는 것도 방법이다).
경험상 가장 물을 많이 소비하는 연령대는 10대 20대다. 활동량도 식사량도 전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많다. 해당 연령대의 손님이 4명 이상 일행으로 왔다면 물통을 두 개 이상 제공하는 게 좋다. 어차피 높은 확률로 리필을 요청할 것이고, 바쁜 시간대라면 이때 낭비되는 몇 초 의 시간마저 아깝다. 가끔 1, 2인 손님들 중에서도 물 한 통을 다 소비하는 경우도 있다. (물통의 재질이 불투명하다면) 컵에 물을 따를 때 물통의 기울기를 보면 리필 여부를 짐작할 수 있다. 수평보다 큰 각으로 물통을 기울이면 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표정이나 시선을 보고 알 수 읽어낼 수 있는 것들도 많다.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 키오스크 대신 메뉴판을 먼저 집어 든다면 나중에 자신을 호출할 가능성이 높으니 미리 준비하자. 먼저 다가가 “사람이 있으니까 언제든 편하게 불러주세요!”라거나 “불편하시면 그냥 저한테 시켜주세요!”라고 먼저 말을 건네면 반응이 좋다. 만약 나이가 지긋한 손님이 메뉴판을 보며 눈을 찡그리거나 안경을 만지작거린다면 사진이나 글자 크기가 작아 읽는데 불편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이런 일들이 생긴다면 반드시 메뉴판을 개선해야 한다.
메뉴를 골랐지만 자신의 선택에 확신이 들지 않는 사람들은 메뉴판을 계속 본다. 그냥 메뉴판을 보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가게의 정보나 판매 메뉴들이 궁금한 사람들은 메뉴판을 처음부터 차례대로 훑는다. 자신의 주문에 아쉬움이 남는 손님은 주문한 메뉴의 페이지와 끝내 주문하지 않은 메뉴의 페이지를 번갈아 본다. 이럴 때는 주문서를 바로 주방에 전달하지 않고 1분 정도 시간을 두는 게 좋다. 주문을 번복할 가능성이 높다. 메뉴판 대신 벽에 붙은 메뉴 포스터를 여기저기 둘러본다면 처음 온 손님일 가능성이 높다.
만약 손님이 주방 쪽을 계속 쳐다본다면 메뉴가 빨리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이 있는 상태다(당연히 표정은 밝지 않다). 높은 확률로 컴플레인이 들어올 테니 먼저 다가가 “메뉴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약 00분 정도 남았습니다. 최대한 빨리 내 드리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하자. 최대한 빠르게 조치할수록 일이 커지는 걸 막을 수 있다.
어르신들의 경우 튀김을 잘 소화하지 못한다. 욕심은 있지만 그만큼 드시지 못한다. 동시에 집에서 해내기 어려운 요리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포장해서 가져가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어르신들이 식사를 마무리하며 튀김이 담긴 그릇을 한쪽으로 빼놓는다면 먼저 가서 ‘남은 튀김은 포장해 드릴까요?’라고 여쭤보자. 위에서 언급한 것들 중 몇 개만 실천해도 ‘센스 있다’는 손님의 혼잣말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쯤 되면 알겠지. 결국 ‘센스’란 경험에서 나온다는 걸. 여기에 약간의 배려를 더하면 그는 서버로서 자신의 일을 다 했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