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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의 취향을 기억하자

by 일로


Menu 27. 손님의 취향을 기억하자


구 여자 친구(현 아내)와 같이 가던 쌀국숫집이 있다. 양지 쌀국수가 베스트 메뉴다. 언제 가도 국물 맛이 진하고 야채도 싱싱하다. 잘 삶은 고기를 채반에 밭쳐 놓았다 그때그때 썰어 준다. 딱 봐도 대충 배운 집은 아니다. 아쉬운 게 있다면 라임이나 고수가 따로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어쩔 수 없지. 싫어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테니까.


그래서 이 가게에 오면 늘 라임과 고수를 추가로 주문하곤 했다. 시키는 메뉴도, 추가 주문도 매번 똑같았다. 사장님도 슬슬 우리를 알아보는 눈치였다. 하지만 레몬과 고수는 늘 별도로 말해야만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언제부터인가 ‘라임이랑 고수 주세요’라는 말이 입에 잘 붙지 않더라. 매번 추가로 주문하기가 민망했다. 사장님의 잘못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냥 내가 좀 소심하다. 메뉴판에 적어 놓고 추가 비용 받았으면 좋겠는데, 또 그건 아니더라. 지금은 꽤 멀리 떨어진 동네로 이사를 왔고, 자연히 그 가게에 갈 이유 역시 사라졌다.


가끔 그 가게에서의 일을 돌이켜다. 매번 같은 요청을 하는 게 불편하고 싫은 (나 같은) 손님이 분명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서버가 손님의 취향을 기억해 먼저 조치하는 건 어떨까? 내향적인 손님들에게는 분명 적지 않은 편의가 될 것이었다. 이후부터는 매번 같은 메뉴, 같은 요청을 하는 손님에게는 우리 쪽에서 먼저 필요한 것들을 내간다. 네 번 이상 방문해 같은 주문, 같은 요청을 하는 손님에게는 반드시 이 원칙을 적용한다.

실제로 매번 일관된 주문과 별도요청을 하는 손님들이 꽤 있다. 미소시루(일본식 된장국)보다 우동 국물을 달라 요청하는 손님도 있고, 반찬과 물을 아예 드시지 않는 손님도 있다. 아흔 살 노모와 오시는 노신사 한 분은 늘 생선가스에 온면을 주문하는데, 어김없이 깍두기와 앞접시, 그리고 가위를 요청하신다. 인력사무소에서 일하는 단골손님은 매운 돈가스에 청양고추를 얹어 드신다. 이분들은 굳이 별도의 요청을 하지 않아도 내가 알아서 그에 맞게 서빙해 드린다. 당연히 반응도 좋다. 차츰 나를 따로 찾는 분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내가 있으면 손님들은 같은 말을 매번 반복하지 않아도 되니까. 나는 카운터에서 테이블로 오가는 움직임을 최대한 줄일 수 있다. 모두에게 이득이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이는 서버의 체력 안배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메뉴 하나당 만원으로 가정하면, 매출 100만 원을 기준으로 100회 왕복이다. 카운터에서 가장 먼 테이블까지의 거리가 10미터라고 하면 왕복 20미터다. 100회면 하루 동안 약 2킬로미터를 걷는 셈이다. 적지 않은 움직임이다. 자신의 노동강도를 줄이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왕복 횟수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그래야 온전히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다. 서버는 결코 한가한 직업이 아니다. 바쁜 와중에 전화응대, 정리, 포장도 해내야 한다.


일이 손에 익으면 손님의 관계와 연령대에 따라 필요로 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이를 미리 파악해서 제공하는 것도 위와 같은 맥락에서 중요하다. 커플이 오면 나눠 먹을 수 있도록 앞접시, 국물 숟가락(렝게)과 쇠숟가락을 두 개씩 내 주자. 아이를 동반한 손님이라면 앞접시 두 개, 어린이용 포크, 수저를 하나씩 내 가면 좋다(아이도 엄연한 손님이다. 군대 '짬밥'처럼 반찬 여러 개를 한 그릇에 담아 먹게 하지 말자). 밝은 옷을 입은 손님이 매운 음식을 시켰다면 앞치마는 자동으로 나가야 한다. 어차피 손님들이 먼저 이것들을 요청할 것이다.


핵심은 능동적 사고다. 당신이 먼저 보고 먼저 움직여야 동료 직원들은 여유를 찾고, 매장을 온전히 자신의 통제 하에 둘 수 있다. 손님의 요청에 질질 끌려다니지 말자. 당신도 직원도 손님도 다 힘들어진다. (쓰기조차 낯간지럽지만) 고객 감동은 나중의 일이다. 모두가 불행할 선택은 하지 않는 게 서비스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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