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u 28. 손님과 논쟁하지 말자
며칠 전 일이다. 이제 막 들어온 손님이 호출을 했다. 들어오자마자 서버를 호출하는 건 흔한 경우가 아니다. 뭔가 예상 밖의 일이 벌어지리라는 직감이 드는 순간, 역시나였다. “원래 돈가스 정식에 우동이 큰 게 나오지 않았나요?”라는 질문이 날아왔다.
“예? 그런 메뉴는 판 적이 없습니다만”이라고 대답하려다 맞은 편 테이블에 앉은 아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눈치가 필요한 때임을 깨달았다. 아이가 그 구성으로 먹고 싶은 건가? 아니면 자신이 원하는 구성을 아이에게 먹이고 싶은 엄마의 바람이 투영된 건가? 아니면 진짜 그런 적이 있었다고 믿는 걸까?
질문의 뉘앙스를 곱씹어 봤다. 일단 이 두 사람에게 중요한 건 사실 여부가 아닌 듯 했다. 왠지 아이가 그 구성을 원하는 것 같았다. 표현이 서투른 아이의 욕망을 엄마가 대변해 주는 인상이었다.
그 상황에서 내가 “그런 사실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면 아이가 실망할 게 뻔했다. 그럼 엄마가 토라진 아이를 달래면서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할 테고, 끝내 나에게까지 불똥이 튈 수도 있었다. 이럴 때에는 칸트의 정언명령보다 제레미 벤담의 공리주의에 기대야 한다. 최대 다수가 누릴 수 있는 최고 수준의 행복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진실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렇다. 선의의 거짓말을 해야 할 타이밍이었다.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거짓말을.
“잠깐 그 구성으로 판 적이 있긴 한데, 찾으시는 분이 없어서 지금은 메뉴판에 없습니다, 죄송해요. 하지만 정식에 나오는 우동의 크기가 0.5인분이니 3500원만 추가해 주시면 1인분으로 맞춰서 제공해 드릴 수 있습니다. 당시 판매 가격과 동일합니다.”
“아, 그래요? 다행이다! 그럼 그렇게 부탁드릴게요!”
다행이다. 잘 넘어갔다. 내가 본 게 정확했다. 엄마가 아이의 욕망을 대변하고 있는 게 맞았다. 두 사람은 음식을 남기지 않고 맛있게 먹은 뒤 웃는 얼굴로 가게를 나섰다. 나 또한 무사히 가게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가끔 잘못된 사실을 주장하는 손님들이 있다. 대체로 ‘과거에 이런 메뉴가 있지 않았나요?’라거나 ‘전에 다른 메뉴가 있었던 것 같은데’라는 식이다. 어르신들 중 일부는 처음 뵙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여기 사장이랑 잘 아는데”하며 자신의 주장이 진실임을 강변하는 경우도 있다. 경험상 그들과 논쟁하는 건 하책이다. 왜냐면 그들은 자신이 잘못된 사실을 말하고 있음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게 사실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그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사실은 결국 원하는 바를 돌려 말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손님의 주장을 일부 인정하는 게 좋다. 그리고 우리가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 다른 선택지를 제안하면 된다.
나는 “찾는 손님들이 없어서 원하시는 메뉴가 지금은 메뉴판에 없다” 덧붙인 뒤, “지금 단가로는 여기까지는 맞춰 드릴 수 있다”라고 말하는 편이다(재료가 있고 수지타산이 맞다면 흔쾌히 만들어 드리기도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손님이 원한다고 다 맞춰줄 순 없다. 모두가 만족할 만한 절충안이 나오면 좋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생긴다. 손님이 아쉬워하는 눈치면 그 때는 “원하는 바를 다 맞춰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라고 덧붙인다. 그쯤 되면 손님도 내 태도가 진심임을 알아준다. 손님이 짓궂어도 웃는 낯에 침을 뱉지는 않는다.
손님에게 너무 휘둘리는 거 아니냐고? 전혀! 외식업에 몸 담고 있다면 인간성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 정도는 있어야 한다. 흥정에도 선이 있다는 걸 손님들도 안다. 지난 10년 간 가격에 포함되지 않는 걸 생짜로 달라는 손님은 이제껏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는 각자 기준이 다를 뿐 저마다의 경우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손님의 ‘경우’를 신뢰하고 우리가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 역제안을 하는 게 여러모로 이득이다. 그 편이 정신적으로도 덜 소모된다.
물론 이게 가능하려면 모든 메뉴와 재료의 단가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손해를 볼 일은 없다. 이쯤 되면 손님과 사실 여부를 논박하지 말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겠지. 응대는 펜싱과 같다. 한 발 물러설 줄 알아야 자신에게 유리한 위치로 상대를 끌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