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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앞에 손님이 없다고 말 줄이지 말자

by 일로


Menu 30. 눈 앞에 손님이 없다고 말 줄이지 말자


작은 식당에서 뚝배기불고기를 사 먹었을 때 일이다. 김밥부터 제육볶음까지 수십 개의 메뉴를 저렴하게 파는 식당이었다. 전부 7~8000원 대의 가격에 브레이크타임도 없어서 쉬는 날 가끔 간다. 참, 이 가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셀프서비스가 아니다. 자리에 앉으면 사장님이 물통을 가져다주시기 때문에 한 여름에 뜨거운 걸 먹은 게 아니라면 굳이 정수기로 찾아갈 필요가 없다. 반찬 리필 역시 따로 요청해야 한다. 우리처럼 낭비를 막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 집 뚝배기불고기는 달달하고 짭짤하다. 국물에 밥 한 공기 비벼먹으면 딱 좋다. 다만 처음에 제공받는 김치가 좀 적다. 그래서 늘 한 번 정도 리필을 요청한다. 그날도 그랬다. 몇 초 뒤 구석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들렸다.


“여기 김치 좀 많이 올려 줘. 올 때마다 달라고 하니까.”


그 말이 계속 귓가에 남았다. 딱히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다. 내 어머니뻘 되는 연배의 사장님이니까. 대개의 경우 연세가 드신 분들의 말투는 좀 투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더불어 그 말투에 특별한 의미가 없다는 것 또한 안다. 내가 일할 때면 가끔 비슷한 연배의 손님들 몇 분이 반말로 주문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사실 그 때도 딱히 불쾌하지 않다. 사장님과도 몇 마디 가볍게 주고받고 웃는 낯으로 가게를 나섰다.


다만 그 말이 계속 귀에 남았던 건 ‘나는 일할 때 어땠을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서였다. 여기만 아니라 다른 가게에서도 손님의 요청을 주방에 전할 때 “00 테이블이 00 달래” “포장해 간대”식으로 반말을 섞어서 전하는 모습을 가끔 본다. (나와는 달리) 경우에 따라서는 그 표현에 불쾌함을 느끼는 손님도 분명 있을 것이다. 앞에서 아무리 친절하게 존댓말을 써도 뒤에서 말이 짧아지면 아무 의미 없다. 나이와 직업, 성별, 지위의 고하와 상관없이 손님은 손님이다. 앞에서 존댓말을 썼다면 뒤에서도 쓰는 게 맞다.


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특히나 말조심을 해야 한다. 매일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잘 느끼지 못한다. 환풍기 소리가 큰 탓이다. 목소리를 키우지 않고는 의사소통이 어려운 환경이다. 여기에 뭔가를 썰고 있거나 씻고 있다면 배에 힘을 잔뜩 주고 목소리를 내야 겨우 들린다. 문제는 그렇게 소음을 뚫고 주고받는 의사소통이 매장에 그대로 전해진다는 데 있다. 직원과 대화를 나눌 정도의 발성이면 당연히 매장 쪽의 손님도 듣는다. 일하는 입장에선 이를 자각하기 어렵다. 본의와는 상관없이 오해가 생기기 딱 좋다. 그러니 어떤 경우에도 손님을 입에 올릴 때 절대 반말을 섞으면 안 된다.


물론 다 아는데도 실행에 옮기기란 쉽지 않다. 바쁠 때는 특히 그렇다. 정신없을 때는 존칭을 붙이는 그 몇 초도 아깝다. 그렇다고 손님을 지칭하는 말에 반말이 섞이면 안 된다. 그때는 그냥 명사 위주로 주방과 소통하자. 주어를 생략하는 방법도 좋다. 이를테면 “포장용기 주세요! 남은 거 포장! 00번 손님 요청!” 식으로 말이다. 제조업에서는 제조 공정에서 각도 하나 온도 1도가 제품의 질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서비스업에서는 말 한마디, 아니, 종결어미와 접미사 하나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잘못 나온 제품은 폐기하고 보상하면 끝이지만, 말로 생긴 오해는 오랜 시간 앙금이 남는다. 기술적인 실수는 수습하면 된다. 하지만 인격적인 실패는 어떤 경우에도 치명적이다.


나는 믿는다. 당신이 선량한 사람이며 어떤 경우에도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그럼에도 살다 보면 여러 오해가 생길 수 있다. 이를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의사소통 과정에서 조금의 빌미도 남기지 않는 것이다. 평소에도 늘 몸가짐을 바로하고 조심해야 모두가 즐겁고 편하다.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사히 하루를 살아내는 일만큼 값진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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