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방글라데시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만날 거니까
다시 만나는 그 날까지 발로 타켄
올해를 다시금 활발하게 활동을 시작하는 해로 생각하고 있었다. 1월 방글라데시 방문이 마중물 역할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다음 활동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언제 다시 방글라데시로 갈 수 있을지, 다음 프로젝트는 어떻게 될지는 솔직히 나도 모른다. 2014년에 열기로 했던 아트페스티벌이 2차례나 연기되어 2015년에 열게 될지도 몰랐었고, (그 절묘한 타이밍이 아니었다면, 아마 열리지 못했을 것이다) 아트페스티벌 이후 방글라데시 수도 한복판에서 IS, 테러가 일어날지도 몰랐다. 이후 로힝가 난민사태로 콕스바잘 전 세계가 주목하는 긴급 구호 현장이 될지도 몰랐다. 5년 만의 방문, 새로운 계획들이 코로나로 인해 다시 발목이 잡힐지는 더더욱 몰랐다.
어느덧 방글라데시와 인연을 맺은 지 10년이 흘렀다. 생각해보면 방글라데시는 내게 한 번도 쉬운 곳이 아니었다. 2011년 4월 방글라데시로 처음 향하던 날, 홍콩에서 방글라데시로 가는 비행기를 타면서부터 이유 없이 아프기 시작했다. 극심한 두통과 어지러움, 메스꺼움이 비행 내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방글라데시에 도착하고도 컨디션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가장 덥다는 4월, 밖을 조금만 다녀도 더위에 쉽게 지쳤고, 혼란스러운 도로는 두통을 불러일으켰다. 방글라데시 현지 훈련을 마치고 근무지인 지방(실렛, Sylhet)으로 이사를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집에 누군가 침입한 일이 있었다. 내가 없는 시간 방문한 그는 온 집에 커다랗고 시커먼 발자국을 남기고 갔고 이후 나는 며칠 밤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지던 시위도 나를 힘들게 했다. 종교나 정치, 이유는 달랐지만, 폭력 시위를 동반하여 일상을 마비시킨다는 점은 항상 같았다. 근무하던 대학에서 폭동이 일어나 캠퍼스가 일부가 방화로 전소되어 일주일 넘게 출근을 하지 못한 적도 있었다. 거의 일과처럼 빈번하게 발생하는 접촉사고와 도망가던 운전자를 내가 잡았으니 미수에 그쳤으나, 오토바이 뺑소니 사고도 당했다. 매일 외로움은 물론 외국인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서 비롯된 인종차별과 갖은 추행에도 맞서 싸워야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매 순간이 위기의 순간이었다. 내가 더 이상은 안 되겠다며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왜 포기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러게, 나는 어쩌자고 다시 방글라데시를 돌아갔을까? 이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도 나는 왜 방글라데시를 그리워하는 걸까?
“마냥 힘들어할 수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고, 나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즐기느냐', '버티느냐'의 선택은 언제나 나의 몫이다.
그리고 무엇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것도 나의 몫이다.”
방글라데시에서 쓴 일기를 보니 제법 비장하다. 누가 등 떠밀어간 게 아닌 내가 선택한 길을 스스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포기하는 데에도 많은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어쩌면 다만 용기가 부족해서 포기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 시간들을 포기했다면 어땠을까, 감히 가늠할 수조차 없다. 지금 와서 그때를 돌이켜보면 힘든 만큼 그 시간이야말로 가장 빛나고 찬란한 순간이었다. 평생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과 경험을 함께한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그 시간이 있어 지금의 내가 있다. (물론 그 시간이 없었어도 무언가의 내가 되어 삶을 살아가고 있을 테지만 말이다.) 마음을 졸이고 애타게 했던 시간도 그 시간 속에 있다.
올해 계획한 일은 아마도 당분간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 소용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바심이 났다. 몇 개월에 걸쳐 1월 방글라데시 이야기를 마무리하지 못하는 것은 미련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코로나 확진이 절정에 이르던 올 초만 하더라도 금방 끝이 나겠지, 싶었다. 전 세계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방글라데시에서 첫 확진자가 발생하고 철렁하긴 했지만, 솔직히 이 정도까지 사태가 심각해지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시간이 약이 될 테고 곧 다카행 비행기를 타고 가며 추억을 회상하듯 코로나 사태를 이야기할 날이 오리라 믿었다. 그렇게 다음 여정으로 이어지는 해피엔딩으로 지난 방문의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싶었기 때문에 끝맺음을 미뤄왔다.
그동안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방글라데시가 아니라, 예측하기 힘든 미래에 혼자 조바심 내거나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고 걱정했던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미래는 알 수 없고, 미리 걱정하고 의심한다고 해서 일어날 일이 일어나지 않거나 앞당겨지지도 않는다는 걸 안다. 체념이나 포기가 아니라 현재의 일상을 살아가며 친구들을 다시 만날 날을 기다려야지.
다시 만나는 그 날까지, 모두 건강하길.
발로 타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