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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PLS 이혜령 Aug 27. 2020

당신은 행복한가요?

2020 방글라데시 ⑨ 행복 인터뷰

코로나와의 사투가 시작되기 전인 올해 1월, 일주일간의 짧은 일정으로 방글라데시에 다녀왔다. 5년 만에 방문이었다. 올해 다시 방글라데시에 방문할 일정을 계획하며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코로나로 인해 다시 기약 없는 약속이 되어버렸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데, 방글라데시 여정을 정리하는 게 조심스러워 미루다 보니 어느덧 여름이 되어버렸다. 더 늦기 전에 정리를 해둬야 할 것 같아 사진도 다시 꺼내 보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메모를 모았다.



언젠가 누군가가 내게 행복하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예상하지 못한 찜찜한 말이 돌아왔다. '정말? 그럼 계속 그렇게 살면 되겠네.' 비꼼의 말투였는지, 부러움의 말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그 말을 계속해서 되뇌게 됐다. 곱씹을수록 지금 정말로 행복한 것인지, 이대로 계속 살아도 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왜 우리는 행복하길 어려워할까? 왜 타인의 행복을 평가하거나 의심하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나의 행복에 확신이 생기는 것일까? 그럼 과연 행복이란 무엇일까? 행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방글라데시를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기억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을 것이다. 수년 전 한 연구 보고서에서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로 방글라데시가 발표됐기 때문이다.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인 방글라데시가 행복지수 1위로 발표된 이 보고서의 내용은 오랜 시간 회자되며 화제가 되었다. 많은 사람이 이 보고서를 인용하며 행복의 조건이 물질적인 것에 있지 않음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내 이 보고서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행복지수가 아닌 체념 지수라 봐야 맞다는 의견이었다. 이에 대한 근거로 GDP, 빈곤율과 문맹률, 부패나 민주주의 지수 등을 제시했다. 어떤 사람들은 문맹률을 강조하며, 글을 읽지 못해 잘못 체크한 탓에 행복지수가 높게 나온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보고서 자체를 신뢰하지 않거나 어딘가 왜곡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 중엔 방글라데시를 직접 경험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나라가 이런데 당신들은 어떻게 행복하다고 말하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사람들에게 물었다.

매일 과격한 시위가 이어지고, 거리에는 구걸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실제로 행복지수가 높았다는 자체를 부끄러워하는 방글라데시 사람을 만난 적도 있었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배우지 못해서 행복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모른다’며 그는 '행복지수가 아니라 체념 지수'이거나 교육받지 못해 삶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배우지 못하면 행복을 알 수 없는 걸까?)


언제부터인지 그 어떤 조사에서도 행복지수가 높다는 나라에서 방글라데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방글라데시는 하위권에 머물렀다. 정말 그 보고서가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그들이 불행해진 걸까?


뒤늦게서야 나의 질문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 불행해야 마땅한데, 왜 진실을 말하지 않냐며 그들에게 불행까지 강요한 것은 아니었는지 뒤늦은 죄책감과 후회가 나를 괴롭혔다. 마치 행복하기 위해서는 자격이나 조건이 필요한 것처럼 물었던 것이다.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은 모두가 같을 수 있지만, 행복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아니 알고도 인정하지 않았다.


다시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5년 전 콕스바잘 아트페스티벌에서 처음 행복에 대한 소소한 이벤트를 진행했다.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마련된 갤러리 한 벽에 방글라데시 지도를 붙였다. 갤러리를 찾은 모든 아이와 가족에게 행복하냐고 물었고, 행복하다고 대답하면 하트 모양의 스티커를 주고 방글라데시 지도에 붙이게 했다. 행복하냐는 내 질문에 모두가 행복하다고 대답했고, 방글라데시 지도에는 행복을 뜻하는 하트가 늘어났다. 태어나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몇몇 아이들은 스티커를 두 번 세 번 받아 지도에 붙이기도 했다.


그때 알았다. 우리 인간은 참 이상해서 타인의 행복을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행복하냐는 질문은 꼭 행복해지는 마법의 주문 같았다. 지금도 그때를 다시 떠올리면 행복해진다. 다음에 가게 되면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야겠다. 그리고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가능하다면 잘 엮어 많은 사람에게 공유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5년 만에 방문한 방글라데시. 시간이 짧아 많은 질문을 할 수 없겠지만, 많은 곳을 방문하는 만큼 다양한 사람은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트 페스티벌 때와는 상황이 달랐기 때문에 이게 될까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모니터링을 위해 방문했던 기관과 연착으로 대기 시간이 길어진 공항에서 틈틈이 짧은 인터뷰를 진행해 총 50명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지인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당신들을 다시 만나서 행복합니다."

"당신들을 알게 돼서 행복합니다."

"콕스바잘을 여행하게 돼서 행복합니다."

"10년 만에 고향을 방문해서 행복합니다."

"처음으로 비행기 여행을 하게 되어 행복합니다."

"이곳에서 공부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이 학교의 학생이라 행복합니다."

"독립된 나라에서 태어나서 행복합니다."

"아름다운 나라인 방글라데시 사람이라서 행복합니다."

"방글라데시 사람이라서 행복합니다."

"웃을 줄 알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누군가의 미소가 내게 기쁨을 주었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당신들처럼 미소가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이미 완벽하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나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잠을 잘 자서 행복합니다."

"친구가 있어서 행복합니다."


행복의 조건으로 필수적이지는 않으나 약간의 부와 권력, 명예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대다수가 그건 아니, 라며 부정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보다 조금만 더 여유가 있다면 행복하겠다는 생각까지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길 바란다. 행복한 삶을 바라면서도 정작 우리는 언제 행복한지 모르고 사는 경우가 많다. 조금만 더를 외치면서 지금의 행복을 막연한 다음으로 미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소소한 일상에서 우리는 매일 행복과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정작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체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뒤돌아 보게 했다.


단지 행복한지 물었고 그 이유를 물어본 것뿐이었다. 행복에 대해 말하고 타인의 행복을 듣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행복이 내게도 전염되는 것 같았다. 잠시나마 행복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었다.


당신은 행복한가요?



올해 1월 방글라데시에서 진행한 행복 인터뷰 영상(한글 자막)은 유튜브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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