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 장기집권한 하시나 총리, 결국 인도 도피로 마무리
방글라데시 총리가 오늘 사임했다. 2013 샤허박 시위, 2018년 학생 시위에 이어 정의 회복을 외치던 시민들의 목소리가 결국 총리를 사임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번 시위의 시작은 공무원 할당제에 반발하여 일어난 학생 시위였다. 지난달 16일 공무원 할당제에 반발하여 시작된 학생 시위를 정부가 강경진압하면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공무원 할당제의 핵심은 바로 정치인들의 부정부패 문제인데, 시위 기간 중에도 총리 측근의 비리 이슈가 다시금 터지면서 시위는 반정부 시위로 번지게 되었다. 정부는 인터넷과 전화를 비롯한 모든 통신 서비스 차단과 통행 금지령을 발표하고 시위 진압을 위해 장갑차를 비롯한 군 투입, 발포 명령 등 극단의 조치로 시위대를 저지하려 했지만, 수많은 사상자를 발생시키며 상황을 악화시켰다.
정부가 급하게 절충안을 제시했지만, 오랜 세월 방글라데시에 만연해 온 정부와 정치인들의 부정부패, 불평등한 부와 기회의 분배, 불공정한 시스템에 대한 분노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고 시위는 하시나 총리의 퇴진 요구로 확대되었다. 시위진압 과정에서 수백 명이 사망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하라는 시위대에 총리는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하며 다시금 강경진압을 지시했다. 정부는 4일 오후 6시부터 무기한 통행 금지령을 발표했지만, 시민들은 이에 불복종을 선언(Non-Cooperation Movement)하고 유혈진압에 항의하며 수도로 모여들기 시작(March to Dhaka)했다. 수십 만 명의 시위대가 수도로 모였고, 총리 관저로 향하자 총리는 5일 오후 사임을 발표하고 인도로 도피했다. 이에 흥분한 시위대의 일부가 하시나 총리와 관련한 동상, 건물, 차량을 파괴, 방화하면서 무정부상황에 빠져들었다.
오후 4시 육군 참모총장이 대국민연설에서 총리의 사임과 임시 과도정부가 구성될 것을 발표했다. 시민들에게 시위대의 요구사항을 수용할 것이며, 일상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다. 시민들 또한 SNS를 통해 과격한 시위를 자제하길 요청에 나섰다.
사임한 하시나 총리는 1975년 쿠데타로 인해 암살된 아버지에 이어 1981년 아와미 리그의 총재로 정치를 시작했다. 1996년 총선에서 아와미 리그가 승리하면서 하시나가 총리 자리에 오르게 된다. 2001년 총선에서 베굼 칼레다 지아에게 한 차례 총리자리를 넘겨주지만, 재집권 이후 야당의 선거 보이콧 속에서 치러진 2014년, 2018년, 2024년 총선에서 연임에 성공해 장기간 정권을 잡고 있었다. 집권 기간 하시나 측근들의 비리와 부정부패 논란, 노골적인 정적 제거, 민주 인사와 언론인 탄압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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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학생 시위 관련 글 보기 잘못된 정보를 거절할 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