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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PLS 이혜령 Nov 03. 2015

5화. 위기는 곧 기회

아트페스티벌 이야기 ⑤  기다림, 우리를 단단하게 한 시간

정치적 대립으로 시작된 전국적인 소요 사태는 두 달 넘게 이어지다 4월 이후 안정화되면서 다소 일단락됐다. 5월에는 아트페스티벌을 치를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5월 수도에서 열리는 축제로 참여 작가들의 일정을 조율하기가 어려웠다. 6월부터 8월까지는 방글라데시 우기로 엄청난 폭우와 사이클론 등의 자연재해 문제뿐 아니라 6월 중순부터 7월 중순까지는 이슬람교의 금식 기간인 라마단까지 있어 행사를 진행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일정은 하반기로 미뤄졌다. 


6월 18일, 드디어 기다리던 소식이 들려왔다. 대관 일정 조율을 마치고 9월 2일부터 8일까지로 아트페스티벌 일정이 잡혔다. 7월 1일부터는 방글라데시 현지에서 아트페스티벌 운영팀을 꾸려 본격적으로 아트페스티벌 준비에 들어갔다. 우리와도 지속해서 이메일과 메신저로 연락하며 최종 프로그램을 조율해나갔다. 하지만 몇 번이나 변경된 일정으로 참여를 약속했던 예술가들도 참여가 불확실해지면서 취소되는 프로그램도 생겨났다. 탈 만들기 워크숍 팀과 수채화 워크숍 팀이 참석이 불확실해지면서 취소됐다.


여전히 불확실한 일정이었지만, 우리는 아트페스티벌에 참여할 한국 작가를 알음알음 묻고 찾아가 작가를 섭외했다. 다다 역시 취소된 프로그램을 대체할 프로그램과 예술가를 섭외하기 위해 편도 15시간 걸리는 수도와 다른 지역을 오가며 바쁘게 움직이며 프로그램을 다시 꾸려갔다. 하지만 다시 현지에서 문제가 생겼다며 연락이 왔다. 연초 두 달 넘게 이어진 시위로 사업에 큰 타격을 입어 후원자들이 후원을 취소했다고 했다. 3월 이후, 콕스바잘 시장이 임기 종료가 되어 새로운 시장이 취임했는데 새로운 시장 역시 아트페스티벌에 대한 지원금을 취소했다는 것이었다. 


더 큰 문제는 시장의 요청으로 일정을 9월 10일에서 14일까지로 일정 조율까지 했지만, 아트페스티벌에 대한 승인도 차일피일 미루고 있어 9월 아트페스티벌 진행이 불확실하다는 소식이었다. 최종 통보가 있을 때까지 항공권 발권과 비자 신청을 미뤄달라고 했다. 시에서 이뤄지는 행사는 시장의 사인을 받아야 할 수가 있는데 일정이 연기되면서 그사이 새로운 시장이 취임해 다시 승인을 받아야 했다. 구두로는 아트페스티벌을 승인해 걱정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서류에 사인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거였다. 원래 계획으로는 8월 중순에는 출국하려 했지만, 8월에 들어설 때까지 시장의 승인을 받지 못해 자꾸만 출국이 미뤄졌다. 늦어도 8월 말에는 방글라데시에 들어가야 행사를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한시도 허비하지 않고 시장의 승인을 받으면 바로 방글라데시로 떠날 수 있도록 준비를 해뒀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초초해졌다. 솔직히 오랜 기다림에 많이 지쳐 있었고, 사람들이 아트페스티벌 소식을 물을 때마다 엄청난 압박감을 받아 위축되었다. 넋두리라도 하고 싶었지만, 투정으로 비칠까 봐 그럴 수도 없었고 그러고 싶지 않았다. 누가 강요해서 한 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기다림도, 이 시간을 견디는 것도 온전히 우리의 몫이었다. 9월 말엔 이슬람 최대 명절 중 하나인 고르바니 이드(희생제)가 있어, 이번에 정해진 날짜에 승인을 못 받는다면 다시 일정은 무기한으로 연기될 수 있었다.


8월 중순이 넘어가자, 더 미룰 수가 없었다. 승인을 받고 출국하기엔 비자도 받아야 했기 때문에 제때 도착하지 못해 아트페스티벌 진행에 지장을 줄 수가 있었다. (랜딩 비자가 있었지만, 3월 비자를 받고 출국을 하지 못했기 문제가 될 수 있어 안전하게 비자를 받고 가기로 했다. 비자발급에는 3일 정도 소요가 된다.) 논의 끝에 출국 전에 시장의 승인을 받지 못하더라도 일단 8월 말 출국을 하기로 했다. 승인받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했지만 만일의 경우도 대비해야 했다. 마지막까지 승인을 받지 못하는 최악의 경우가 발생한다면, 아트페스티벌이라는 이름을 포기하고 프로그램을 쪼개서라도 콕스바잘 시내의 중학교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출국 결정을 하고 출국을 하기까지는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출국 결정을 하자마자 바로 서울로 올라가 비자를 신청하고 항공권을 끊고 나니, 출국일까지 겨우 3일밖에 남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가 정신없이 출국 준비를 하는 동안 방글라데시에서 새로운 소식이 왔다. 공식 명칭을 2015 콕스바잘 아트 페스티벌 2015 Cox's Bazar Art Festival에서 국제 아트 비엔날레 콕스바잘 2015 International Art Biennale Cox's Bazar 2015로 변경했다는 소식이었다. 이름뿐 아니라, 비엔날레에 맞춰 프로그램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새로운 프로그램이 추가되었고 3월보다는 더 많은 예술가가 참여하게 됐다.


▲ 국제 아트 비엔날레 콕스바잘 2015 포스터 국제 아트 비엔날레 콕스바잘에 참여하는 예술가의 이름이 모두 적혀 있다. ⓒ IABC2015


공식 명칭을 변경하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번 아트페스티벌에는 방글라데시 작가뿐 아니라 한국 작가도 참여하며 최근 새롭게 인도의 작가도 참여하게 됐다. 방글라데시, 한국, 인도 3개국 작가의 참여 콕스바잘이라는 지역을 넘어 국제적인 축제로 성장하고 있고 성장해나갈 것이라는 믿음과 의지를 반영했다는 것이다.


둘째, 2년마다 열리는 축제임을 더욱 친절하게 전달하자는 의견이 반영되었다.


셋째, 기존의 명칭보다는 변경된 이름으로 방글라데시 관공서와 후원자에게 더 많이 어필될 것이라는 의견 등이 반영되었다. 이번 축제를 준비하며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고, 좌절도 많이 했던 게 사실이다. 불안정한 정세와 재원 조달 방식과 지역의 한계를 뛰어넘어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축제를 운영하기 위한 시스템 개선과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고 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눠 왔었다. 더욱이 축제를 앞둔 상태에 많은 후원자가 후원을 취소한 상태였기 때문에 다시 후원자를 모으기 위해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었다.


여전히 정부나 기업의 후원으로 이뤄지는 크고 화려한 축제가 아니다. 다다는 아트페스티벌 총 예술 감독의 자리를 방글라데시 전역과 외국에서 다양한 예술 관련 행사를 진행해온 수도의 예술감독에게 양보했고 공동주최자로 참여하게 됐다.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라며 좌절하는 대신 자신의 자리를 내놓고 과감하게 결정하고 새로운 변화를 선택한 다다가 더 멋져 보였다.


그래서 출국하는 날 접한 소식이 갑작스럽기는 했지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다가 우리에게 의견을 물었다. 우리는 잠시 후, 비행기를 타러 갈 것이고, 다다의 선택을 믿고 따를 것이라고 했다. 다다는 급하다고 해서 한 번도 무언가를 결정해야 할 때 우리의 의견을 배제하는 일이 없었다. 우리가 함께하며 금전적인 후원도 물론 중요했겠지만, 이번 아트페스티벌을 준비하며 미래에 대한 비전과 꿈을 나눌 수 있던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 무엇보다 소중했고 가장 큰 결실인 것 같았다. 우리의 오랜 기다림의 시간은 허투루 흐른 것이 아니라, 우리를 단단하게 한 시간이었다. 함께 더 나은 기회, 더 많은 기회를 나누기 위해 저희는 더 큰 꿈을 그리기로 했다.


8월 29일, 6개월 넘게 애를 태우고 맘 졸이며 기다린 시간의 종지부를 찍고 우리는 방글라데시로 향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포스팅은 오마이뉴스에도 중복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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