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끝별 < 세상의 등뼈 >
- 정끝별
누군가는 내게 품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돈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입술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어깨를 대주고
대준다는 것, 그것은
무작정 내 전부를 들이밀며
무주공산 떨고 있는 너의 가지 끝을 어루만져
더 높은 곳으로 너를 올려준다는 것
혈혈단신 땅에 묻힌 너의 뿌리 끝을 일깨우며
배를 대고 내려앉아 너를 기다려준다는 것
논에 물을 대주듯
상처에 눈물을 대주듯
끝 모를 바닥에 밑을 대주듯
한 생을 뿌리고 거두어
벌린 입에 거룩한 밥이 되어준다는 것, 그것은
사랑한다는 말 대신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의 사랑으로
생을 지탱해 온 것일지도.
나의 노력과 애씀 이전에
누군가의 품을 판 돈으로,
누군가의 사랑으로
누군가의 지지와 응원으로
이만큼 생을 유지해 온 것일지도.
세상 도처에 혼자 인 듯한 날도
더러 있지만
무수한 날들의 행간에는
나를 사랑하는 이들의 기다림과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그리움이
촘촘히 틈을 메꾸며
기꺼이
생을 이어간다
누군가에 밥이 되어준다는 것은
가장 소소하고도 강력한 힘이 되어주는 것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