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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성이 Feb 15. 2022

누군가의 밥이 되어준다는 일은

정끝별 < 세상의 등뼈 >

세상의 등뼈


                          - 정끝별


누군가는 내게 품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돈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입술을 대주고

누군가는 내게 어깨를 대주고


대준다는 것, 그것은

무작정 내 전부를 들이밀며

무주공산 떨고 있는 너의 가지 끝을 어루만져

더 높은 곳으로 너를 올려준다는 것

혈혈단신 땅에 묻힌 너의 뿌리 끝을 일깨우며

배를 대고 내려앉아 너를 기다려준다는 것


논에 물을 대주듯

상처에 눈물을 대주듯

끝 모를 바닥에 밑을 대주듯

한 생을 뿌리고 거두어

벌린 입에 거룩한 밥이 되어준다는 것, 그것은


사랑한다는 말 대신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의 사랑으로

생을 지탱해 온 것일지도.


나의 노력과 애씀 이전에

누군가의 품을 판 돈으로, 

누군가의 사랑으로

누군가의 지지와 응원으로

이만큼 생을 유지해 온 것일지도.


세상 도처에 혼자 인 듯한 날도

더러 있지만

무수한 날들의 행간에는

나를 사랑하는 이들의 기다림과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그리움이

촘촘히 틈을 메꾸며

기꺼이 

생을 이어간다


누군가에 밥이 되어준다는 것은

가장 소소하고도 강력한 힘이 되어주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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