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 처음 발견하셨어요?
만나는 의사들마다 물었지만 그때마다 정확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결혼을 준비하던 봄이었나, 아니면 신혼여행 다녀와서였나. 하루에 인스타를 몇 번 들어가는지 세보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오늘 본 릴스를 다 기억하지 않는 것처럼 너무나 일상 중에 일어나는 일이라 또렷하게 언제라고 짚을 수 없었다.
- 한 두세 달 정도 된 것 같아요.
언젠지는 모르지만 어떻게 발견하게 되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한다. 남편과 어디로 놀러 가던 차 안이었는데 인스타를 넘기다가 우연히 '여자들 중 목 옆에 혹 or 멍울 있는 사람'이라는 피드를 보게 되었는데 '나도 정말 있나?'하고 조수석 거울을 내려보니 진짜 오른쪽 턱 아래에 볼록하게 뭔가 있었다.
인스타 피드에 있던 게시글의 내용을 읽어보면 결국엔 임파선염이 잘 생길 수 있으니 프로폴리스 잘 먹어야 한다는 광고성 글이었는데, 나는 제목만 보고 내용은 읽지도 않은 채 그냥 여자들은 목에 멍울이나 혹이 잘 잡히나 보다 하고 가볍게 넘겼다. 아니 넘기다 못해 오른쪽 턱을 추켜올려 들며 남편에게 자랑(?)했다.
- 여보! 인스타에 여자들은 목 옆에 멍울이나 혹 있을 수 있다는데 나도 진짜 있다?
-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 아니 무슨 병원을 가. 그냥 이런 게 있다고.
몸에 작은 변화만 있어도 툭하면 병원 가보라고 하는 남편의 성향을 알기 때문에 더욱 그냥 넘겼다. 그러고 얼마나 지났을까.
그 사이 나는 결혼식도 올리고 유럽으로 꿈만 같은 신혼여행도 다녀왔다. 그리고 신혼여행을 다녀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에게 아기가 바로 찾아왔다. 정말이지 행복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임신을 하고 입덧으로 먹덧을 했던 나는 산부인과에 갈 때마다 몸무게가 2kg씩 늘어 체중조절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날마다 맛있는 것을 먹으며 조심스럽게 뱃속에 아이를 키워갔다. 그리고 대망의 16주가 되던 날. 이제는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해 주변사람들에게 임밍아웃을 했고 사람들은 우리 부부에게 좋은 일이 끊이지 않는다며 참으로 많은 축복의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그렇게 평온한 날들을 보내던 어느 날. '그러던 어느 날'은 언제나 갑자기 찾아오는 것처럼 느닷없이 목에 있던 멍울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딱히 아프지도 불편하지도 않았는데 임신 소식을 주변에 알리고 난 후 더욱 조심스러워져서 그런가 샤워를 하다가 문득 오른쪽 아래에 있는 멍울이 지금도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 조금은 이상하다고 느껴졌다.
- 여보. 나 목에 있는 멍울 이거, 진짜 병원 가볼까?
- (멍울 부분을 누르며) 이러면 아파?
- 아니 아프진 않은데, 그냥 이게 뭔가 궁금해서.
- 내일 바로 가보자.
웬만해선 병원 간다는 소리를 안 하는 나라는 것을 알았기에 남편은 계속 신경 쓰지 말고 병원에 후딱 다녀오라고 했고, 나는 조금은 귀찮지만 그래도 혹시나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 해로운 부분이 있을까 계속 걱정하느니 그냥 다녀오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회사에는 반차를 내고 오전에 잠깐 이비인후과에 들린다는 게 이게 이렇게 될 줄 몰랐다.
- 이 부분이 아프면 임파선염일 수 있는데 이렇게 통증 없이 오래 계속 있었다는 것은 아무래도 정밀 검사를 받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대학병원은 진료 보려면 오래 걸릴 테니까 주변에 검사할 수 있는 병원으로 연계해 드릴게요. 가능하면 오늘 검사받아보세요.
이비인후과에서 써 준 소견서를 들고 연계해 준 병원으로 가는 길에도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백화점에 주차해서 주차비 많이 나올 텐데 빨리 끝나려나, 오전 반차 써서 점심시간 전엔 들어가야 하는데 병원 한 군데 더 들리면 늦어지는 거 아니야?' 그저 번거로운 일정 하나 더 생겼다는 뉘앙스로 남편에게 '나 다른 병원 가서 검사받아보래' 카톡을 보내며 목 멍울 전문 클리닉에 도착했다.
- 예약하셨을까요?
- 아뇨. 이비인후과에서 여기로 와서 검사받으라고 소견서 써주셔서 왔는데요.
- (소견서를 본 후) 그런데 지금 임신 중이세요? 몇 주차세요?
- 임신 17주 차요.
- 잠시만요.
간호사는 의사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다녀와서는 내가 임신 중이기 때문에 여기서 할 수 있는 검사는 없다며, 검사를 하기 위해서는 산부인과에서 주사나 약을 써도 된다는 소견서를 받아와야 한다고 했다. 맙소사. 여기서 산부인과를 또 가야 한다고?
졸지에 병원을 한 군데 더 가야 하는 나는 아직까지도 이 상황이 심각하다는 생각은 못한 채 이비인후과에서 목 멍울 전문 클리닉 여기에서 산부인과까지 병원 뺑뺑이를 도는 것에만 화가 났다. 게다가 예약하지 않고 갑자기 산부인과 진료를 보기란 더욱이 힘든 일이었다. 심지어 나를 담당하는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이 휴진이어서 시간이 되는 다른 분께 받아야 했지만, 이왕 이렇게 고생한 거 오늘 꼭 검사를 받고 근심 걱정의 뿌리를 뽑겠다는 오기로 긴긴 대기시간을 기다려서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그 사이 나의 오전반차는 연차로 바뀌었다.
- 아니 우리 산모를 이렇게 뺑뺑이 돌리면 쓰나!
이러이러하여 소견서를 받으러 왔다고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아빠 뻘 되는 산부인과 과장님이 나 대신 화를 내주었다. 그렇지만 어떤 주사나 약을 쓰는지 듣지도 못한 채 소견서를 무작정 써 줄 수는 없다고 하셨다. 그러지 말고 우리 산부인과 내에서도 갑상선/유방 관련 영상의학과가 있으니 여기서 초음파라도 보는 게 좋겠다고 했고 나도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이쯤 되니 그냥 아무 데서나 검사받고 빨리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어졌다.
산부인과 과장님의 부탁으로 갑상선/유방 영상의학과에서 진료를 받게 된 나는 이미 오랜 대기로 지친 터라 검사를 지금 바로 받는 것 자체로도 굉장히 후련했다. '얼른 진료보고 백화점에 주차된 차 빼야지. 주차비 몇만 원 나왔으면 어쩌지.' 누워서 딴생각하는 나와는 달리 영상의학과 선생님은 한참을 목 부분을 들여다보았다. 오른쪽 멍울 부분을 보고, 왼쪽을 보고. 또다시 오른쪽. 생각보다 시간이 길어지자 딴생각을 하던 나도 갑자기 고요해졌다.
- 보호자랑 같이 오셨을까요?
한참을 들여다보던 선생님이 보호자의 여부를 물었다. 아니요. 혼자 왔다고 대답하자 옷 갈아입고 다시 진료실로 오시라고 하는데 갑자기 가슴이 쿵 떨어졌다.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가는 길에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보호자 같이 왔냐고 물어보셨어. 나 무서워.' 남편은 걱정 말라고 이미 산부인과로 가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남편이 오고 있다는 말에 조금은 안도하며 진료실로 들어갔다.
- 모양이나 크기가 좋지 않아요. 대학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놀랐다거나 슬프다거나 하는 느낌을 느낄 새도 없이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여러 설명을 해주셨는데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아무것도 아닌 일은 확실히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이제 어떡하지 하는 마음밖에 안 들었다. 설명을 듣고 볼록한 배를 쓰다듬으며 진료실을 나오자 간호사 선생님이 나의 두 어깨를 안아주셨다.
-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라는 거지, 아직 무슨 큰일이 있는 건 아니에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마치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 위로해 주셨지만 그 역시 들리지 않았다.
남편이 도착하고 나서 우리는 바로 인근 대학병원에 진료 일정을 문의했고, 다행히 바로 그다음 주 수요일에 대학병원 이비인후과 진료를 잡을 수 있었다. 침울해진 나를 달래며 남편은 백화점에 주차했으니 맛있는 거나 먹고 들어가자며 스테이크와 파스타도 사주고, 주말에 집에 있으면 하루종일 그 생각만 한다며 내일 바로 떠나자고 강원도에 있는 호텔을 예약했지만 실은 누구보다 애타는 마음으로 목 멍울에 있을 수 있는 모든 질병을 다 찾아볼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불안한 마음을 더는 티 내지 않고 서로 잘 다독여주기로 했다.
'그래 이미 벌어진 일이야. 잘하면 양성종양, 아니라면 악성종양으로 침샘에 있는 질병 중 하나인 거야. 양성이든 악성이든 어차피 수술하면 된다니까 수술 잘 받으면 되지 뭐.'
그때까지만 해도 정말로 우리는 이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