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엔 제주도에 혼자 자주 왔었다. 휴가나 주말에 혼자 훌쩍 비행기 타고 와서 바닷가 앞에 있는 조용한 게스트하우스에 묵으며 좋아하는 책 한 권을 다 읽고 가기도 하고 그곳에서 만난 새로운 친구들과 남은 여행 일정을 함께 하기도 했다. 8년째 똑같은 회사, 똑같은 사람, 똑같은 스트레스만 받다가 탁 트인 바닷가에서 처음 만나는 새로운 유형의 사람들과의 대화는 나에게 엄청난 해방감을 가져다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나에게 제주도는 마음 붙일 곳 없는 일상 속의 유일한 도피처였다.
그런 제주도에 셋이 되어 다시 왔다. 언제나 든든히 내 옆을 지키고 있는 남편과 뱃속에 있는 소중한 우리 아기. 제주공항에 도착하여 렌트카 버스를 기다리는데 이제는 도피처 같았던 찬 바람 부는 제주 섬 한가운데 있어도 집 안방에 누워 있는 것처럼 마음이 뜨끈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내 가족이 있다는 건 이렇게 든든한 일이었어. 그렇게 생각하자 한편으론 이 태교여행에 암소식이 따라온 것이 더욱 억울하고 서럽게 느껴졌다.
그놈의 암 때문에 3박 4일로 예정되었던 우리의 일정은 2박 3일로 강제 단축 되었다. 첫째 날은 가성비 호텔, 둘째 날은 그보다 더 좋은 호텔, 마지막은 가고 싶었던 호텔 이렇게 예약해 뒀는데 마지막 호텔은 취소 수수료도 돌려받지 못한 채 그대로 날려야 했다. 게다가 11시까지 혈액종양내과 진료를 보려면 적어도 제주에서 7시엔 비행기를 타야 했기 때문에 기껏 예약한 호텔 조식도 먹지 못할게 분명했다. 제주 여행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실망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 시간 알차게 쪼개서 쓰면 더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가고 싶은 곳도 다 갈 수 있어!
남편이 나의 기분을 눈치채고 일부러 업 된 목소리로 나를 달래주었다. '그래, 재밌게 놀아보는 거야!' 하고 나도 씩씩하게 대답했지만 그와 동시에 내가 일정이 짧아져서 혹은 가고 싶었던 호텔에 못 가서 분한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여기서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것을 봐도 오롯이 즐길 수 있을까? 뭘 먹어도, 뭘 봐도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우리는 그 마음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뱃속에 있는 아기와 처음 온 여행이었다. 낮에는 기를 쓰고 예쁜 곳을 찾아다녔고 제법 부풀어 오른 배에 손을 올리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러나 밤이 되면 남편은 어김없이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노트북으로 혈액암 림프종에 관련된 논문과 기사를 찾아보았고 나는 그런 남편을 알면서도 애써 안 보이는 척 외면하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그렇게 제주에서 두 번째 밤이 되었다. 아침 7시 비행기를 타려면 새벽 4시 30분엔 호텔을 나서야 했다. 나는 눈뜨면 바로 나갈 수 있게 짐을 챙겨놓고 일찍 자리에 누웠다.
- 내일 병원에 가면 진단명을 알 수 있겠지?
- 응. 그럴 거야.
남편은 노트북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교수님에게 조직검사 결과 림프종이다라는 말만 들었지 정확히 어떤 림프종인지는 알려주지 않아 우리는 더욱 마음이 불안했다. 혈액암 림프종에도 여러 아형이 있고 그중에는 치료가 힘든 케이스도 많았다. 나는 너무 두려운 마음에 일부러 아무것도 찾아보지 않았지만 남편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해외 논문까지 찾아 읽으며 나와 아기가 무사할 수 있는 확률에 대한 근거를 찾고 또 찾았다.
- 여보, 자?
- 아니. 이제 자야지.
- 여보, 이제부턴 진짜로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고 말하는 남편의 목소리가 떨렸다. 깜짝 놀라 남편을 올려다보았다. 암이라고 처음 들었을 때도 침착하던 남편이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눈물을 보이다니. 나는 괜찮다고 남편의 큰 어깨를 끌어안고 토닥였지만 사실 괜찮은 건 어디에도 없었다.
- 임신 중 림프종으로 인해 항암치료를 받고 아이도 정상적으로 출산한 케이스가 해외에도 있고 국내에도 있어. 그러니까 내일 진료 볼 때 여보에게 치료가 바로 필요하다고 하면 무조건 치료받는 거야. 알겠지? 치료는 당연히 받는 건데... 근데 이제 그 과정이 쉽지는 않을 거야 여보.
남편은 내가 비염으로 재채기만 해도 온갖 침구류 빨래와 청소를 하고 온습도계와 가습기를 들고 따라다니며 더는 재채기와 콧물이 나지 않게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주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항암을 해야 한다니. 그것도 임신 중에. 남편은 림프종 카페를 가입하고 앞서 항암 한 사람들의 블로그와 유튜브를 보며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해 미리 찾아보고 있었다.
- 항암을 하면 음식을 잘 못 먹을 수도 있고 오심과 구토도 심할 수 있대. 구내염으로 입이 다 헐 수도 있고 또...
남편이 증상을 채 다 나열하기도 전에 남편도 울고 나도 울었다. 남편은 이 모든 걸 과연 내가 다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울었고, 나는 낮이면 어디 좋은데 데려가려고 여기저기 찾아보고 밤이면 림프종의 케이스와 치료 방법들을 찾는 남편이 짠해서 울었다.
할 수 있는 게 기도밖에 없어서 우리는 서로의 손을 꼭 잡고 기도했다. 부디 치료가 가능한 암이기를, 뱃속의 태아에게 영향이 없기를, 무사히 출산할 수 있기를,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고통만 받을 수 있기를. 제발. 제발.
다음날 우리는 날이 밝기도 전에 호텔을 나섰다. 새벽의 쌀쌀한 공기와 제주의 새까만 어둠이 차 안을 더욱 고요하게 만들었다. 제주의 바람소리와 이따금씩 들리는 좌회전, 우회전 깜빡이 소리가 긴장되는 마음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이제 비행기 타고 올라가서 병원에 도착하면 정확한 진단명을 듣게 되는 거야. 대체 무슨 암인지, 치료는 할 수 있는지, 할 수 있다면 언제 하는 건지, 우리 아기에겐 어떤 영향이 있을지. 이틀 동안 온갖 논문이며 블로그며 경우의 수에 대해 찾아볼 수 있는 만큼 다 찾아봤으니 이제 그에 대한 해답만 들을 차례였다. 공항으로 가는 길 내내 나는 제주도에 처음 왔을 때와는 달리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어서 빨리 결과를 듣고 시험 직전에 배가 아픈 것만 같은 저릿한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빠르게 달리는 차의 속도만큼 새벽의 어둑어둑함도 서서히 옅어져 갔다.
- 뭐 해? 여보 좀 자야지!
- 난 이거 보고 잘게. 여보 얼른 안대 쓰고 자.
아침 첫 비행기라 저마다 새벽부터 준비하고 오느라 피곤했던 사람들은 비행기에 타자마자 잘 준비를 하는데 그 와중에 남편은 홀로 이어폰 꽂고 영상 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뭘 보나 했더니 암환자가 지켜야 하는 식단과 생활습관, 암환자 케어 방법 같은 영상들이었다. 언제 이 많은 걸 또 다운로드해놨을까. 생각해 보니 임신 소식을 처음 전하던 그날에도 기쁨과 감동은 잠깐이고 바로 쿠팡을 열어 임산부가 먹어야 하는 영양제를 사던 남편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엔 걱정과 슬픔에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지만 그 역시 잠깐이고 남편은 내가 암환자임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암환자 보호자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런 남편의 어깨에 기대 잠에 들었다. 제주도에 있었던 2박 3일 중 가장 깊고 단 잠이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정말 부지런히 움직였는데도 진료시간에 딱 맞게 도착했다. 빠르게 걷느라 배가 뭉치고 허리가 뻐근했다. 동시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이제부터 마음을 정말 단단히 먹어야 한다는 남편의 말을 곱씹으며 떨리는 마음을 있는 힘껏 눌렀다.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 처음 뵙겠습니다. 현재 임신 20주 차시고 목에 멍울이 보여서 검사받으셨다고요.
이번에 만난 혈액종양내과 교수님은 여자분이셨다. 임신 중이라서 그런지 괜히 반갑고 안도가 되었다.
- 어떤 림프종인지 전에 교수님께 설명은 들으셨나요?
- 아뇨, 그냥 림프종이라고만.
- 그렇구나. 환자분은...
교수님이 A4용지와 펜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크게 진단명을 적으면서 설명이 시작되었다.
- 검사 결과 '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으로 나왔어요. 림프종은 림프구에 생긴 악성 종양으로, 크게 호치킨과 비호치킨 림프종으로 구분되는데 그중 96% 이상이 비호치킨 림프종인데요. 이 비호치킨 림프종에서 기원 세포에 따라 또 B세포와 T세포 림프종으로 나뉘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B세포 림프종이 80% 이상을 차지하고, 이 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은 그중에서도 가장 흔하다고 볼 수 있어요.
A4 용지에 열심히 림프종 아형에 대해 설명해 주셨지만 '가장 흔하다'라는 말만 귀에 꽂혔다. 뭔진 몰라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흔하면 그만큼 치료도 수월하지 않을까? 그런데 교수님은 그런 나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바로 뒤이어 말했다.
- 림프종은 아형에 따라 따로 치료하지 않고 예후를 지켜보며 안고 가는 경우도 있고 그와 달리 당장 치료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이 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은 안타깝지만 공격적이고 전이가 빠른 암입니다.
공격적이고 전이가 빠른 암이라니. 순식간에 눈앞이 아득해졌다.
- 아... 그럼 어떻게 해야...
- 환자분 최근에 열이 지속적으로 오르거나 밤새 식은땀이 나거나, 아니면 급격하게 체중이 줄거나 한 적 있나요?
- 아뇨. 최근에 잠깐 열나고 기침 났던 것 빼곤 그런 적 없어요.
- 그럼 목에 있는 멍울이 겨드랑이나 쇄골, 사타구니 쪽에 또 만져지는 곳이 있나요?
- 아뇨. 다른 곳은 없는 것 같은데.
- 제가 한 번 살펴봐도 될까요?
교수님은 진료방 안에 커튼을 치고 겨드랑이, 쇄골, 사타구니 쪽을 주의 깊게 만져보셨다. '그러네요. 다른 곳엔 없네요.' 교수님은 안도하면서 동시에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뗐다.
- 말씀드렸다시피 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은 공격적인 암으로 전이가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일단은 임신 중이니 조영제를 사용하지 않고 MRI 촬영을 해서 전이가 있는지 여부를 확인해 볼 거고요. 치료는...
머뭇거리는 찰나의 침묵이 나와 아기를 고려하는 것 같아 더욱 긴장되는 마음에 두 주먹을 꽉 쥐었다.
- 사실 임신 초기에 발견하셨다면 아기를 포기하는 쪽으로 했을 거고 임신 막달에 오셨다면 출산까지 며칠 기다렸다가 출산 후에 항암치료를 들어가겠지만, 현재 환자분은 임신 중기로 너무 주수가 애매해서요. 항암을 하기에도 아직 주수가 이르고, 그렇다고 항암 없이 출산까지 기다리는 것도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일단은 검사를 해서 전이가 되었는지 확인을 하는 게 중요하니까 가장 빠른 날짜로 입원부터 하시죠.
진료방을 나오며 나는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하는지 잠시 고민했다. 큰일 났다고 하기엔 그래도 림프종 중에 가장 흔한 아형이라고 하니 다행이었고, 다행이라고 하기엔 공격적인 암으로 전이가 어디까지 되어있는지 알 수 없어 불안했다. 그 때 남편이 덥썩 말했다.
- 정말 다행이야, 여보. 정말로 감사하다.
감사한 일인가 ...? 그런데 생각해 보면 정말 그랬다. 만약 임신 초기에 병원을 왔다면 항암을 하기엔 태아도 너무 위험하고 그렇다고 고 전이가 빠른 암을 계속 지켜보며 임신을 유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고 거의 막달이 다 돼서 병원을 왔다면 17주부터 눈에 크게 띄게 만져졌던 멍울이 전신 곳곳 어딘가에 퍼져있을 것이 분명했다. 의료진들은 지금 주수가 너무 애매하다고 했지만 오히려 나는 아기가 안정기에 접어들자마자 이렇게 병원을 오게 된 것이 다 계획된 일처럼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강하게 믿어졌다. 아기를 지키고, 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 반드시 있는 거야.
집으로 돌아왔다.
2023년이 완전히 지나가려면 이틀 정도 남은 12월의 마지막 주말. 그 이틀 사이에 남편은 빨래를 빨래망에 분류해서 넣다가 한 번, 저녁 먹고 난 후 설거지를 하다가 한 번. 이렇게 딱 두 번 혼자 눈물을 보였다. 혼자 무슨 생각을 하다가 눈물까지 난 건지 알 것 같으면서도 나는 굳이 '왜 울어?'하고 물었다. 그 질문 앞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는데)라는 괄호가 있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왜 울어. 그러면 남편은 곧장 머쓱하게 웃어 보이며 눈물을 닦았다.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는 서로의 생각에 자꾸만 일시정지 버튼을 눌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