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음날 짐을 싸서 강원도 고성으로 떠났다. 병원을 다녀온 후 밤새 [이하선 종양], [침샘암], [림프절 종양] 등을 검색하는 나를 보고 남편이 안 되겠다 싶어 아침이 되자마자 나를 집 밖으로 끌고 나온 것이다.
가는 길이 즐거울 리 없었지만 우리는 애써 걱정을 뒤로하고 근심이 섞이지 않은 이야기만 골라 대화를 나눴다. 육아용품 이야기, 회사 이야기, 회사의 누구네 이야기, 친구의 친구 이야기. 그렇게 한참을 마음에 있는 걱정을 외면하고 다른 얘기만 하다 보니 어제의 일 따위는 없던 일이 된 것 같기도 했다. 바다에 가까워져 오니 더욱 그랬다. 우리는 잠시 걱정을 외면하고 호텔의 바다뷰에 감탄하고, 속초 아바이 순대와 만석 닭강정에 만족하며 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하루를 애써 즐겁게 보냈는데도 밤이 되자 다시 걱정이 몰려왔다. 조금씩 태동이 느껴질 때마다 아기가 '우리 괜찮은 것 맞죠?'하고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괜찮아, 괜찮아. 배를 쓰다듬으며 괜찮다고 생각하려 노력했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런 마음을 아기에게도 남편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나는 피곤한 척 침대에 돌아누우며 이 불안한 마음이 부디 떠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가장 친한 친구의 얼굴이 생각났다.
[너무 늦은 시간에 연락해서 미안해. 너 생각밖에 안 나서. 사실 어제 이비인후과에 갔다가 목에 종양이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산부인과에서 초음파로 보니 모양과 크기가 좋지 않다고 대학병원을 가보라고 하더라고. 양성종양이든, 악성종양이든 수술은 불가피하다고 하는데 지금 아기가 이제 17주밖에 안되었으니까... 부디 양성종양이어서 출산 이후에 수술할 수 있으면 좋겠어. 기도해 줘.]
메시지를 쓰면서도 도무지 내 이야기 같지가 않아 덤덤했는데 친구가 메시지를 읽자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친구가 너무 놀랐을까 걱정되는 마음이었을까? 답장이 오지도 않았는데 마치 내가 그 메시지를 받은 사람처럼 눈물이 나서 그만 엉엉 울어버렸다.
- 너무 걱정돼서 그래? 괜찮아, 괜찮아.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닭강정 먹고 배부르다며 소화시킨다고 해맑게 방 안을 누비고 다녔던 사람인데 갑자기 침대에 누워 엉엉 우는 나를 보고 남편이 깜짝 놀라 달려와 안아주었다. 등을 토닥여주는 남편에게 의지해 나는 더욱 크게 울었다. 그렇게 울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개운했다.
- 여보 너무 걱정하지 마. 양성종양일 거야. 림프절 부위에 이렇게 멍울이 생기는 거 흔하대. 그리고 악성종양이더라도 수술하면 돼. 우리 집 근처 세브란스 병원에 이 부위 수술 잘하시는 교수님도 계시대.
내가 밤새 침샘암에 대해 검색하고 있었을 때 실은 똑같은 마음이었던 남편은 나와 같은 케이스들이 많으니 안심하라며 그간 찾은 수술 후기 블로그 자료들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블로그의 글들은 나를 안심시키기는커녕 2차로 대성통곡하게 만들었다. 귀 뒤부터 침샘 부근까지 절개해서 수술했던 사진들은 의학드라마에 나오는 피도 제대로 못 보는 나에겐 너무 상상하기도 힘든 끔찍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밤은 열심히 위로하려는 자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로받지 못하는 자의 힘겨운 씨름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 그런데 진짜 어이없지 않아? 나는 평소에 감기도, 장염도 안 걸리는 사람인데. 심지어 회사 사람들 다 코로나 걸렸을 때도 나는 한 번도 안 걸렸는데. 이런 내가 무슨 종양이라니. 그럴 리가 없지. 나처럼 건강한 사람이 어디 있어!
다음날 아침. 조식을 먹으러 내려가는 길에 나는 씩씩대며 말했다. 정말 그랬다. 회사에서 코로나 걸리지 않은 사람도 나뿐이었고, 새 학기 준비며 간담회 준비며 체력적으로 힘들 때도 몸살 한 번 안 났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런 내가 암일 수도 있는 종양을 몸에 가지고 있다니. 어제는 두려워서 울었지만 아침이 되자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화가 나는 나였다.
그런데 그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그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부터 나의 컨디션은 급격히 나빠졌다. 머리도 약간 뜨끈한가 싶더니 열이 금세 올랐고, 기침도 심상치 않았다. 휴게소 화장실에서는 기침을 하다가 토를 하기도 했다. 건강하다고 자부했던 오늘 아침의 말도 이렇게 순식간에 부질없는 말이 되어버리다니. 정말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구나 싶어 왠지 자꾸만 의기소침해져 갔다.
그로부터 꼬박 이틀을 고열에 시달렸고 컨디션이 조금 돌아올 때 즈음 되자 대학병원에 가는 날이 되었다. 머리 털나고 생전 처음 가보는 대학병원이었다. 대학병원에 가는 길에는 '이렇게 아픈 사람들이 많다고?' 하고 놀랐고, 암센터에 들어설 때는 '이렇게 암환자가 많다고?'하고 놀랐다. 모든 게 하나의 드라마 세트장 같았다. 그곳에 나도 '지나가는 사람 1' 정도의 역할을 배정받은 엑스트라처럼 많은 사람들 틈사이에 껴서 어딘가에 앉아 내 이름이 호명되기를 기다렸다. 연말이라 그런가 환자들이 정말 많았고, 특히 이비인후과 진료실 앞은 더욱 사람이 많았다.
- 김 OO 님 들어가실게요. 생년월일이요.
진료 예약시간보다 한참을 더 기다리고 나서야 드디어 교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 교수님은 목의 멍울을 육안으로 체크한 후, 이 멍울이 언제부터 생겼는지, 통증이 있었는지 등을 확인하였다.
- 그런데 지금 임신 중이시네요. 지금 몇 주시죠?
- 오늘로 18주 차 되었어요.
- 18주라. 너무 애매한데요.
- 네?
- 목의 종양이 양성이든 악성이든 어차피 수술을 하긴 해야 하는데, 악성인지 양성인지 정확하게 알려면 세침흡인검사를 해야 하거든요. 근데 만약 암이어도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그래도 검사하시겠어요?
질문을 받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어벙벙했다. 지금 내 목에 이렇게 볼록하게 보이는 멍울이 종양인데 이게 양성이든 악성이든 수술을 해야 하고, 만약 악성이라도 임신 중이기 때문에 어차피 수술은 못하는데 그래도 검사를 하겠냐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남편을 올려다봤지만 결국 선택은 환자 본인이 해야 하는 몫이었다. 남은 임신기간을 모르고 행복하게 보내느냐, 아니면 알고 불안하게 보내느냐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 걸까.
- 저, 그래도 검사해 볼게요.
임신 중이라 세침검사 할 때 마취하는 부분이 제한될 수 있다고 했지만 그래도 해보겠다고 했다. 앞으로 남은 22주를 찜찜하고 불안하게 보내느니 잠깐의 아픔과 후련함이 훨씬 낫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건 목의 멍울이 양성종양이어서 출산까지 아무 문제 없이 기다릴 수 있다는 전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