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회사 동료에게 글을 한 번 써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고 수개월이 지난 뒤 브런치를 시작했다. 그렇게 벌써 곧, 1년이 된다. 얼마 전 만난 학교 선배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요즘 뭐하고 지내냐는 말에 그냥 일하고 밥 먹고 육아하고 스트레스받을 때는 글도 종종 쓴다고 했더니 글은 왜 쓰냐고 묻는다. 연애 소설이라도 쓰냐고 묻는다. (연애 호구였던 내가...?) 그러게, 나는 글을 왜 쓰기 시작했을까?
아주 평범한 내 입장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전문가들의 영역'이라고 생각해왔다. 아무나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무언가 특별하게 잘하거나 또는 남들과 다른 무언가를 지니고 있어야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나라는 존재가 글을 써봐야 개인화 서비스(페이스북 정도겠지만)에 회사 욕 정도... 썼던가 싶다.
돌이켜보니 나는 글 쓰는 자체를 제법 즐겨왔던 것 같다. 브런치에서 작가로 합격(?)되기 전까지는 해갈의 공간으로 사용됐었다. 회사의 힘든 날의 기록과 불합리함에 대한 심각한 고찰(이라기보다는 분노에 가깝다), 왜 내 삶은 이모양인가 남은 여생을 이렇게 보낼 수밖에 없는가에 대해 다듬기조차 불가능한글들이 수두룩 하다. 어디 가서 말로 못하는 거, 글로 시원시원하게 해소했던 것 같다.
막상 브런치에 발행이 가능한 상황에 놓이니 그런 글들을 맘처럼 내보낼 수가 없겠더라. 단 한 명의 구독자라도 내 글을 보러 와주었다는 생각을 하니 무작정 쏟아내는 불만보다 작게라도 글에 메시지를 담아야겠다는 일말의 책임감 같은 게 생겼다. 그래서 내가 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해봤는데,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참으로 안타깝게도 글로 써낼 만큼 잘하는 게 별로 없다.
그러다 문득 인생의 절반 이상을 보내는 곳, 불합리함의 끝판왕! 회사에 대해 써볼까 싶어 졌다. 페이스북에 욕으로 써 내렸던 부당함을 나름대로 잘 정제시켜서 글로 써보기로 했다. 그렇게 처음 나름대로 기획된 첫 글을 쓰게 됐고, Daum 메인에 올라가면서 조회수가 미친 듯이 뛰었다. 신기했다. 나와 비슷한 누군가가 또는 비슷하지 않아도 공감을 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그리고 개인화 서비스도 아닌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좋아요를 눌러주었다는 게 매우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렇게 '회사생활'을 메인 컨셉으로 잡은 매거진이 탄생했다.
그날 이후, 나는 내 회사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써 내려갔고 조회수가 좋은 글, 미적지근한 글 등 다양하게 반응이 일어났다. 내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 공감을 얻는다는 것이 신기하고 즐거웠다. 그렇게 글 쓰는 행위는 일상 속에 자리를 잡았고 나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되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글 쓰는 것이 꼭 '전문가의 영역'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별 볼일 없는 나의 글도 읽어주는 구독자님들이 생겼고, 페이스북에 누군가의 공유를 통해 널리 널리 퍼지기도 했다. 가족의 일상을 담았던 글은 10만 조회 수를 넘기기도 했고 출판 제의도 받았다. 그저 글 쓰는 게 좋아서 쓰던 브런치에 '구독자'가 늘면서 다소 가볍게 써 내려가던 글쓰기 태도도 많이 달라졌다.
내 글을 보면 '누구나 있는 일' 또는 '이 정도는 나도 쓰겠는데' 싶은 글들이 많다. 당연하다. 나는 매우 평범한 사람이고, 한 가지 조금 다른 점은 '회사원'인 것을 매우 만족한다는 정도랄까. 아 물론, 회사가 좋다는 것은 아니다. 그 정도로 미친 사람은 아니다. 회사원으로 살아가는 게 나름대로 할만한 것일 뿐.
앞으로도 회사생활에 대한 나의 이야기를 계속 써가보려 한다. 무조건 일잘러가 되라고, 말센스를 높이라고 알려주는 사람들 틈에서 굳이 그런 거 완벽히 잘하지 않아도 회사 잘 다닐 수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다. 평범한 회사원이 어떻게 마음가짐을 가져야 회사원의 삶이 보다 윤택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그런 글들을 쓰고 싶다.
어차피 나는 일잘러가 될 수 없다. 구멍들 메꾸다가 끝나는 게 업무시간인데 그거 언제 잘하겠나. 일잘러 되려고 야근, 주말 반납하기에는 나이도 신체도 너무 낡았다. 적당히 회사 평탄하게 다니면 그걸로 됐다. 아, 그렇다고 내가 회사를 엉망으로 다니지는 않는다. 나름 차곡차곡 경험을 쌓아가며 살아왔다. 그 경험이 있기에 하지 않았어도 될 일, 지금이라면 굳이 상처 받지 않았어도 될 일들을 알려주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일잘러가 아닐 뿐, 허접한 회사원도 아니다. 내 기준에서 이 정도면 성공했다.
개인적으로 '하완' 작가님을 좋아하고 존경한다. 물론 지금 이 분은 거의 꼭대기에 계신 작가님이지만 그의 글은 잘해야만 한다고 다그치지 않아서 좋다. 적당해서 좋다.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은데 꼰대인가... 잘 안된다. 무튼,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 앞선 글에 얘기했듯이 상대에 따라 기준이 달라지는 곳이 회사다. 그러니 조금 마음 편히 먹어도 괜찮다. 그럼에도 스스로 너무 부족하다고 느끼는가? 그럴 필요 없다.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하지라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남들보다 한 단계 발전하고 있는 거다.
선배 때문에 글을 왜 쓰려고 했더라 생각하다가 주저리주저리 글까지 쓰게 됐네.. 역시 글쓰기는 참 재미있는 행위다. 이 글을 빌어, 특별함도 딱히 얻어갈 것도 없는 평범한 회사원의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소중한 구독자님들께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앞으로도 회사원으로, 워킹맘으로 오래오래 살아가는 글을 열심히 써볼게요.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