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메이크업을 할 줄 몰라서 화장대 앞에 앉아도 할 일이 별로 없었는데, 요즘 들어 외모를 관찰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었다. 이마와 미간에 그어진 미세한 선들, 눈 아래의 탄력, 뺨의 능선, 콧방울에서 입꼬리까지 이어지는-아직은 주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뭔가 기분 나쁜 굴곡... 얼굴 곳곳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나면 일단 눈을 털고 이번엔 전체 얼굴을 조망한다.
주름이 생기고 탄력을 잃어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뭐 이 나이에 이 정도면 꽤 괜찮지 않냐며 스스로를 위로하다가 다시 몸을 바짝 당겨 미세한 주름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전망대에 올라갔으면 풍경이나 감상하면 될 일이지 왜 굳이 망원경에 동전을 넣어가며 구석구석 살피려드는 것일까.
그런데 모니터링해야 할 것이 또 하나 있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왠지 한번 쓰다듬어보게 되는 내 배다.
출산 이후 여자의 체형은 미묘하게 변화한다. 어딘가 등짝도 좀 넓어진 것 같고, 흉곽도 커지고 골반은 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 배가 달라진다. 군살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날씬한 여성도 그 배를 보면 출산의 흔적을 찾을 수 있지 않냐며 이 세상 모든 배 나온 엄마들은위안하지 않던가.
이쯤 되면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나오기 전에 추억 삼아 뭔가를 좀 남겨놓고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 물론 뛰어난 자기 관리로 약간의 추억거리조차 남기지 않는 엄마들도 있다지만.
90년대에 유행하던 배꼽티가 크롭티라는 이름으로 다시 유행한다. 싱그러운 청춘들의 날씬한 복부를 볼 때면 좀 서글퍼지는데, 그럴 때면 크런치도 레그 레이즈도다 의미 없다는 것을 안다.
‘납작배를 떠나보내며’라고 제목을 정하니 마치 얼마 전까지, 적어도 30대에는 납작배를 가지고 있었다가 마흔이 되어 납작배를 잃은 것처럼 보이지만, 고백하건대 납작배는 출산 이후 언제나 내 마음속에만 있었다. 그러나 나는 지난 10년간 내 배를 안정적으로 보호하고 있는 뱃살을 애써 부정하며 두꺼운 지방층 저 아래에 마법의 성에 갇힌 공주처럼 울고 있을 내 본연의 배가 있으니, 어서 지방을 걷어내고 나의 납작배를 구해내야만 한다는 그런 의무감이 있었다. 물론 지방과의 전투에는 번번히 지고 말았다.
건강검진을 했더니 콜레스테롤 수치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치솟아 있는 LDL 수치를 보자 아이러니하게도 내 마음속의 납작배와 작별할 시기가 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이제는 혈관 관리를 통해 돌연사를 막아내야 할 나이인데 납작배라니. 내 인생에 비키니 입을 일이 없듯 너무 철없고, 너무 비현실적이고, 너무 먼 이상이었다. 인생의 모순을 받아들이듯 우리 아이들이 추억으로 남겨둔 이 푸근한 아랫배를 이제는 내 몸의 일부로 완전히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러나 혈관은 거울에 비춰볼 수 없지만 뱃살은 거울에 비춰지기에, 오늘도 나는 욕실 거울에 비친 내 배를 본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온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한 내 배를. 인생의 모순을 알기엔 아직 젊은 걸까? 아직은 이 모니터링을 멈출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