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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03 : 월세 70만 원, 첫 자취방 구하기 과정

by 범버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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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1실의 사택 지원 방식으로 바뀐 후, 자취방을 찾으러 발품을 팔았다. 보증금 1천만 원에 월세 70만 원의 오피스텔을 찾아 회사 명의로 계약하면 되는 형태였다. 회사가 있는 을지로에서는 다소 빠듯한 예산이었기에 출퇴근이 용이한 지역을 하나씩 탐색해보았다. 처음 하는 제대로 된 자취 생활에 약간의 설렘도 있었다.


은행원으로서 업무적으로 부동산 중개사들과 소통한 적은 많았다. 하지만 방을 구하기 위해 소장님과 임차인의 관계로 소통하는 것은 처음 해보는 경험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해외여행 관광객이 줄어들면서 에어비앤비 숙소를 임대로 돌리는 방 등 다양한 사례들이 있었고, 이를 통해 또 하나의 사회 경험을 쌓는 기분이었다.


2호선 라인의 이대역, 홍대, 신촌 등 학생들이 많이 사는 지역은 가격이 저렴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학교가 가깝고 치안이 좋은 곳은 여대생들의 고정 수요가 높아 저렴하지 않다고 했다. “7평에 약 백만 원의 월세를 학생들이 어떻게 감당하나요?”라고 여쭤보니 부동산 소장님이 답했다. “돈 더 들더라도 안전한 곳에 딸이 살아야 안심하고 발 뻗고 주무시는 게 부모님 마음이에요. 딸 둔 부모님이 돈을 가장 안 아끼십니다.”


세상이 험하고 홀로 사는 여성들은 범죄에 노출될 수 있으니 타향만리에 자녀를 보낸 부모들의 걱정이 이해가 되었다. 마치 어린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를 선호했던 것의 연장선인 걸까.




하루는 을지로 근처에서 적당한 가격대의 매물이 나왔다는 연락을 받고 찾아가 보았더니 뜻밖에도 폐업한 관광호텔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문을 닫은 관광호텔의 객실들을 1인 가구에게 임대하겠다는 것이었다. 리모델링할 자금은 없고 건물도 팔리지 않으니, 운전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이렇게 방을 임대로 돌리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만기 시 보증금 반환에도 문제가 있어 보이고 건물 자체도 노후되어 선택지에서 제외했다.


당시 정부는 이런 관광호텔이나 공실이 된 공장 등 비주택을 매입해 리모델링 후 1인 가구 공급을 늘리겠다는 정책을 발표한 상태였다. 하지만 신축보다 사업성이 떨어지는 노후된 건물들이 많았고 당장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2~3인 신혼부부가 살 집이지, 7평짜리 1인 가구 오피스텔의 공급은 이미 시장에 충분하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선정 기준에 대한 형평성도 우려됐고 무엇보다 사기업에서 부담해야 할 리모델링 비용을 정부가 세금으로 매입해 떠안는 형태로 보여 그다지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중, 부동산 소장님이 마포구청역의 신축 오피스텔을 추천해주셨다. 마포구청역은 처음 가보는 동네였지만 신축 지역이라 동네가 깨끗한 점이 마음에 들었고 지하도를 따라 조금만 걸으면 망원 한강공원이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해가 잘 들지는 않았지만 복층 구조의 신축 오피스텔이라는 점과 한강공원을 가까이서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바로 계약을 진행했다. 합정역에서 한 번 환승해야 한다는 점이 약간 마음에 걸렸으나 주말에 한 번 시도해봤을 때에는 괜찮았다. 그러나 이때 큰 교훈을 얻었다. 출퇴근 시간에 맞춰 이동을 테스트해봤어야 했다는 것. 주말의 한적한 시간대와는 달리, 평일 출퇴근 시간대의 합정역은 엄청나게 붐볐고 예상치 못하게 지하철을 놓치기도 했다.


어쨌든, 여러 번의 시행착오와 사회 경험 끝에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냈다. 그렇게 나는 드디어 서울에서의 첫 자취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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