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서울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인수인계도 부랴부랴 하고, 자가용에 살림살이를 대충 우겨넣어 서울로 운전해서 올라갔다. 발령지는 을지로 금융가였고, 단신 부임자들의 사택은 걸어서 40분, 버스로는 15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었다. 회사 명의로 아파트를 임대해 3인당 한 세대를 배정하는 형태였다. 다행히도 한 살씩 터울의 형과 동생이 같은 사택으로 배정되어 사는 데 크게 불편하거나 어색하지는 않았다.
사택에서 살았던 옛 선배들의 도시전설을 들어보면, 아주 연차 차이가 많이 나는 상사와 배정되어 저녁마다 술상무를 해야 했다는 둥, 심지어 아침을 차려줘야 했다는 둥의 이야기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내심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2020년의 여름은 코로나의 공포와 더불어 매일같이 비가 내렸다. 6월 24일부터 8월 16일까지 역대 최장기간 장마였다고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장마가 겹치면서 새로운 모임이나 사람들을 만나기도 어려웠다. 가끔 옛 친구들을 만나 식사를 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 외에는 매일같이 일에 파묻혀 살았다. 야근 후에는 덕수궁 돌담길 쪽으로 걸어서 퇴근하곤 했는데, 신기하게도 드라마나 영화 촬영 장면을 몇 번 볼 수 있었다. 퇴근시간 이후의 고요한 을지로와 서울시청 일대는 촬영하기에 좋은 환경이었던 것 같다.
퇴근 후 가끔씩 시간이 맞으면 사택에 같이 살던 형, 동생과 혹은 다른 사택에 살던 동기들과 한 잔씩 기울이곤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적응하며 지내던 사택 생활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못했다. 전세 만기가 다가오면서, 회사에서는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사택 운영 방식을 1인 1실 오피스텔 계약 방식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사택 내에서 한 명이라도 확진자가 나오면 함께 거주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각 지점 전체가 격리 대상이 되는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3인 1가구의 사택 생활은 막을 내렸다. 네 달 밖에 안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같은 처지의 동료들과 부대끼며 지낸 날들은 낯선 서울살이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함께 퇴근 후 술잔을 기울이며 회사 생활의 애환을 나누던 추억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이제는 혼자가 될 시간이었다. 새로운 공간, 새로운 생활. 나는 다시 짐을 꾸려, 낯선 서울의 또 다른 주소로 향했다. 앞으로의 서울살이는 어떤 모습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