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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1 : 서울로 발령난 은행원 김대리

by 범버맨



은행원이 된 이유는 '예측 가능하고 평탄한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자라온 도시에서 일하면서 가정을 꾸리고 가족, 친구들과 함께 무난히 살아가는 것이 꿈이었다. 은행원이라 함은 대표적인 안정 지향적이고 보수적이며 현실 지향적인 직업이었고 나 또한 그러한 니즈로 직업을 택했다. 그러나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리 무렵, 직장 생활 6년 차이자 슬슬 결혼을 전제로 누군가를 만나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압박감이 느껴지던 시기였을 때 나의 예측 가능하고 소박한 삶에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갑작스러운 서울 발령이었다.


당시엔 부동산 시장이 활황이었고 각종 대출 수요도 많았기에 수도권의 기업 대출 및 가계 대출 담당 인원이 부족했다. 나처럼 대출 업무 경험이 있으나 아직 미혼이라 단신 부임이 용이한 인력은 바로 언제든지 전선에 투입되기 좋은 포지션이었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이지만, 나에게는 학연, 지연, 혈연 그 어떤 연고도 없고 시험 응시만 가끔 하러 가는 낯선 땅이었다. 기반도 없고 새로운 사람들 사이에서 언제 자리 잡고 승진한 뒤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러다 결혼은 언제 하지? 함께 일하던 직장 동료들도 없고, 때론 친구들과 술도 한잔 씩 하던 소소한 일상이 갑자기 사라진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울적했다. 그 해 여름은 심정을 대변하듯 장마가 길었다. 이제 갓 새로운 지점에 부임했기에 승진은 당장은 어려울 터이니 속 시원하게 내려놓고 이 낯선 곳에서의 적응에 집중하기로 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서울에서 대학원도 다녀보고 못해본 경험들을 해보겠노라 결심했다.


긴 장마와 코로나의 공포 속에서 사람들과의 만남도 쉽지 않았기에 이따금씩 혼자서 서울 곳곳을 돌아다녔다. 우중충한 광화문 일대, 을지로, 청계천과 삼청동, 연남동 철길, 여의도 한강공원...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혼자서 드라이빙을 하기도 했다. 예측 가능한 것들을 벗어난 이맘때의 기억의 농도가 가장 짙은 것은 왜 일까. 처음 해보는 업무, 처음 가보는 동네, 처음 만나는 사람들. 단순히 예측 가능한 범위내에서 근면 성실하게만 살던 나날에 비해 좀 더 선명한 나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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