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서울 생활에서 의지가 되었던 여자친구와 이별했다. 당장이라도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 만나자고 붙잡고 싶었지만, 연애전문가들은 이 순간을 잘 참고 견뎌라고 했다. 내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먼 길을 찾아온 절친은 나에게 소개팅 만남 어플을 사용해 보는 것이 어떠냐는 이야기를 했다. 뉴스나 매스컴에서 본 소개팅 어플 관련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먼저 떠올랐다.
“그거 이상한 사람들 많지 않아?”
“조심해서 잘 거르면 괜찮아.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 비슷하지 뭐.”
그 친구도 당시 연고 없는 낯선 타지에 부임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성을 만날 루트가 없어서 소개팅 만남 어플을 통해 연애를 했다고 한다. 친구에게 간단한 조작 방법을 전수받은 후,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소개팅 만남 어플을 이용해 보았다.
직접 사용해 보며 느낀 가장 큰 리스크는 중간주선자나 공통의 지인이 없다는 점이었다. 익명성이 강하고 평판 관리를 하지 않아도 되니 무책임하게 행동하거나 가볍게 접근하는 이들이 많았다. 특히 여성들은 단순히 육체적 만남만을 원하는 상대를 거르는 일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소개팅 어플의 경우 남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서 경쟁이 치열하다. 이 중에서도 외모가 뛰어나거나 재력이 좋은 소수의 알파남들이 독식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여성에 비해서 남성 사용자들의 매칭이 매우 어렵다. 어렵게 대화를 하여 약속을 잡았더라도 여성 입장에서는 더 좋은 조건의 알파남이 접촉해 온다면 당일에도 약속을 취소하는 경우도 흔했다.
소개팅 어플에서 이성과 채팅하려면 유료 아이템을 결제해야 한다. 처음엔 커피 한 잔 가격이라 부담이 없다고 느꼈지만, 약속이 반복해서 깨지는 경험을 하자 돈도 아깝고 슬슬 지겨워지던 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여성분과 매칭이 되어 대화를 하고 직접 만나게 되었다. 낯선 타인을 만난다는 사실이 긴장감과 설렘도 주지만 혹여나 이상한 사람이면 어쩌나 겁이 나기도 했다. 걱정과는 달리 대화는 잘되었고 전혀 몰랐던 새로운 직무의 이야기에 대해서도 들어보는 등 나름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던 중 그녀가 말했다.
“소개팅 어플로 많이 만나 보셨어요?”
“아니요. 대화가 잘 진전되다가 잠수 타거나 당일에 약속 펑크 내는 분들이 많아서 어렵네요.”
“아마 그럴 거예요. 저도 사실 알바를 많이 해봤거든요.”
“네? 알바요?”
갸웃거리는 나를 향해 그녀는 실은, 자신이 소개팅 어플에 알바로 활동한 경험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남성 유저의 비율이 높다 보니 유료 결제를 유도하기 위해 일부러 여성 알바들을 고용한다는 이야기였다. 너무 매칭이 안되면 흥미를 잃은 남성 유저들이 이탈할 수 있으니 적당히 채팅이 매칭될 수준으로 이용을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얼핏 믿기지 않는 이야기지만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였다. 메디칼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한 친구는 결혼정보회사에서 알바 제의를 숱하게 받았다고 했다. 결혼정보업체 입장에서는 메디칼 전문직들도 인재풀에 있다는 것을 회원들에게 어필해야 했다. 실제 회원이 아닌 메디컬 대학원생, 초임 의사들 등에게도 선자리에 나가기만 해도 돈을 준다는 알바 제의가 온다는 것이고 심지어 유부남들에게도 제의가 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소개팅 어플에서의 알바는 결혼정보회사 알바의 온라인 버전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고 보니 나 또한 소개팅 어플의 구조 속 어딘가에서 하나의 역할로 소모되고 있었는지도.
“그럼 저는 왜 실제로 나와서 만나신 거예요?”
“착해 보여서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이후 우리의 대화는 이성적인 분위기보다는 솔직한 경험담과 연애상담 모드로 분위기가 흘러갔다. 실은, 그녀도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전 남자친구와 다시 연락이 닿길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이라고 했다. 마치 나의 케이스와 유사하여 또 다른 나를 보는 듯 동질감이 느껴졌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라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문득, 나는 상대를 누군가를 잊기 위한 수단이 아닌 진심 어린 목적으로 대하고 있는지 스스로 질문하게 되었다.
약 열흘 정도의 소개팅 어플 사용은 끝이 났다. 그 무렵에 전 여자친구로부터 연락이 왔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간의 소개팅 어플 사용 덕분이었을까. 전 여자친구와 조금 더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대화가 가능했다. 너무나 다시 만나고 싶었지만 그녀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우리에게 놓인 문제는 변함없이 그대로이기에 이대로 다시 만난다고 한들 또 쓰디쓴 이별을 맞이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명료했다.
우리는 그렇게 정말로 이별했다. 그리고 나는 소개팅 만남 어플을 삭제했다. 짧은 시간이나마 사용하며 느낀 점은, 만약에 소개팅 만남 어플을 사용하더라도 단기간에만 사용하고 끝내야 한다는 점이었다. 무작위적인 소개와 매칭. 이것은 일종의 게임과 같아서 점점 진지함이 흐려지고 무감각해지기 쉽다. 처음에는 겁나고 진중했던 감정도 어느새 무덤덤하게 단순히 좋아요를 누르고 대화를 걸게 되고 흥미가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대화방을 나가 다른 사람에게 시도하고… 마치 숏폼 매체를 접하듯이 연애마저도 쉽게 대화를 걸고 또 쉽게 멀어져 간다.
소개팅 어플의 또 다른 부작용 중 하나는 현실과 크게 다른 성비로 인해 자기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을 잃기 쉽다는 것이다. 남성들은 지나친 경쟁 속에서 자존감이 낮아지고, 여성들은 과도한 관심 속에서 실제 연애 시장과 다른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가상공간에서의 인기나 무관심이 현실의 연애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스스로를 제대로 보기 어려워진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진정한 관계는 숫자나 가상적인 호감이 아니라 실제 현실에서 서로의 진심을 제대로 마주할 때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소개팅 어플을 지우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벌써 사오 년 전의 일이다. 요즘은 어떤 분위기일지 잘 모르겠다. 요즘 젊은이들은 더 똑똑해지고 새로운 시스템들도 더 나왔겠지만, 여전히 비슷한 고민을 반복하고 있진 않을까. 여전히 '좋아요'와 '읽씹' 사이 어딘가에서 방황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마치 숏폼처럼 빠르게 넘기고, 대화하고, 또 빠르게 사라지는 관계들. 그저 바라기는, 연애까지도 숏폼으로 흘러가진 않았으면 좋겠다. 짧고 자극적인 재미보다, 조금은 지루하고 서툴러도 오래가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