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경시하며 지내온 지난한 관성,
그 탓으로 투로의 동작을 익혀나가는 게
도무지 마음 같지가 않았다.
해보지 않은 낯선 방식으로
몸의 구조를 잡는다,
그러나 호흡마저 길을 잃던
최후의 터부선과도 같던 습과 그 너머의 경계지.
그러나 결국엔
새로운 길 자리로 도약해 걸어간
모든 한 날과 한 발들의 여정들,
정확히 7개월이란 시간이 쌓여진 지점,
지금보다도 매끄럽지 못한
더 많이 투박하던 그날의 기록을 다시,
읽어낸다.
*요가에서의 체위, 특정 자세를 뜻하는 '아사나'라는 개념을 태극권에서는 '식'이라 표현한다. 그리고 식과 식이 연결되어 이루는 하나의 커다란 흐름(시퀀스)을 '투로'라 부른다.
매일의 연습, 그리고 훈습을 이루는 과정 길
투로의 종착지에 섰더니
찬찬히 흐르던 배열이 죄다 꼬여 버린다.
75식이라는 여정의 질서는 정해져 있으나
(마치 세계의 진리와 법칙처럼)
몸에 배지 않은 탓에 자꾸만 길을 벗어나
저도 모를 습대로의 샛길을 터버리고 마는
혼돈.
투로라는 한 길 중간에 멈춰서
포기할까 처음으로 돌아갈까
제 마음을 살펴 다시금,
여기라는 지점에서의 출발을 택하여 본다.
추진을 쉬이 꺾어버리는 실패와 같은 반복들...
조용한 방종과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방만한 오랜 습을 깎고 다듬어
몸의 길, 호흡의 길, 마음의 새 길을 터내는 여정이
쉬이 되지를 않는다.
오늘도 수 없을 수련과 동행하며
아침을 열고 밤을 마무리하며,
그저 행하자는 체념 아닐 날들의 이어짐
그러며 한 호흡, 새 길 위로는
소중히 순간의 정성을 실어낼 것.
공고히 만들어질 길 하나 위로
결국엔 곧으며 부드러이 서 낼 수 있길,
불안한 들뜸 없이도
묵직하지만 깃털 같을 여유를 달고선
들어설 샛길 아닐 새로운 그 길 위로에
언젠가에 온전히 서 빛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