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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달호 Oct 08. 2018

신분증 보여주실래요?

편의점에서는 오늘도 눈치 작전이 벌어집니다

편의점에서 담배는 담배 그 자체가 아니다. 사람들은 담배를 사러 왔다가 커피도 사고, 음료수도 마시고, 생활용품도 사고, 요즘 편의점에 어떤 물건이 새로 들어왔는지도 알게 된다. 


그러니까 담배는 편의점 최고의 미끼 상품이다. 담배가 없으면 편의점의 존립 자체가 흔들린다. 청소년에게 담배를 팔았다가 적발되면 벌금을 내거나 일정 기간 담배를 판매할 수 없게 되는데, 판매 정지 처분을 당해본 점주들은 편의점에서 담배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뼈저리게 깨닫는다. 담배권을 정지당하면 단순히 담배 매출만 사라지는 게 아니라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모든 상품의 매출이 일제히 하락한다.


담배 사러 왔다 과자 사고, 담배 사러 왔다 음료수 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청소년에게 담배를 팔았을 때 처벌받는 문제도 편의점 점주들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다. 현행법상 청소년에게 담배를 판매하면 점주가 전적인 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다. 우리나라 편의점 점주 중에서 그깟 몇백 원을 벌려고 청소년에게 일부러 담배를 파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담배 마진율은 9% 정도로,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주요 상품중 마진이 가장 낮다.) 거의 대부분 고의가 아니라 실수다. 


바쁜 시간대에는 일일이 신분증을 확인하기 힘들 뿐더러, 수염이 덥수룩하거나 화장을 덕지덕지한 청소년을 정확히 골라내는 감식 능력은 웬만한 형사 반장도 힘든 일이다. 온갖 교묘한 수법으로 신분증을 위조하는 발칙한 10대들을 이겨낼 방법 또한 수월치 않다. 그런데도 청소년에게 담배를 팔게 되면 편의점 측에만 생계와 직결되는 가혹한 책임을 물리는 법규는 자꾸 신경을 곤두서게 만든다.


오늘도 편의점에서는 신경전이 벌어진다.


“신분증 제시해주세요.”


“저… 민증을 집에 두고 와서 그러는데 그냥 주시면 안 돼요?”


“(딱 잘라) 안 돼요.”


이 상황을 응용해, 서른 살은 족히 돼 보이는 손님에게 종종

수작(?)을 걸어보기도 한다.


“신분증 부탁드립니다.”


손님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제가 그렇게 어려 보여요?”


그러면서 기분 좋게 신분증을 내민다. 나는 생년월일을 슬쩍 살펴보고는 “와우, 절대 동안이시네요” 하면서 너스레를 떤다. 그날 이후 그 손님은 단골이 된다. 물론 이런 수작질도 사람을 골라가면서 잘해야 한다.


누구는 신분증을 보자고 하면 짜증을 내고, 다른 누구는 활짝 웃는 그 양극단의 중간에 서서 편의점 점주들은 오늘도 치열한 눈치작전을 벌이는 중이다. ‘이깟 담배, 그냥 안 팔면 안 되나?’ 하루에도 몇 번씩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그래도 편의점 점주에게 담배는 어쩔 수 없는 애증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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