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tra는 경전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입니다. Sutra의 뜻을 검색해보면 ‘실, 끈’이라는 뜻으로, 지혜를 실처럼 엮어놓은 것을 말한다고 나와요. 그런데 조금만 더 들어가보면 사실 Sutra는 ‘직조’를 뜻한대요. 직조된 천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요, 무수히 많은 수직의 실과 수평의 실이 반복되잖아요. '기도는 신에게 말하는 것이고, 명상은 신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 에드가 케이시' 라는 말처럼 수직의 실은 명상과 기도로 ‘신성’과 연결되는 것을 상징한대요. 그럼, 수평의 실은요, 명상과 기도로 얻은 지혜와 힘을 수평으로 퍼트린다는거예요. 내 주변으로, 세상으로요. 수트라, 경전은 그래서 기도하듯, 명상하듯 읽어야 한대요.
그런데 경전을 읽는 것 뿐 아니라, 우리의 요가도, 명상도 이 뜻을 새기며 하면 좋겠어요.
‘신성’이라는 것이 막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거부감이 들 수도 있습니다. 기존의 종교에서 말하는 인격화된 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예요.
잠시 실험해볼까요? 눈을 감고 허리를 세우고 앉아서, ‘나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떠올려봅니다.
잠시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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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라도 머릿 속의 잡념이 밀려나고 온전한 공백감 같은 것이 생겨나지 않았나요?
신성을 경험하는 건 이것 말고도 많죠. 별이나 노을, 물이나 불을 바라볼 때, 장엄한 풍광이나 폭풍우를 볼 때, 갓난아기를 만났을 때, 소중한 존재와 교감할 때, 음악이나, 글, 그림과 같은 예술을 통해서, 나를 잊도록 몰입하는 모든 일을 할 때… 그러니까 ‘신성’은,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일상에,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을 자꾸 멈춰 앉아 알아차리는 것이, 명상이고 기도라구요.
그런데 왜 ‘신성’을 자꾸 알아차리고 연결되어야 하는가, 다시 ‘수트라’의 뜻은, 신성과 세상을 연결하는 지혜의 직조라는 걸 떠올려봅니다. 명상과 요가로 내가 신성을 자꾸 만나고, 스스로 작게나마 지혜가 생기고, 평온해지고 단단해지면 그것을 내 곁으로, 세상으로 퍼트린다는거예요, 근데 이건 너무 거창하니까, 그저, 내게 주어진 관계, 일, 환경을 받아들이고 충실하기. 이 정도면 부담 없죠?
그래서, 연습해보길 바랍니다. 자꾸 멈추고 내 곁의 신성 만나는 것을요. 내 곁의 ‘신성’을 알아차리는 순간을 기록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이건 '감사일기'와 같은 내용이 될 수도 있어요. 삶 속의 신성을 만나면 세상에 대한 경이로움, '감사'가 솟아나오니까요.
‘수직’으로 신성과 연결되어 ‘수평’으로 내 삶에 충실한 것,
우리의 요가와 명상은 이 틀을 기준으로 두고 더 거창할 필요도, 더 애를 쓸 필요도 없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