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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서출판 다른 Mar 25. 2019

글을 살리는 표현 방법 3가지

그림책 쓰기의 모든 것

이 글에서는 어떤 원고든 트집 잡는 까다로운 편집자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아주 기상천외한 방법들을 살펴볼 것이다. 극적인 표현 방법 세 가지다.



동물이나 사물에게 말 걸기
  작가가 대꾸를 하지 못하는 이야기 속 무언가에 말을 거는 방법이다. 나 역시 실제로 효과를 경험한, 이야기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탁월한 방법이다. 《발가락아, 안녕! 발아, 안녕! Hello, Toes! Hello, Feet!》을 쓸 때 나
는 처음 몇 번은(사실은 아주 여러 번이다) 일반적인 서술 방법을 사용했다. 바로 이렇게.

이것은 존의 발가락입니다.
이것은 존의 발입니다.
이불에 똘똘 감겨 있지요.
발이 먼저 마루에 닿았습니다.
발이 팔짝팔짝 뛰어서 존을 옷장 앞에 데려다 주어요.

  이런 식으로 계속 적어나갔다.
  완성된 원고를 글쓰기 모임에 들고 갔다. 왠지 이야기가 지루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임에서 그런 고민을 말했고 누군가 주인공(당시에는 내 아들 존이었다)에게 새로운 시도, 이를테면 주인공이 발과 대화를 나누게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머릿속에 불이 반짝 켜진 듯했다. 나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를 켜고 도입부를 다음과 같이 바꿨다.

발가락아, 잘 잤니.
발아, 잘 잤니.
이불 속에 똘똘 말려 있네.
제일 먼저 바닥을 디뎌 보렴.
옷장 문 앞까지 나를 데려다 주렴.

  그리고 이 방법으로 뒷부분도 써 내려갔다.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야기가 갑자기 생기를 띠고 선명해졌다. 편집자도 동의했다. 다만 편집자는 주인공이 내 아들 존처럼 마냥 어린 소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삽화가는 편집자와 상의해 초록색 리본을 노랑머리에 단, 당돌한 이미지의 소녀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이것이 바로 협동 작업의 묘미다. 다른 사람들이 작가의 글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고 간다. 존을 빼버리는 것은 슬펐지만 완성된 책을 보니 감격스러웠다. 그리고 뭐든지 미루는 법이 없는 아들에게 자극을 받아 나는 마침내 《다음에, 이구아나 Mañana, Iguana》 속 이구아나를 만들어냄으로써 결국 아들을 그림책의 주인공으로 삼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 그림책에 내 아들 존에게 바친다고 적었다.
  동물이나 사물에게 말을 거는 새로운 방법을 이용하면 심심한 이야기도 빛나게 만들 수 있다.《앉아, 트루먼! Sit, Truman!》에서는 화자가 아주 커다랗고 고집 센 개 트루먼에게 말을 건다.


  주의할 점이 있다. ‘동물이나 사물에게 말 걸기’ 방법을 사용할 때 둘 이상의 대상에게 말을 걸어서 성공한 경우는 보지 못했다. 아마도 어린이 독자가 혼란스러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이 방법을 쓸 때는 가능하면 단순한 게 좋다. 이야기 전체를 통틀어 동물 한 마리나 사물 하나에게만 말을 걸자.



가면 쓰고 말하기
  화자가 나무, 책상, 침대 같은 무생물이 되어 그 사물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쓰면 상상력을 무궁무진하게 펼칠 수 있다. 비가 내릴 때 나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


  이 방법으로 글을 쓰면 곤란한 문제가 몇 가지 있다.

  첫째, 무생물을 어떻게 그려야 할까? 눈, 코, 입을 그려 넣어야 할까? 그러면 그림이 너무 귀엽게 보일 염려가 있는데 그런 일은 조심해야 한다. 무생물의 머릿속에 화자가 들어가 이야기를 전하는 방법을 택할 때도 이와 같은 문제가 생긴다. 《넌 할 수 있어, 꼬마 기관차 The Little Engine That Could》가 그 예다. 1954년도 판에서 이 책의 삽화가는 작가가 “기차가 행복해한다”라고 쓴 부분에다 기차가 웃는 얼굴을 그려 넣었다.

  또 다른 문제는 나무, 고층건물, 다리 등 무생물은 대개 한자리에 고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움직일 수 없으니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없고, 풍경이 변하지 않는 심심한 그림이 반복될 수 있다. 나무는 한곳에 서 있으니까.


  하지만 ‘가면 쓰고 말하기’는 잘만 활용하면 《나는 헤브네페르트의 미라입니다 I Am the Mummy Heb-Nefert》에서처럼 아주 극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

나는 헤브네페르트의 미라입니다.
밤처럼 새까맣고
북에 씌운 가죽처럼
빳빳하지요.

  이 도입부 다음에 미라는 살아 있을 때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떻게 춤추고 배를 타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사랑했는지를 이야기한다. 인물이 한때는 살아 있었다는 점에서 ‘가면 쓰고 말하기’ 방법을 쓰는 게 자연스러워 보인다.

  반면 다이앤 시버트는 《하트랜드 Heartland》에서 이 방법을 아주 색다르게 활용했다. 화자인 하트랜드는 언제나 ‘나’라는 1인칭으로 강, 도시, 농장, 옥수수 밭, 계절, 그리고 그 땅에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의 삶을 이야기한다. 화자가 드넓은 땅인 덕분에 그림도 아주 풍성하다.
  새로운 방법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시도하는 것은 절대 시간 낭비가 아니다. 어떤 시도이더라도 결국에는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든다. 평소와 다르게 생각함으로써 이야기를 색다르고 독특하고 흥미롭게 꾸미게 된다.



대화하기
  이 방법은 말 그대로다. 두 인물이 대화를 나눈다. 단지 그뿐이다. 서술은 없다. “그는 말했다”, “그녀는 말했다”, “그게 말했다”라고 쓰지 않는다. 두 사람의 대화일 수도 있고, 두 동물의 대화일 수도 있고(동물이 말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사람과 동물의 대화일 수도 있다. 다만 인물들의 대화 말고는 아무것도 적지 않는다.

  ‘대화하기’ 방법을 사용할 때는 인물들의 말투에 개성이 있어야 한다. 말투는 각 인물에게 어울리고 인물의 개성을 드러내야 한다. 《매듭을 묶으며 Knots on a Counting Rope》는 소년과 할아버지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시작은 다음과 같다.

할아버지, 그 이야기 또 들려주세요.
제가 어떤 아이인지, 그 이야기요.

    아가, 그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이 해 주었잖니.
    이제는 너도 다 외웠겠다.

  할아버지가 하는 말은 글줄에서 언제나 몇 칸 더 안쪽으로 들어가서 시작한다. 캐런 보몬트의 《친구란 Being Friends》은 “나는 나고 너는 너야. 난 빨간색을 좋아하고 너는 파란색을 좋아해”로 시작한다. 친구 중 한 명이 이런 식으로 자신과 친구가 어떻게 다른지 계속 이야기한다. 하지만 자신들이 아무리 서로 달라도 결국 같다는 것을 안다. 둘다 서로 친구로 지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편지 주고받기
  편지를 주고받는 방법은 ‘대화하기’의 또 다른 형태다. 편지글에는 각 인물이 편지를 하나하나 실제로 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야 한다. 대화에서 각 인물의 개성이 묻어나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편지를 이용하면 인물의 행동과 대화를 압축해서 보여줄 수 있다.
  우리가 평소 편지를 쓸 때 전하려는 내용을 핵심만 추려 간단히 적듯이, ‘편지 주고받기’를 이용하면 장면을 요약하고 대화를 간추리기 쉽다. 편지를 쓸 때 우리가 꾸밈없이 행동하기 때문이다.
  《올리버 K. 우드먼의 여행 The Journey of Oliver K. Woodman》은 편지로 이야기 전체를 전달한다. 더구나 편지를 주고받는 사람이 단 둘이 아니다. 여러 명이다!

  남부 지방에 사는 레이 삼촌은 조카딸 타미카를 만나러 갈 수가 없다. 그래서 나무 인형 올리버를 대신 보내기로 한다. 레이 삼촌은 찾아갈 주소를 적어 올리버를 여행길에 올린다. 누구든 올리버를 만나게 되면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 잘 가고 있는지 알려달라는 부탁을 적은 종이쪽지도 함께. 그래서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어디서 올리버를 발견했으며, 올리버를 데리고 어디로 갔는지 알리는 편지를 레이 삼촌에게 보낸다.




♧ 아이와 어른 모두를 매혹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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