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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지갑의 이야기

by 한미숙 hanaya

언제부터인가 내 책상에서 꼼짝 않고 자리를 잡고 있는 물건이 하나 있다. 신랑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오래된 낡은 지갑. 진한 와인 브라운색을 띈 지갑은 적당히 낡아 손때가 그대로 묻어 있다. 지갑 안에는 돈이 들어 있지만, 사실 돈을 꺼내 계산한 지는 꽤 오래전 일이다.


디지털 결제 시대 이전, 외출하려면 가장 먼저 챙겨야 할 것이 지갑이었다. 지갑을 구매할 때도 카드를 얼마나 많이 꽂을 수 있는지 고민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현금을 주고받는 일이 거의 없고, 카드도 대부분 핸드폰 속으로 들어갔다. 스마트폰 결제와 모바일 페이 서비스로 인해 자신의 역할을 잃어버린 지갑은 책상 위에서 앉아 있을 뿐, 이제는 가방 안으로 들어갈 일이 거의 없다. 가끔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지갑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다.


예전에는 생일이 되면 예쁜 손지갑을 골라 선물하기도 했다. 빈 지갑은 주는 게 아니라면서 1,000원짜리라도 넣어서 선물하곤 했다. 선물은 받는 사람도 좋지만 하는 사람도 행복하게 만든다. '무얼 선물하지?'라는 고민을 하면서 우리는 상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한다.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물건을 찾으려고 직접 상점을 돌아다닌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과정이 거의 사라지고 없다. 집에서 앉아 온라인으로 고르거나 간편하게 모바일 선물을 보낸다. 기프티콘과 모바일 상품권으로 편리해진 선물 문화 속에서도 가끔은 옛날의 정성 어린 선물 고르기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우리가 지나치게 많은 것을 담으려 하면 지갑이 무거워지고 뚱뚱해진다. 결국 두터운 지갑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기도 했다. 때로는 날씬한 지갑을 위해 불필요한 동전과 카드를 빼놓고 나가는 일도 있었다. 지갑은 우리들에게 '소중한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비워내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 아닐까? 이는 우리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불필요한 것들로 가득 찬 삶은 오히려 우리를 힘들게 하고, 진정으로 소중한 것들을 놓치게 만든다.


낡은 지갑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감정을 담고 있는 소중한 친구이다. 오랜만에 낡은 지갑을 열어본다. 그 속에 담긴 추억들이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 새것이 주는 기분 좋음과는 다른 따뜻한 온기가 가득하다. 비록 기술의 발전으로 일상에서의 활용도는 줄어들었지만, 아날로그 감성과 소중한 추억의 보관함으로서 낡은 지갑의 가치는 여전히 우리 삶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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