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샤 Jun 25. 2024

아이폰이 잡은 벌레

다락방의 장례식 (7)

"안녕하세요."


그녀는 한숨을 쉬며 자리에 앉았다. 열 번째 만남이었다.


"여전히 죽고 싶네요."


"여전히 그런 마음이 드세요?"


나는 차분히 대꾸했다.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왜 그런지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어제 이상한 꿈을 꿨어요."


그녀는 종이를 꺼내 그림 하나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 속에는 단정한 대련복을 입은 여자가 몸을 휘적대며 

무술 동작과 같은 자세를 몇 가지 선보이고 있었다.


"이건..?"


나는 종이를 받아 들며 물었다.


"모기를 죽이려던 워터밴더예요."


그녀가 설명했다.


"워터밴더 아시죠? 물을 주관하는 사람들이요. 원룸 안에 있던 모기를 잡으려고 했는데, 함께 수련할 사람이 부족하다 보니까 실력이 좋지는 않았어요. 경험 부족이 문제였죠. 아시잖아요, 요즘은 워터밴더의 수가 많이 적어졌고요. 그만 옆 방에 있던 남자를 죽인 거예요."


"세상에."


내 대답에 그녀는 조금 힘이 나는 듯 보였다.


"워터밴더는 몸속에 흐르는 수분을 느꼈던 거죠. 모기의 것이나 사람의 것이나 헷갈렸던 거예요."


"그다음에는 어떻게 됐죠?"


"몰라요."


그녀는 몸을 떨었다.


"저는 기억을 잃었거든요. 아시죠? 꿈속에 나온 워터밴더도 제가 알던 사람일지 몰라요. 기억은 안 나지만."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도 조금씩 기억이 떠오르세요?"


그녀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랑 제 친구들이요. 지구를 구하던 날도."


***


김호봉은 천천히 약국 문을 열었다. 딸랑, 하는 소리가 나자 카운터를 지키던 젊은 남자가 밝게 응대했다. 그의 옆에는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뭐 찾으시는 거라도 있으세요?"


"아뇨."


김호봉이 대꾸했다.


"이 시간에 약국을 찾는 건 퇴마사뿐이라는 건 알고 있을 텐데요."


그의 말에 남자는 놀란 기색을 보이며 여자아이를 힐끗 쳐다보았다.


"딸이군요."


김호봉이 그제야 아이를 향해 눈을 돌렸다.


"이제 보니 닮았네요."


"지금 무슨 말을 하시는 건지-"


"당신 아내는 어디 있죠?"


김호봉은 시계를 톡톡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보다시피 세상이 멸망하기까지 시간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제 아내를 내버려 두세요."


남자가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 덕분에 고통스러웠던 퇴마사 시절은 모두 잃고 이제야 평온을 찾았어요."


그는 부드럽게 어린 딸의 머리를 감싸 쥐었다.


"저희 가족을 내버려 두세요, 부탁입니다."


"도대체가 앞뒤가 안 맞는 말을 하네요."


김호봉은 한숨을 내쉬었다.


"세상이 망해가는 판국에 평온은 무슨."


그는 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 건넸다.


"그럼 이거나 전해주세요."


김호봉은 낡은 양복을 탁탁 털고는 몸을 돌렸다.


"시간을 되돌려야 한다고요. 그래야 헤비메탈이 걸어놓은 저주를 없앨 수 있어요. 기억은 좀 잃겠지만요."


그는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를 향해 말했다.


"동료들이 기다린다고도 전해주세요."


김호봉이 사라진 후 남자는 쪽지를 펼쳐보았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도와줘.

이전 06화 벌레 잡는 아이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