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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마 Aug 02. 2021

입사 한달 차, 이직을 결심하다 Ⅳ

스타트업 웹디자이너의 고뇌

제품에 의문이 들기 시작하다.


   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다양한 곳에서 면접을 보았었고 입사 제의를 받았었다. 그러나 그 중 이 회사를 선택한 이유는 정말 제품이 좋아서였다. 세계최초로 개발 성공한 제품은, 대표의 말대로라면 대기업과 공동 개발을 하다가 대기업이 두손두발 들고 나가 대표 홀로 혈혈단신 몇년을 고생하며 만들어낸 제품이었다. 그리고 또 정말 이름만 대면 아는 대기업의 회장이 찬조금까지 보태주며 대표를 응원한 그런 제품이라고 했다. 그리고 정말 이분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오? 이거 진짜 성공할 거 같어' 라는 확신이 들었다.

   사실 이 회사에 입사를 했을 당시 나는 정말 돈이 없었다. 5년간 해온 쇼핑몰은 거의 말아먹었고, 몸이 좋지 않아 일을 할 수 없어 프리랜서로 들어오던 수입들도 거의 없었으며, 사업한다고 받아 놓은 빚들이 많았던 터라 입사 시 가장 많이 고려한 것이 '돈'이었다. 연봉도 연봉이지만 이곳에서 계속 일을 하게되면 들어올 부수입 같은 것들이 굉장히 중요한 고려 사항이었다. 귀엽고 동글동글한 디자인을 주로 해오던 내가 딱딱하고 다소 칙칙한 디자인을 주로 해야하는 이 곳에 입사한 것도 사실은 '돈' 때문이었다. 면접 당시 부사장은 내게 우리는 곧 상장을 앞둔 기업이며 상장을 하게 되면 지금 입사한 직원들에게는 '스톡옵션'을 배부할 것이며 분기별로 인센티브도 제공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근로계약서에도 이 내용이 기재되어있다. 정말 회사의 '가능성'과 '돈'만 보고 입사를 한 것이다.

  "성과를 보인 만큼 난 보상해줄게."

   부사장이 늘 입에 달고 다닌 말이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제품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대기업이 못 만든 걸까? 안 만든 걸까?


   우리 사무실은 지식산업센터에 있었는데 4호실을 합쳐 만들었었다. 그러다보니 가벽으로 사무공간과 회의실 등을 나눴었는데 내가 일하는 공간은 회의실 옆 가벽을 설치한 공간이었다. 그래서 주간회의나 방문한 손님들의 대화를 의도치 않게 듣게 되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어느 날, 변호사가 우리 회사를 방문했다. 곧 제품 출시를 앞두고 혹시나 들어올 특허 소송이라던가, 상표권 침해라던가 복잡한 문제들을 방어하기 위해 소개받은 분이었다. 듣기로는 대기업 소속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현재는 국내 외 다양한 기업들의 특허 소송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아무튼 유능한 사람 같았다. 그 분의 특기는 아주 조근조근 사람을 패는 거였는데 이때쯤 이미 회사와 대표에 대한 불만이 쌓여있었던 나는 변호사님이 방문하시면 끼고 있던 이어폰을 빼고 회의실의 대화에 집중했다. 왜냐면 변호사가 정말로 대표를 조근조근 잘 팼기(?) 때문이다.

  "대표님, 이걸 대기업이 못 만든 걸까요? 안 만든 걸까요?"

  변호사는 처음 우리 회사에 방문했을 때 이 말을 던졌다.

   "아, 이건 대기업이 못 만든 겁니다. 제가 혼자 만들어서 특허도 냈고요. 세계에서 제가 처음 만든 겁니다. oo화학아시죠? 거기랑 공동개발 하려다가 걔네가 포기하고 나간거에요"

  대표는 다소 화가난 말투로 대답했다.

   "그런가요? 저는 이걸 보자마자 대기업이 안 만든거라고 생각했는데요. 대표님이 물론 홀로 개발하신 건 대단한 일이지만 국내 및 해외의 대기업들이 이런 제품을 못 만들까요? 충분히 만든다고 봅니다. 이건 만들면 골치 아파지니까 안 만든거에요."

  변호사는 아주 조근조근 전혀 휘둘리지 않고 대답했다.

   "그렇겠죠. 본인들은 소모품 팔아서 먹고 살아야하는데 이런 제품을 만들어버리면 소모품이 안팔라니까요. 그런데 기술력도 없을 거에요."

  대표는 호언장담하며 대답했고 변호사는 하하하 크게 웃었다.

   "아뇨. 대표님. 이 정도 기술력은 대기업이면 충분히 가지고 있구요. 특허도 아마 있을거에요."

  대표는 이때부터 약간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아닙니다. 내가 유일하게 특허를 냈어요."

  변호사는 또 조용히 나긋나긋하게 대답했다.

   "아니에요. 대표님. 대표적으로 대표님이 내신 특허에 '자동 펌프'부분 있죠? 이 부분이 꼭 이 제품에만 들어갈까요? 아마 찾아보면 다른 제품에도 이런 기술이 꽤 많이 들어가 있을텐데요. 대표적으로 자동차도 있구요. 꼭 같은 제품에서만 소송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역시 변호사는 다르당' 하며 강 건너 불구경 하고 있던 중 갑자기 대표가 언성을 높혔다.

   "아, 짜증나서 대화를 못하겠네!"

   그리곤 책상을 쿵! 내리쳤다. 순간적으로 분위기가 싸해진게 느껴졌다. 그리고 변호사와 함께 온 남자가 조용히 말했다. (이 남자는 변호사를 추천 한 부사장의 친구였다.)

   "김대표, 화를 낼 게 아니고 들어야지. 그래야 해결 방법을 찾지"

   대표는 궁시렁 거렸고 변호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제가 처음에 이 회사 제안 받았을 때 솔직히 안하려고 했습니다. 이쪽 국내 소송만 60개가 넘더라구요. 그리고 보통 기술도 간단한 편인데 대기업이 만들지 않았다? 무언가 문제가 있는 거에요."

   "자신없으면 하지마세요 그럼"

   "자신 없는 게 아닙니다. 대표님께서 너무 자신만만해하시는 데 제게 상담 받으러 오신 많은 분들이 대표님과 같았어요. 문제 없다고, 특허도 완벽하고 돈만 벌면 된다고 자신만만해 하시던 분들이 전부 소송때문에 판매는 커녕 시작도 못해보시고 마이너스 28억, 이렇게 빚더미에만 앉고 무너 지신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저는 완벽하게 준비하자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특히나 미국시장에 진출하실거라면 더더욱이요.”

   변호사와 대표의 기싸움이 계속 되었다. 나는 조용히 네이버에 ‘특허조회’를 검색했다. 여지껏 대표와의 대화를 할때마다 그는 제품에 대한 프라이드가 정말 남달랐다. 대표의 말을 빌리자면 이 회사의 이 제품은 ‘내놓은 순간 대기업은 물론 세계가 놀랄 제품! 아무도 우리를 따라잡을 수 없다!’ 라며 당당했고 변호사와의 대화에서도 79억에 달하는 인구에서 본인과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발명을 한 사람이 단 한명도 없을 것이라고 자부했다. (변호사가 계속 '대표님 정말 79억 인구에서 대표님과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단 한명도 없을 까요?"를 입에 달고 다님) 그럼 당연히 특허에도 우리 제품은 물론, 비슷한 제품이 없어야겠지? 

   그러나 왠걸! 검색창에 제품 키워드를 넣자마자 566개의 특허가 쏟아져나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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