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준수 반장의 “시킨 대로 했을 뿐”이라는 말은 그의 개인적인 변명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 있는 ‘양심의 외주화’를 대변합니다. 우리는 종종 조직의 명령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도덕적 판단을 유보하곤 합니다.
하지만 철학자들은 묻습니다. “명령에 따르는 것이 과연 책임 면제의 사유가 될 수 있는가?” 하산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멈춰 섰어야 했습니다. 기계가 멈추지 않는다면, 인간인 우리가 생각을 멈추고 판단해야 했습니다. 이 무거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도덕적 판단과 행동의 용기를 강조한 세 명의 철학자를 소환합니다.
한나 아렌트: 생각하지 않음이 죄가 될 때 - ‘악의 평범성’
전 반장은 하산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평소에는 잘 챙겨주는 선배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떻게 죽음의 현장을 방치했을까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보며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아이히만은 유대인 학살의 실무 책임자였지만, 법정에서 그는 “나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며, 내 월급과 지위를 지키기 위해 성실히 일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뿔 달린 악마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실한 관료였습니다.
아렌트는 그의 죄가 ‘사악함’이 아니라 ‘무사유(Thoughtlessness)’에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여기서 생각이란 지능의 문제가 아닙니다. ‘나의 행위가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타인의 관점에서 상상하는 능력’입니다.
전 반장은 회사의 지시를 수행하는 데 집중하느라, 그 지시가 하산에게 가져올 ‘고통과 죽음’을 상상하는 일을 멈췄습니다. 아렌트는 말합니다. “생각의 바람이 멈출 때, 인간은 누구나 악을 저지를 수 있다.” 전 반장이 기계를 멈추지 못한 진짜 이유는, 그 순간 ‘생각’을 멈췄기 때문입니다.
임마누엘 칸트: 인간을 수단으로 쓰지 말라 - ‘정언명령’
전 반장은 아마 억울할지도 모릅니다. “회사의 이익을 위해, 그리고 내 밥줄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이죠. 효율성과 생존, 이것이 그가 다른 판단을 하게 만든 기준이었습니다.
칸트(Immanuel Kant)는 이런 ‘조건부 판단’을 단호히 거부합니다. 그는 우리가 마땅히 따라야 할 도덕적 의무를 ‘정언명령(Categorical Imperative)’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핵심은 이것입니다. “너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인간성을 언제나 목적으로 대하고 결코 수단으로 대하지 말라.”
회사 입장에서는 생산성 향상(목적)을 위해 하산의 위험 감수(수단)가 필요했을지 모릅니다. 전 반장은 이 논리에 따라 하산이라는 ‘존엄한 인간’을 기계 가동을 위한 ‘부품(수단)’으로 사용했습니다.
칸트에게 있어 도덕적 행동이란, 결과가 좋아서(생산성 유지) 혹은 처벌이 두려워서(해고) 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그것이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의무’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위험한 작업을 거부하는 것은 회사 사칙을 어기는 일일지 모르지만, ‘사람을 죽게 해서는 안 된다’는 보편적 도덕법을 지키는 숭고한 의무입니다. 칸트는 묻습니다.
“당신의 행동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되어도 좋은가?”
장 폴 사르트르: 핑계는 없다, 우리는 자유롭기에 책임져야 한다
전 반장의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은,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는 뜻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이 말을 가장 싫어했습니다.
사르트르는 “인간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 총구가 겨겨진 상황에서도 ‘예’와 ‘아니오’를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선택에 따른 대가(해고나 불이익)는 혹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택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불이익을 피하는 쪽’을 스스로 선택한 것입니다.
사르트르는 자신의 선택을 상황 탓으로 돌리며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자기기만(Bad Faith)’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전 반장이 “시킨 대로 했을 뿐”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는 자신을 자유 의지가 없는 사물이나 기계로 격하시키며 도덕적 책임을 회피하려 한 것입니다.
잔인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르트르는 말합니다.
“그날 기계를 멈추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바로 당신입니다.”
이 무거운 진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다음번엔 그러지 않겠다”는 진짜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도덕적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불이익의 두려움보다 인간으로서의 책임을 더 무겁게 선택하는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