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번째 책, 장하준 『장하준의 경제학강의』
양대리는 파이어족이다. 파이어(fire)? 아하, 해고되었단 뜻이군! 젊은 사람이 안 됐네. 요즘 세상에 왠만해선 해고되기 쉽지 않은데, 성격이 보통 아닌가 봐? 이렇게 생각했다면 빨리 구글 신을 찾아뵙길 바란다. 구글 신이 가라사대 파이어족이란, 경제적 자립을 통해 빠른 시기에 은퇴하려는 사람들을 뜻한단다. 그럼 왜 하필 파이어(FIRE)냐? ‘경제적 자립, 조기 퇴직'(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의 첫 글자를 따서 그렇단다. 해몽을 붙이자면, 파이어족은 무의미하고 타락한 일터에서 자기를 빨리 해고하기 위해 불같이 진격하는 종족을 말한다. 이렇게 놓고 보니, 말을 찰지게 잘 만들었구나 싶다.
양대리는 지금 32살이다. 39세 조기 은퇴를 목표로 29살에 시작해 3년 넘게 착실하게 실천 중이다. 양대리도 처음부터 파이어족을 꿈꿨던 건 아니었다. 평생직장까진 아니더라도, 회사에 그럭저럭 적응해 오래 다니고 싶었다. 그런 그를 파이어족으로 만든 양대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신입사원 교육 때 예수님과 부처님 그리고 공자님 말씀을 합쳐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감동 경영을 소리 높여 웅변하셨던 대표이사가 분식회계로 법정구속된 사건이었다. 그때 느낀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저분을 평생 멘토로 삼아 충성해야겠다고 다짐했던 일은 양대리의 순진무구함을 증명하는 에피소드로 전락해버렸다.
다른 하나는, 가장 존경했던 선배가 억울하게 퇴사한 사건이었다. 교육을 준비하던 선배는 떨어진 천장 마감재 때문에 어깨를 심하게 다쳤다. 회사의 회유로 산업재해 신청을 하지 않았던 선배는 실비라는 명목으로 턱없이 모자란 병원비의 일부만을 받았다. 선배는 지금까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어느 날, 모기업에서 퇴직한 사람이 본부장으로 왔다. 그는 소위 학연 경영을 했다. K대 경영학과 아니면 승진할 수 없단 소문이 자자했다. 선배는 K대가 아니었다. 높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승진에서 미끄러진 선배가 그 이유를 따졌다. 돌아온 답변은 선배의 뒤통수를 있는 힘껏 때렸다.
”당신은 어깨 후유증 때문에 팀장 업무를 성실하게 볼 수 없잖아, 안 그래?“
구글처럼 승진하고 싶은 사람이 손드는 제도가 있었다면 제일 먼저 손을 들었을 선배다. 자신을 팀장으로 스스로 추천할 수 있다는 건 업무능력과 동료들의 적극적인 지지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 정도로 선배는 업무적으로나 인간관계에 있어 어느 한구석 흠잡을 곳이 없었다. 그런 선배가 결국 쓸쓸하게 조기 퇴직을 선택했다. 송별회를 겸한 회식이 국민의례처럼 끝난 후, 선배는 양대리를 따로 불렀다. 선배로서 차마 못할 말이라면서, 선배는 회사 마지막 날의 첫 마디이자 마지막 말을 뗐다.
”조직에 충성하지 마. 네 인생에 충성해.“
그날 이후 양대리는 심장 깊숙한 곳에 파이어족의 헌장을 문신처럼 새겼다. 파이어족의 헌장은 '내 인생에 충성하자!'였다. 조기은퇴를 결심한 것은 표면적으론 저렇게 훌륭한 선배가 저런 모습으로 나갈 정도라면, 나는 뼈도 못 추리겠다 싶은 자신감 결여도 한몫 거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그리고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나를 나답게 살도록 만드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이 가장 큰 이유였다.
회사 일을 거듭할수록 양대리는 영화 ’모던 타임즈‘의 한 장면과 사무실이 반죽되어 있는 것처럼 느꼈다. 책상 파티션이 초대형 톱니바퀴로 변하더니, 자신의 코 밑엔 얌체같은 코수염이 생겨났다. 어느 틈인가 나타난 찰리 채플린은 양대리의 손을 잡아 끌어 영화 속으로 데리고 간다. 현장을 들쭉날쭉 움직이는 찰리와 늙은 작업반장은 탱크처럼 큰 기계에서 일한다. 찰리의 실수로 늙은 작업반장은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목만 간신히 밖으로 나온 상황. 작업반장을 꺼내기 위해 찰리는 그의 지시에 따라 레버를 당겨보기도 하고 멈추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뿌우“ 신호가 울린다. 신호에 맞춰 찰리 채플린은 갑자기 어디론가 가버린다. 기계에 낀 작업반장의 안전 따위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그가 그렇게 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점심시간이기 때문이다. 찰리는 기계에 낀 반장과 함께 점심을 먹는다. 양대리는 기계에 낀 채 점심을 먹는 모습이 영 남의 일 같지 않다. 하루라도 빨리 회사를 나가는 것이 정답처럼 생각됐다.
이제 8년 남았다. 딱 8년만 꾹 참고 은퇴 자금을 모아보자. 먹을 거 안 먹고 입을 거 안 입으면서 허리띠 졸라매면, 조기 은퇴 자금 5억을 모을 수 있다. 양대리는 이를 5억 프로젝트라고 불렀다. 5억 프로젝트는 3N3Y 전략으로 요약된다.
3N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 세 가지로 연애, 자동차, 음주다. 이 세 가지는 돈 먹는 하마다. 연애는 돈과 시간 그리고 삶의 에너지까지 빡빡 긁어 넣어야 한다. 생일, 만난 지 100일 등등 쓸데없는 기념일 외에도 영화, 외식, 추억만들기에는 돈이 계속 들어간다. 어디 돈뿐인가? 사랑은 시간 또한 얼마나 잡아먹던가? 투자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데, 여자 비위 맞춰가며 어디 갈까, 뭘 먹을까 노닥거릴 시간이 어디 있는가? 그래서 양대리는 5억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1000일을 채웠던 여자 친구와 전격 헤어졌다. 그동안 연애에 들어간 돈이 무려 1,845만 원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자동차를 굴리는 건 사람이 아니었다. 돈이었다. 주유비는 애교다. 취등록세, 보험료, 주차비, 사고처리비, 기타 유지비 등등 자동차는 돈으로 포장된 도로를 달렸다. 투자를 하려면 종잣돈이 필수인데, 자동차는 몇 년 모은 목돈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양대리는 자동차야말로 조기은퇴에 가장 큰 적이라고 생각했다. 타던 차를 중고로 팔아 투자자금에 보탰다.
술은 백해무익하다. 돈과 시간, 게다가 건강까지 해치는 몹쓸 놈이다. 설상가상으로 양대리는 ‘오늘은 내가 쏜다’를 외치는 주사가 있다. 친구들은 그 점을 교활하게 이용해 먹었다. 다음 날, 술김에 한 말이라며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젠 팔릴 체면도 없을 지경이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약과다. 술이 양대리에게 주는 가장 큰 위험은 어느 순간부터 정신을 잃게 만든다는 것이다. 보통 기분이 안 좋을 때 술을 찾고, 그러면 폭음을 하곤 했다. 폭음은 양대리로 하여금 길거리에서 편히 자도록 했는데, 그 결과는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머리를 심하게 다쳐 응급실에서 십여 바늘을 꿰맨 일까지 있었다. 양대리는 이대로 살다간 회사가 아니라 인생 자체를 조기 은퇴할 것 같아 술을 끊었다.
3Y는 꼭 해야 할 것 세 가지로, 정기적금, 주식투자, 부동산투자다. 불혹의 나이 사십엔 그 이름에 걸맞게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좋아하는 일만 골라 할 수 있는 청산에 살리라! 투자를 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역시 돈이다. 돈을 모으기 위해서 가장 쉬운 방법은 비용부터 줄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양대리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부모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독립해 따로 살면 숨만 쉬고 눈만 깜빡거렸는데도 청구서가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부모님과 함께 살면 경제적으로 좋은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월세 60만 원을 아낄 수 있다. 부모님께 생활비로 30만 원을 드려도 30만 원이 남는다. 이 돈을 1년 모으면 360만 원이고, 39살까지 계속하면 원금만 2,880만원이다! 게다가 전세금 5천만 원으로는 지켜보던 알짜 종목에 투자할 수도 있다. 급할 때 아버지 자동차를 쓸 수 있고, 부모님 잔소리 덕분에 하게 되는 타율적 바른 생활은 덤이다. 부모님께서는 5억 프로젝트와 3N3Y 전략을 무표정하게 들으셨다. 그러곤 대견함 반, 안타까움 반으로 양대리를 거두어 주셨다.
3일째다. 57,000원짜리 주식이 19,550원이 되었다. 코로나 임상 성공이 눈앞이라는 친구 말에 차 판 돈과 전세금을 모두 투자한 것이 후회막급이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투자의 ABC 조차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 장밋빛 투자 결과만 보고 군침 흘리기에 급급했다. 욕심에 눈이 먼 뇌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말라며 매수 버튼을 미친 듯 눌러댔다. 핑크색 꽃잎을 날리면서 나타난 미녀는 윙크를 하며 확 앞당겨진 조기 은퇴에 뭘 할지나 걱정하라며 확신을 보탰다. 보란 듯 사표를 던지고 멋지게 손 하트를 날리며 회사를 나올 생각을 하니 온몸에 전율이 돌았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 성공의 전율대신 실패의 공포와 절망이 온몸에 가시처럼 돋았다. 벌벌 떠는 다리를 진정시키기 위해선 두 손으로 있은 힘껏 눌려야 했다. 수익률 마이너스 65.7%. 투자 원금은 3분의 1 토막 났고, 양대리의 마음은 천 토막 만 토막 났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투자카페와 유투브 등을 뒤졌다. 이런저런 소문이 무성했다. 소문에 따라 욕망이 다시 일어나나 싶더니, 또 돈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풀썩 주저앉았다. 답답했다. 아무리 읽어도 뾰족한 답이 없었다. 그래프가 요란할수록 마음은 더 시끄러워졌다. 그러다가 누군가 예전에 쓴 글 하나가 눈에 띄었다.
’주식 고수의 뼈 때리는 한 마디, 경제학의 기본도 모르면서 주식 투자한다고?‘
글쓴이는 15년 동안 주식투자를 했단다. 경제학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그저 소문과 자신의 실패 경험에서 얻은 직관만 믿고 투자해왔다. 산전수전 모두 겪고 난 뒤 얻은 결론은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평범하다 못해 식상한 원칙이었다. 그럼 기본이 뭐냐? 먼저 주식시장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경제 환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안정적인 투자를 하려면 매일 바뀌는 경제 변수들을 가지런하게 읽어낼 수 있는 침착한 눈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에게 그 눈은 바로 경제학이었다. 주식고수는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하는 두껍고 어려운 경제학 교과서는 추천하지 않았다. 잘 읽히고 이해하기 쉬운 베스트셀러가 오히려 투자에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밑지는 셈치고 양대리는 그가 추천한 책 중에서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를 읽어보기로 했다.
양대리는 충격에 빠졌다. 주식투자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집어 든 경제학 책에 경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페이지마다 날카롭게 정리된 수식과 알록달록한 그래프를 예상했는데, 이 책엔 그런 것들이 없었다. 숨은 경제 비법을 통해 자신을 투자 고수로 거듭나게 만들어 줄줄 알았는데, 장하준 교수는 프롤로그에 이 책의 목적을 아래와 같이 무심하게 밝혀놓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양한 경제학적 논쟁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특정 경제 상황과 특정 도덕적 가치 및 정치적 목표 하에서는
어떤 경제학적 시각이 가장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비판적 시각을 갖출 수 있도록 경제학을 배우는 일이다.
(여기서 ’어떤 경제학적 시각이 정답인지‘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는 것을 주목해 주기 바란다.)
괄호 안을 읽고 양 대리는 책을 던졌다. 자신은 바로 그 정답을 찾기 위해 이 책을 샀는데, 괄호 안에 드러난 저자의 생각은 정답 따윈 애초부터 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화가 났다. 주식투자에서 잃은 돈을 만회하고자 처음 시작한 일부터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이 책을 추천했던 투자고수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을까. 나는 또 속은 걸까. 양대리는 자기 귀를 잡아당겼다. 팔랑 귀를 스스로 처벌한 것이다. 그의 귀는 빨갛게 비명을 질렀다. 주인놈아, 나한테 왜 그러냐.
양대리는 자신도 모르게 상상 속 장하준 교수(이하 짱교수)에게 볼멘소리를 냈다. 질문하는 사람도, 대답하는 사람도 같은 사람이었지만, 대화는 심각하고 치열했다.
양대리: 교수님, 경제학에 등장하는 숫자들도 정답이 아니란 겁니까?
짱교수: 경제학에 등장하는 숫자들은 특정한 관점을 가진 누군가가 규정한 겁니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절대적이고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양대리: 객관적이지도 않은 경제학은 그럼 도대체 뭡니까? 뭘 설명하는 거죠?
짱교수: 아주 유명한 경제학 책 중 어떤 것은 경제학이 ‘인생,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관한 궁극적 질문을 다룬다고 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이런 오만불손한 태도가! 그러나 경제학은 도덕적 가치판단과도 연결되어 있고 정치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도덕적 판단은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살인은 절대 안 되지만 전쟁이나 정당방위 같은 상황에선 허용되죠. 그런데 이런 상황이란 것이 수도 없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게 인생살이 아닙니까?
정치는 또 어떻고요? 수천만 명 또는 수억 명이 사는 국가에서 거미줄처럼 서로 엮인 이해관계를 두부 썰 듯 깔끔하게 조정할 수 있을까요? 최저임금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최저임금을 아주 조금만 올리더라도 노동계와 기업계는 전쟁처럼 싸웁니다. 다음 날 아침 신문에 편의점 주인과 알바생들의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팽팽하게 맞섭니다. 그러면 정치인들은 그때마다 양쪽을 달래기 위해 또 뭔가를 합니다. 이런 크고 작은 갈등들을 조정하고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정치죠. 그런데 그렇게 결정된 정책들은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칩니다. 상속세, 소득세 등 세금 정책이 대표적이죠. 도덕 그리고 정치와 이렇게 딱 달라붙어 있는 경제를 어떻게 따로 떼어내야 할까요? 인간의 욕망과 밀접한 경제가 과연 인생,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정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저같이 머리 나쁜 사람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양대리: 아니 교수님! 경제학은 인간의 합리적 선택에 관해 연구하는 과학 아닙니까?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합리적인 선택을 하려고 경제학을 하는 거잖아요?
짱교수: 그런 식으로 경제학을 설명하는 것은 소위 신고전학파의 태도입니다. 이들은 현재 경제학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학은 신고전학파 말고도 많은 학파와 학자들이 있습니다. 대충 크게 정리해도 학파가 9개 정도 됩니다. 이들은 합리적인 선택을 내리는 기준이 모두 달라요. 모든 상황을 단숨에 해결하는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것이 도대체 뭘 의미합니까? 우주를 단칼에 평정하는 절대반지는 없습니다.
양대리: 네. 그렇죠. 절대반지는 없죠.
짱교수: 여전히 경제를 정치와 전혀 상관없는 순수한 활동으로 보는 것은 역사를 모르는 처사입니다. 역사를 모르고 자기주장만 외치는 것은 이미 실패해서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죽이기까지 했던 실험을 또다시 하는 셈입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생체 실험을 하는 것이죠. 아직도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딱 한 번 말한 ‘보이지 않는 손’에 붙잡혀 있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게다가 그는 보이지 않는 손을 그 이후에는 크게 부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애덤 스미스 시대와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자본가의 규모와 성격, 기업 구조, 노동자, 시장, 돈과 금융시스템 등등에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경제 이론도 어떤 시간과 공간에서만 쓸모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경제학 이론을 그 이론이 적용되는 맥락에 맞게 이해해야 합니다. 자본주의가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 살펴봐야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양대리: 자본주의의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는 거군요.
짱교수: 네, 그렇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죠. 오늘날 정상 국가에서 4~5세 어린 아이들의 노동을 허용하는 나라가 있나요?
양대리: 예? 4~5살요? 어린이집도 혼자 보내면 안 되는 나이죠.
짱교수: 그렇죠? 하지만 애덤 스미스 시대만 해도 아이들을 고용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로빈슨 크루소』를 쓴 대니얼 디포라는 유명한 작가를 아시지요? 그는 1724년 출간한 『영국 주유기』에서 당시 면방직 산업의 중심지였던 노리치에서는 “4~5세 정도부터 아이들이 모두 자기 먹을 것을 벌 수 있다”고 감탄하기까지 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기계는 처음부터 몸집이 작은 어린아이들이 들어갈 수 있도록 설계 되었구요.
양대리는 영화 『설국열차』가 생각났다. 절대 멈춰서는 안 되는 설국열차. 그 열차를 영원히 달리게 하는 엔진. 그러나 그 엔진에는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다. 엔진 찌꺼기를 계속해서 청소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걸 할 수 있는 건 몸이 작고 가냘픈 어린아이들뿐이었다. 꼬리칸에 살던 아이들을 앞칸으로 계속 불러들여야 했던 이유는 바로 엔진 청소 때문이었다.
모든 인간은 자신이 사는 시대의 자식이라는 말이 있다. 시대마다 도덕적 판단이 다르다. 그 판단에 따라 법은 만들어지고 적용된다. 대니얼 디포가 감탄했던 아이들, 그 아이들만이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기계, 그 기계가 움직이면서 발전시킨 자본주의! 자본주의라는 설국열차가 달리고 달려 오늘에 이른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어떤 도덕적 판단과 정치적 결정 속에서 자본주의를 움직이고 있을까? 양대리는 씁쓸해진 기분을 잠시 접어두고, 짱교수가 하는 자본주의 역사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짱교수: 자본주의 역사를 1인당 소득 기준으로 한번 살펴볼까요. 이해를 돕기 위해 서기 1000년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어떤 사람이 있다고 상상해 봅시다. 이 사람 이름을 김수한무라고 하죠. 옛날 코미디 프로그램에 등장했던 이름이죠. ‘수명의 한계가 없다’는 뜻입니다.
양대리: 김수한무? 하하하. 교수님, 나이 많다고 셀프 인증하시네요.
짱교수: 그래요? 그렇다면 거북이와 두루미까진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 리듬이 은근 중독성이 있어 자동 재생되는데 참겠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서기 1000년부터 1500년까지 중세 서유럽의 1인당 소득은 1년에 0.12% 증가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김수한무가 중세 서유럽에서 서기 1000년에 100원 벌었다면, 500년 후 그의 소득은 고작 182원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양대리: 김수한무씨 불쌍하네요. 500년 일했는데 소득은 고작 82원 늘었다니.
짱교수: 그 후에도 서유럽의 1인당 소득은 거북이처럼 성장합니다. 1500년부터 1820까지 약 320년 동안, 1년에 약 0.14% 정도 성장하거든요. 서기 1000년에 100원 벌었던 김수한무는 1820년 약 285원 정도 버는 셈입니다.
양대리: 820년 동안 소득이 185원 늘었네요. 맙소사!
짱교수: 그렇죠. 그만큼 지금 잘 산다고 하는 서유럽 국가들도 경제 성장이 쉽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나마 제국주의를 통해 확장된 식민지가 없었다면 훨씬 어려웠을 겁니다. 그들은 식민지의 땅과 자원을 주인 허락 없이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그 땅의 주인들을 몰살시키거나 노예로 팔았습니다. 그 덕분에 이룬 서유럽의 성장이 그 정도 수준이었는데, 이제 소설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1820~1870년 50년 동안 1인당 소득이 매년 1% 성장한 겁니다! 1820년 약 285원이었던 김수한무의 소득이 1870년에는 약 470원이 되는 거죠!
양대리: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계산 한 후) 와! 소득이 820년 동안 185원 늘었는데, 불과 50년 만에 184원 늘었네요. 김수한무씨가 복권에 당첨되었군요!
짱교수: 산업혁명을 복권이라고 할 수 있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1820~1870년은 바로 산업혁명이 서유럽의 산업구조를 싹 바꾸기 시작한 때입니다.
양대리: 소득이 빠르게 늘었으니 김수한무씨도 빨리 행복해졌겠네요?
짱교수: 그럴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1820~1870년 당시 김수한무씨와 함께 일했던 친구들의 평균 수명은 고작 17세였습니다. 서기 1000년, 노르만 정복 당시 영국 전체의 평균 수명 이 24세라고 하니까 이보다도 30% 줄어든 짧디짧은 삶을 살다 간 거죠. 게다가 그들은 주당 80시간 노동에 시달렸습니다. 한 주 100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도 흔했고, 쉬는 날은 일요일 반나절뿐이었습니다. 수많은 방직 공장 종사자들이 폐질환으로 사망했습니다. 방 하나에 15~20명이 살았고, 화장실 하나를 수백 명이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습니다.
양대리: 김수한무씨는 늘어난 소득을 조의금으로 다 썼겠네요. (짱교수가 인상을 잔뜩 찡그린 걸 본 후) 이야기가 너무 무거워서 그냥 웃자고 한 농담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비참한 생활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을 거 같은데요?
짱교수: 네, 그렇죠. 그때부터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운동이 본격화됩니다. 마르크스도 이 무렵 태어나 자랐고, 자본론을 썼습니다. 마르크스 이론은 수정주의자들에 의해 현실에 적용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자본가들의 저항도 격렬했죠. 하여튼 1870년경부터 노동자들의 상황이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한쪽 힘이 너무 세지면, 역사는 그 중심축을 반대쪽으로 넘긴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마르크스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사회주의가 득세했습니다. 결국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죠. 한때 소련식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나라들이 1~2% 성장에 그친 1928~1938년 동안, 소련은 1인당 국민소득이 매년 5%씩 성장했던 것입니다. 김수한무도 러시아로 이사 가고 싶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장은 정치적 탄압과 1932년 기아로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은 대가였습니다. 곡물을 농촌에서 도시로 옮겨 도시에 살던 임금노동자들을 먹였습니다. 남는 곡물은 해외에 팔아서 공업화에 필요한 선진 기계를 수입했고요. 그 결과 농촌에 있는 그야말로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굶어 죽었습니다. 김수한무가 러시아로 갔다면 그 이름이 무색하게 일찍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자본주의는 1929년 대공항에 빠졌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심각한 우울증에 걸린 셈이죠. 대공항의 원인과 그 해결책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해선 다양한 의견이 있습니다만, 제가 보기엔 대공항을 이겨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실시되었던 개혁 정책, 세계 제2차 대전의 발발, 전쟁 때 개발된 기술들의 상업적 성공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의 합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를 기반으로 자본주의는 1945~1973 황금기를 누립니다. 1950년~1973년 사이 서유럽 1인당 소득 연간 4.1%, 미국 2.5%, 서독 5.0%, 일본 8.1%라는 경제적 기적이 일어납니다. 김수한무의 이 당시 소득도 엄청나게 늘었겠죠. 그의 1950년 소득이 100원이었다면 23년 후인 1973년에는 262원쯤 되죠. 중세시대 1인당 소득 성장율 0.12%로 이런 성장을 하려면 800년이 넘게 필요합니다. 김수한무는 800년의 소득 성장을 단 23년 만에 맛볼 수 있었던 거죠.
짱교수님은 설명을 계속 이어갔다. 자본주의 황금기 때 태어난 국제통화기금(IMF),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등도 황금기를 만드는데 일조했지만, 무엇보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장점을 섞은 혼합 경제 체제의 탄생이 황금기의 주요 원인이라고 했다. 이후 자본주의 황금기는 1973년 1차 오일 쇼크로 종말을 고했다. 이후 영국의 마거릿 대처, 미국의 도널드 레이건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지배했다.
사건은 계속 일어났다. 1989년 소련이 와해되기 시작했고, 1990년엔 독일이 통일되었다. 1991년 결국 소련 연방은 해체되었다. 1975년 공산화된 베트남도 1986년 개방주의로 옮겨 탔다. 1995년 멕시코 금융 위기, 1998년 한국 등 아시아 금융 위기, 2000년 닷컴 버블의 붕괴,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등을 거치면서 각국의 경제전문가들은 여러 가지 해결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뾰족한 방법은 없는 상태다. 결국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은 중앙은행에서 새로 돈을 찍어서 시중에 풀고 있다. 이걸 멋진 말로 양적 완화 조치라고 한다.
자본주의 황금기의 끝자락은 바로 그 유명한 한강의 기적이 일어난 시기다. 양대리는 한국은행이 새 통계자료에 따라 발표했던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에 크게 놀란 적이 있다. 2019년 12월에 발표한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인당 명목 국민총소득(GNI)은 한국전쟁 이후 500배 가까이 늘어났다. 그리고 명목 국내총생산(GDP·한화 기준)은 1953년 477억 원에서 2018년 1,893조 원으로 무려 39,665배로 늘었다. 대박이란 말로도 한참 모자란, 그야말로 기적이다.
양대리는 자본주의의 간략한 역사를 살펴보니, 이러한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이 어느 한 사람, 어느 한 가지 원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결코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 역사의 굴곡마다 도전과 응전이 있고, 그때마다 이를 이겨내려는 개인과 국가의 노력이 당시 상황과 잘 맞아떨어져야 가능한 일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다시 천천히 살펴보자. 1971년~1977년은 자본주의의 황금기가 정점을 지난 과도기를 넘어가던 시기였다. 이 당시 우리나라는 자본주의가 적절한 정부 개입 하에서 가장 잘 돌아간다는 걸 보여준다.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정부가 주도하는 산업화 전략을 추진하고, 동시에 자국 유치산업을 보호했던 전략이 잘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믿고 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나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빛나는 영광은 그림자도 만드는 법이다. 얼마 전 양대리는 '벌집촌 공순이'란 말을 인터넷 기사에서 봤다. 그에겐 벌집촌도 공순이도 처음 듣는 말이다. 공순이는 어린 나이에 가족들의 생계와 동생들의 공부를 위해 구로공단에서 일했던 여공들을 비하하는 말이고, 벌집촌은 이들이 살던 좁은 골방들이 모여 있던 곳을 말한다. 구로공단은 섬유, 봉제, 전자 등 노동집약적인 산업이 몰려 있었다. 구로공단은 여공들의 싼 노동력에 힘입어 1971년에는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했다. 1977년에는 우리나라가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했던 해였는데, 구로공단은 이 가운데 11%인 11억 달러를 수출했다고 기사는 전했다.
벌어들인 달러 뒤엔 여공들의 열악한 삶이 있었다. 여공 중에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자 20%, 초등학교 중퇴자는 15%에 달했다. 대부분(51%)은 초등학교가 마지막 공교육이었다.
12, 13살 난 시다들이 많았는데 대형 다리미를 다뤘습니다. 어리광부릴 나이에 산업체 특별학교가 끝나면 쉬지도 못하고 기숙사에서 옷 갈아입고 프레스로 카라를 고열에 넣고 빼내는 일을 했습니다. 잠깐만 졸면 손을 넣었다가 빼지 못해 손이 오징어처럼 눌리는 것을 자주 봤습니다.
(프레시안, ”'벌집촌 공순이'들이 노동운동 역사를 썼다“, 2021.8.2. 기사 중에서)
양대리는 평균수명 17세, 수백 명이 쓰는 화장실을 1970년대 우리나라에서 보았다. 경제성장이라는 것에는 빛과 함께 그림자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역사는 사소한 것들은 달랐지만, 크게 보면 똑같이 반복되고 있었다. 양대리는 누구를 위한 경제성장인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가는 성장하지만, 누군가는 글을 읽지 못하고, 손이 오징어처럼 눌리고, 화장실 하나를 놓고 수백 명이 다퉈야 한다. 같은 나라에서, 혹은 같은 시대에 함께 사는 사람이라면 이 질문을 꼭 해야 할 것 같았다.
누구를 위한 경제성장인가?
누구를 위한 조기은퇴인가?
누구를 위한 주식투자인가?
그저 나 하나?
짱교수: 세테리스 파리부스(Ceteris Paribus)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른 모든 것들이 동일하다면’이란 뜻을 가진 라틴어입니다. 미시 경제학 교과서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알프레드 마셜의 경제학 원론에도 등장하죠. 사실 경제학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과학들이 세테리스 파리부스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이게 없다면 아마 과학은 성립할 수 없을 겁니다.
양대리: 와, 그 정도예요?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와 닿지 않네요.
짱교수: 그럼 예를 하나 들어 볼까요. ‘물은 100도에서 끓는다’는 법칙이 있습니다. 그럼, 물은 언제 어디서나 100도에서 끓나요? 아닙니다. 물이 딱 100도에서 끓으려면 일정한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물, 불, 냄비, 온도계 이 정도만 있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예컨대 기압 등 대기도 중요합니다. 산처럼 높은 곳에선 기압이 낮아 100도보다 낮은 온도에서 물이 끓죠. 그래서 밥이 설익는 겁니다. 그렇다면 달나라, 화성 등에서 물이 끓으려면 완전히 다른 조건이 필요할 겁니다. 이렇게 물이 끓는 100도는 불변의 진리값이 아닌 것입니다. 이 값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지기 위한 조건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복잡해지면 인간의 부족한 능력으로는 도무지 과학을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어떤 실험을 할 때 수많은 조건 중에 일부만을 선택해 제한된 범위에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양대리: 그럼 선택받지 못한 조건들은 놓친 거잖아요. 그것들은 어떻게 하죠?
짱교수: 바로 그때 등장하는 것이 세테리스 파리부스(Ceteris Paribus)입니다. 자신이 선택한 조건들만 고려하고 다른 것들은 모두 동일하다는 전제를 까는 겁니다. 다른 조건들은 모두 동일하다는 말을 달리 말하면, 내가 선택한 조건 말고 다른 것들은 결과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치자는 겁니다. 아주 쉽죠? 결국 경제학이나 사회과학 등에 나오는 어떤 법칙들은 불변의 진리가 아닙니다. 어떤 조건에서만 작동하는 법칙입니다. 그러니 사실 법칙이라고 말하면 안 되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법칙이라는 낱말이 주는 인상, 즉 절대불변의 진리라는 분위기에 압도된 채, 이걸 곧이곧대로 현실에 적용하려고 덤빕니다. 맞을 리가 없죠. 현실은 모든 변수를 가지고 있다가 마치 마법사처럼 어느 때는 비둘기를 꺼내기도 하고 어느 때는 꽃을 꺼내기도 하니까요. 거의 모든 이론들이 사건이 일단 터지고 나고 뒤처리에 급급한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나온 결과들을 가지고 그럴싸하게 짜 맞추는 거지요.
양대리: 그렇다면 경제학자들이 주로 선택하는 조건들이 따로 있나요?
짱교수: 오호, 맞습니다. 제가 보기에 경제학파들이 주로 던지는 문제는 6개입니다. 첫째, 경제는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계급인가, 개인인가, 조직인가, 제도인가. 둘째, 사람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합리적인가? 비합리적인가? 이기적인가? 복합적인가? 셋째,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 예상할 수 있을 만큼 확실한가? 복잡해서 예상할 수 없는가? 넷째,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는 무엇인가? 생산인가? 소비인가? 교환인가? 다섯째, 경제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무엇인가? 자본인가? 개인의 선택인가? 생산능력의 발달인가? 제도인가? 이 모든 것인가? 여섯째, 추천하는 정책은 무엇인가? 자유시장인가? 정부의 적극적 개입인가? 등이 그것입니다. 고전주의, 신고전주의, 마르크스학파, 개발주의, 오스트리아학파, 슘페터 학파, 케인스학파, 제도학파, 행동주의 등 각 경제학파들은 위 6가지 질문에 대해 비슷하거나 다르게 대답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견해는 각 학파가 만들어지고 활동했던 상황에 적당한 대답을 내놓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양대리는 경제학도 궁극적으로 믿음에 기초한다고 느껴졌다. 끝까지 파고들면 결국, 내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무엇이 가치 있는 일인가? 라는 질문 앞에 어떻게 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세계관, 인간관, 가치관이 윤리학이나 정치학이 아닌, 경제학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우리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우주가 시작된 이후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은 사실이 딱 하나 있단다. 그것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이다. 양대리는 책을 보면서 불변의 사실에 한 가지를 추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농부 이반은 이웃 보리스에게 샘이 잔뜩 나 있다.
보리스한테는 염소가 있기 때문이다.
요정이 와서 이반에게 소원 하나를 들어주겠다고 한다.
이반의 소원은 무엇이었을까?
보리스네 염소가 그냥 고꾸라져 죽어 버렸으면 하는 것이다.
(D. 란데스, 『국가의 부와 빈곤』)
(…) 평등을 원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인간의 감정이고,
인류 역사를 움직여 온 원동력이다.
양대리가 추가하고 싶은 불변의 사실은 인간은 불평등에 화를 낸다는 것이다. 얼핏 보기엔 잘 참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 꽁꽁 숨겨 놓고 있다가, 폭탄처럼 빵 터트린다. 역사가 그걸 잘 말해주고 있다. 수많은 혁명, 전쟁, 파업들이 바로 인간의 평등 본성 때문에 벌어졌다.
그렇다면 경제는 불평등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가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불평등과 같은 갈등 상황을 해결하는 건 정치의 몫이다. 책에서 경제학이 정치적 논쟁이라고 강조한 이유를 양대리는 이제 알 수 있었다. 양대리는 그동안 시장이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제발 정치가 간섭하지 말라는 주장을 자주 들어왔다. 그래서 시장을 내버려 두면 모든 것이 경제 법칙에 따라 예상대로 움직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 시장은 다르다. 국가 차원에서 통제되고 관리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시장은 시장일 수 없다. 시장은 곧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의 세상, 약육강식의 정글이 될 것이다. 제 밥값을 한다면서 어린이들의 노동까지 찬양했던 작가의 모습이 양대리 눈앞에 아른거렸다.
주식투자도 별반 다르지 않다. 국가의 경제 질서가 공정하지 않다면, 투자는 도박으로 변한다. 주식투자 카페와 정보지에 넘쳐나는 작전과 내부정보는 모두 불법이다. 양대리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불법이라는 것에 대해선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정보가 정확한지, 그래서 내가 얼마나 큰돈을 딸 수 있는지에만 온통 관심이 쏠렸다. 만약 이런 식의 투자가 성공해 누군가 대박을 터트렸다면, 그 대박은 공정하게 투자한 많은 사람들을 쪽박 차게 만든 덕에 이룬 범죄의 대박인 것이다. 남들이야 어찌 되건 내 주머니만 불릴 수 있다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들겠다는 마음은 건강한 투자자가 아니라, 도박판의 타짜들이 하는 생각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양대리는 그동안 돈만 쳐다보고 달려왔던 자신의 마음이 병들었음을 알았다. 사냥개들이 눈앞에 있는 사슴을 향해 달리는 것처럼 자신도 그런 벌건 눈을 하고 컹컹거리며 침을 흘리고 있는 건 아닐까.
양대리는 울적할 때마다 찾아뵙는 스님이 한 분 계시다. 스님께서는 인간의 욕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건강한 욕망과 병든 욕망이 바로 그것이다. 건강한 욕망과 병든 욕망은 지금 일어나는 그 욕망이 다른 이웃들을 건강하게 만드는지, 아니면 병들게 만드는지 질문하면 금방 구별할 수 있다고 하셨다.
양대리는 이제 경제학을 다르게 보게 되었다. 경제학은 오직 돈만 추구하는 학문이 아니어야 한다. 경제학은 건강한 욕망에 대한 지식이어야 한다. 이웃과 함께 성장하는 지식이어야 한다. 따라서 경제학은 윤리의 문제, 나아가 정치적 문제와 떨어져서는 생각할 수 없는 앎이어야 한다. 그 사회와 국가가 옳다고 믿고 생산한 좋은 것들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골고루 누릴 수 있도록 경제학이 뒷받침해야 한다. 그래서 아담 스미스 시대에는 경제학을 정치경제학으로 불렀던 건 아닐까.
양대리는 자신의 은퇴 목표를 구체적으로 바꿨다. 조기 은퇴를 포기한 것이 아니다. 단순히 먹고 놀기 위한 막연한 은퇴 자금 5억이 아니게 된 것이다. 이제 그 돈은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놓고 고민하고 나아가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공부할 수 있는 학자금이 되었다. 양대리는 색다른 경제학을 공부하고 싶어졌다. 그가 하고 싶은 경제학은 숫자와 법칙으로 번들거리는 경제학이 아니다. 사회의 불평등을 해결하는 경제학, 갈등을 줄여주는 경제학, 병들고 아픈 욕망을 치료하는 경제학이다. 그러려면 사람에 대해서도, 역사에 대해서도, 정치에 대해서도 알아야 할 것이다. 살면서 처음으로 원하는 공부를 하게 되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내가 아닌 이웃과 세상 전체를 향해 꿈꾸게 되었다.
그랬더니 가슴이 뛰었다.
살맛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