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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barista Oct 18. 2021

입만 열면 회사 욕이 나와요

 - 11번째 책,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

뽑아만 주신다면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겠습니다!     

 

백사원은 뒤질세라 우렁차게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은 없냐는 면접관의 형식적인 말에 거의 반사적으로 답이 튀어나왔다. 문과라서 죄송하다고 사과해야 하는 시대에 문과 중에 문과인 철학과를 나온 백사원은 처음으로 최종 면접을 봤다. 영혼과 맞바꿔서라도 꼭 합격하고 싶었다. 그리고 꿈은 이루어졌다!

 

마지막 우렁찬 대답이 자기 최면이 되었기 때문일까? 백사원은 무엇이든 열심히 일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지금 돌아보니 그게 문제였다. 회사생활은 질문하고 따지면서 생각의 고삐를 놔선 안 되는 일이었다. 그가 알기론, 모든 일에는 사회성이 있다. 사회성이란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런 탓에 내가 어떻게 일을 이해하고 접근하느냐에 따라 일과 연결된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갑질이라고 불리는 거칠고 사나운 일 처리 방식이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괴롭게 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백사원이 당당하게 합격한 그 회사에도 부당한 갑질이 있었다. 계약서엔 갑과 을이라고 쓰여 있지만, 당사자들은 귀족과 천민으로 읽었다. 계약관계가 신분관계로 변한 것이다. 계약은 자유로운 상태에서 맺은 것이 아니라면 효과가 없다. 그렇지만 갑이 물건을 주지 않으면 장사를 할 수 없는 대리점으로서는 계약 내용이 부당해도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회사의 물건을 팔아선 안 된다는 내용이 계약서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대리점은 백사원의 회사 요구에 맞춰 시설과 마케팅을 끝내 놓은 상황이라, 다른 회사와 계약하려면 투자한 거금을 모두 포기해야만 했다.

 

먹고사는 문제가 막다른 골목까지 몰리게 되면 을은 생각을 멈춘 노예가 되거나 화해 불가능한 원수가 된다. 대리점 중 한 곳이 영업직원의 욕설과 뒷돈을 요구하는 장면을 촬영해 유튜브에 올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또 다른 대리점주는 백사원이 다니는 회사를 원망하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대로 맞추느라 30억을 투자했는데, 공급계약을 일방적으로 끊겠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다른 대리점주들의 추가 폭로가 계속되었다.

 

연이은 악재에 회사 주가가 연일 폭락하고 있다고 언론에서 떠들어댔다. 사람이 죽었는데, 그 사건은 주가에 불리한 악재에 불과했다. 어떤 기자는 백사원의 회사가 앞으로 살아남으려면 상생의 철학이 담긴 ESG경영을 해야 할 것이라는 전문가 의견을 실었다. 죽은 대리점주의 유족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도움이 될 만한 전문가 인터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자신이 몸담은 회사의 실상을 안 후로부터 백사원은 입만 열면 회사 욕이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백사원은 ESG경영팀으로 인사발령났다. 상생의 철학이라는 말이 대표이사에게 깊은 인상을 준 탓인지, 직원 중에 철학을 전공한 사람을 ESG팀으로 보내라는 특별 조치가 내려졌던 것이다. 아무리 찾아봐도 회사에 철학과 출신은 백사원 혼자였다. 인사팀장은 신입직원이라 망설였지만 백사원을 보고할 수밖에 없었다. 보고하면서 그는 ‘백사원은 아직 신입이지만, 회사를 위한 뜨거운 열정이 있다’고 의례적인 말을 덧붙였다. 인사팀장은 아직 백사원이 회사 욕하는 걸 들어보지 못한 모양이다.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다

 

회사일이 어디 열정만으로 되던가? 백사원은 일단 ESG라는 말 자체가 입에 붙지 않았다. 입사시험을 위해 그 사전적 의미만을 간신히 외웠을 뿐이다. ESG는 기업들에게 부여된 사회적 책임을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 등 세 가지로 요약한 것이다. 각각의 영어단어 맨 앞글자를 따서 ESG라고 간단하게 부른 것인데 요즘 우리 기업들에게 가장 뜨거운 이슈이다. 정작 회사 내부에선 차가웠지만.

 

백사원이 ESG를 모르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지금 ESG팀은 그야말로 전쟁터라는 것이었다. 아무도 백사원에게 ESG를 설명해 줄 여유가 없었다. 심지어 발령 첫날에는 백사원이 이사짐을 들고 팀에 왔지만, 어느 한 사람 백사원이 지금 왜 여기 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아마 그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 ”어이 거기! 저기 빈 책상에 가서 앉아! 눈에 거슬리지 말고.“ 소리쳤다. 백사원은 속으론 ‘어이 거기? 내가 거기냐?’ 빈정거렸지만, 겉으론 ”예, 알겠습니다!“ 시원하게 대답하고 얼른 자리를 찾아 앉았다. 나중에 알았다. 소리친 사람은 팀장이었다. 백사원은 이제 회사 욕을 할 때마다 어김없이 팀장 욕도 같이 했다.

 

백사원의 회사처럼 갑질하는 회사가 많았던 모양이다. 다른 회사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터졌다. 뉴스의 관심은 새로운 사건으로 옮겨갔다. 그렇게 시간은 한 달이 흘렀다. 이제 사람들의 관심은 올림픽으로 향했다. 연이은 금메달 소식은 회사의 갑질과 그로 발생한 어떤 이의 죽음을 잊게 만드는 데 충분했다.

 

일이 일단락되자, 팀장은 ESG 경영전략을 처음부터 다시 고민해 보고하기로 했다. 철학과 출신 신입사원도 얻은 차에 이왕이면 좀 제대로 해 보자며 회의를 소집했다. 팀장은 백사원에게 ‘ESG 경영전략의 철학적 접근과 적용’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지시했다. 뭔가 다른 관점이 필요했던 것이다. 백사원은 그의 주특기를 살렸다. 속말과 전혀 다른 겉말을 시원스레 해버린 것이다. 그의 속말은 욕으로 가득 찼다.

 

카톡이 왔다. 누구지 한참 더듬은 끝에 같은 팀 신주임이라는 걸 알았다. 신주임은 업무용 공용 폴더에 예전 보고서들과 행사 사진 등이 있으니 그걸 참조하라고 알려주었다. 백사원에겐 그야말로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었다. 그러면서 신주임은 알쏭달쏭한 말을 남겼다.

 

‘어답정인 거 아시죠? 너무 고민 말고, 우리 회사 좋은 회사, 우리 대표님 착한 사람, 이 컨셉에서 벗어나지만 않으면 돼요. 우리 팀장, 다음 인사 때 승진 케이스라는 것도 참고하시고^^’

 

어답정,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다. 백사원은 ‘그러면 그렇지! 이 팀도 썩을 대로 썩었군’ 다시 빈정거렸다. 물론 공용 폴더도 열어 봤다. ESG관련 외부 컨설팅 보고서, 과거 사업계획과 결과보고, 연탄 배달과 김치담그기 행사 사진 등이 있었다. 사진마다 선한 표정으로 웃고 계신 대표님의 얼굴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백사원은 온통 쓰레기밖에 없는 공용파일을 도대체 왜 알려준 건지 신주임에게 따지고 싶었다. 회사에 본질적인 문제가 있는데, 이렇게 자화자찬만 해서는 결국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철학적 접근은 개뿔!

 

백사원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신주임 때문에 시간만 낭비했단 생각이 들었다. 일단 검색부터 시작했다. ESG,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심으로 이런저런 검색어를 만들었다. 검색결과에 나온 각종 자료를 샅샅이 읽고 필요하다 싶으면 모두 다운로드 받았다. 신문기사, 방송인터뷰, 블로그, 논문, 동영상 강연 등을 수도 없이 보고 또 봤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접한 정보의 홍수는 두통을 유발했다. 백사원은 지쳐가고 있었다. ‘젠장, 처음 맡은 발표인데 신입사원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구나.’ 백사원은 자신에게 발표를 맡긴 팀장이 원망스러웠다. 팀장이 자신을 엿 먹이기 위해 시킨 발표일지도 모른다는 억측까지 들었다. 회사와 팀장 욕을 섞어 가며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백사원은 갑자기 책상을 내리쳤다. 모르는 걸 아는 척 하려니 답답했다. 철학과를 나오지 않았다면 ESG팀에 오지 않았을텐데, 철학을 전공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자포자기할 무렵, 백사원은 회사 대표님께서 감명 깊게 읽었다던 ESG 전문가의 컬럼을 다시 찾아 읽었다. 그 전문가의 프로필을 무심히 찾아보던 백사원은 씨익 웃었다. 놀랍게도 그 전문가 역시 철학을 전공했던 것이다. 백사원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전문가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이메일을 읽기나 하겠어?’ 다시 빈정거렸지만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천만다행으로 그 전문가는 답장을 보내주었다. 그것도 아주 친절하고 길게.

 

 

ESG 전문가의 답장

 

백사원님 반갑습니다. 문의 사항을 제 나름 고민해 보았습니다. 부족하나마 그 결과를 정리해 보냅니다. 아무쪼록 준비하시는 발표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각 나라마다 헌법이 있듯, 회사마다 정관이란 것이 있습니다. 정관은 회사를 설립할 때 주무관청에 제출하게 되어 있습니다. 즉, 정관은 사회와의 약속이 담긴 서약서이기도 합니다. 보통 정관 제2조는 이런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회사는 다음의 사업을 영위함을 목적으로 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업은 당연히 사회적으로 필요하고 인정된 사업일 겁니다. 무기나 마약 판매, 인신매매, 장기밀매, 범죄조직 결성 등 사회를 망치는 일을 하겠다고 나선 회사를 어떤 나라가 설립되도록 그냥 두겠습니까. 그러니까 회사는 아무 일이나 닥치는 대로 해선 안 되고, 정관 제2조를 통해 사회와 약속한 일을 해야 합니다. 백사원님도 이런 일을 하기 위해 어렵게 공부해 입사한 것이구요.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볼까요. 백사원님의 회사에도 사훈이 있을 겁니다. 이 대목에서 백사원은 신속, 정확, 친절이라는 회사 사훈이 생각났다. 처음 봤을 때, 회사 사훈이 꼭 중화반점에서 사용해야 할 것 같아서 낄낄대고 웃었던 기억이 났다. 백사원은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하며 다시 이메일에 집중했다.

 

정관 제2조를 통해 약속한 사업을 하려면 어떤 능력이나 태도가 있어야 할 겁니다. 사훈에는 바로 이런 필요 역량과 태도가 담겨 있습니다. 정관과 사훈만 잘 생각해보면, 우리 회사가 어떤 경영을 해야 하는 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참 전에 이러한 사훈 대신 회사의 미션(Mission)과 비전(Vision)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경영전략을 수립하는 일이 유행처럼 번진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정관이나 사훈이 없는 회사는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회사에서 미션과 비전을 몽땅 다시 만들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조직문화 컨설턴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미션과 비전을 통해 회사의 목적을 좀 더 전략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고요. 과연 그럴까요?

 

우리 회사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확고한 이해가 없으면 아무리 멋있는 말로 미션과 비전을 만들어도 소용없습니다. 귀사의 홈페이지에 있는 미션과 비전을 살펴보세요. 너무나도 훌륭한 말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홈페이지에만 박제되어 있고 조직 구성원들의 마음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면, 최근에 벌어진 불행한 일들이 반복될 것입니다.

 

백사원은 순간 아찔했다. 자살한 점주와 유족들의 절규가 생각났다.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은 단순히 팀장에게 잘 보이기 위한 수준에서 만족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회사 홈페이지에 있는 미션과 비전 그리고 유족들이 통곡하는 모습이 겹치면서 그는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메일을 읽는 그의 정신이 자세를 바로 했다.

 

백사원님 발표 주제가 ‘ESG 경영전략의 철학적 접근과 적용’이라고 하셨죠? 여기서 저는 전략이라는 말에 대해 좀 깊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 ‘전략’이란 말 때문에 현재 기업에서 행해지고 있는 미션과 비전 활동들이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전략이란 말을 따져봅시다. 한자로는 ‘戰略’ 이렇게 쓰는데, 그 뜻은 간명합니다. 전쟁에 쓰이는 방법이나 책략이란 뜻입니다. 전쟁은 국가 간에 벌어지는 무력을 사용한 싸움을 말합니다. 막대한 재산 피해는 물론이고,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칩니다. 패전한 국가는 역사 속에서 사라집니다. 패전국의 국민들은 포로가 되거나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난민이 됩니다. 따라서 전략은 그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이기는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번에는 전략을 영어단어를 통해 살펴볼까요. 전략은 영어로 스트레터지(Strategy)라고 합니다. 이 말은 어원적으로 ‘전달하다’를 의미하는 말(stere-)과 지도자를 의미하는 말(ag-)이 합쳐진 것입니다. 지도자란 어떤 조직이나 단체의 우두머리를 뜻하죠. 따라서 영어를 쓰는 사람들은 전략이라는 말을 어떤 조직의 우두머리가 가진 생각이 그 조직에 전달되는 과정이나 방법을 의미한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한 조직을 잘 이끌고 싶은 리더라면, 당연히 그 조직을 처음 만들었을 때 의도했던 목표와 명분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인사, M&A, 신사업 진출 등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이 결정이 회사의 목표와 명분과 잘 맞는지 고민할 겁니다. 그렇지 않고 단지 자기 이익이나 감정에 치우치면, 애초 약속과 다르다, 당신은 거짓말로 우릴 속였다면서, 직원들이나 공동체로부터 엄청난 불만과 저항을 받을 것이 뻔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자신의 현재 상황을 전쟁으로 이해한 사람은 앞서 말씀드렸듯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단 하나의 미션, 즉 생존만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여기서 모순이 발생합니다. 회사는 사회와 약속한 의미 있는 일을 하겠다고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회사가 전쟁 상황에 놓여 있다고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치열한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행동해야 할까요? 아니면 우리 회사가 가진 존재 의미를 제대로 살리기 위한 일을 계속 해야 할까요? 두 가지 모두를 잡을 수 없다면, 무엇을 먼저 잡아야 할까요?

백사원은 선뜻 대답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자주 전략이란 말을 쓰면서도 자신은 단 한 번도 전략과 전쟁을 연결해 생각하지 않았다. 전략이란 말에는 무의식적으로나마 우리가 이 세상을 전쟁터로 이해하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과 우리가 이해하는 세상은 서로 닮아있었다. 전문가의 이메일은 계속되었다.

이 질문이 당황스럽다면 이렇게 물을 수도 있습니다. 회사가 사회와 약속한 그 의미 있는 일이란 결국 단순히 내가 먹고살기 위해 내건 허울 좋은 명분에 불과한가, 아니면 내가 죽더라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의미와 가치를 지녔는가?

전략이란 말은 생존을 최우선 가치로 만들어 버립니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판에 의미와 가치 타령만 하고 있냐고 누군가 호통치면, 다른 말은 꺼낼 엄두조차 못 내죠. 생존 본능이 모두를 사로잡게 되는 겁니다.  저 역시 현장에서 이런 광경을 수없이 목격했습니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러한 호통에 찍소리도 못했을까요? 아마도 여기엔 내 목숨보다 더 귀한 것은 없으며, 내가 죽으면 다 꽝이라는 삶의 철학이 깔린 건 아닐지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고 하셨죠? 혹시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란 책을 읽어보셨는지요? 발표자료를 작성하기 전에 그 책을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죽으면 다 끝난다, 그러니 당장 살고 봐야 한다’는 삶의 자세에선 ESG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늘 경영전략일 뿐입니다.

귀사의 대표로부터 모든 임직원들이 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들이 하는 일이 이 세상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확고한 태도가 자리잡지 못한다면 그런 발표는 아무리 멋있게 꾸며봐야 쇼에 불과합니다. 백사원님의 건투를 빕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백사원은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솔직히 그는 전문가의 말이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았다. 발표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언제 그런 고리타분한 책을 읽겠는가? 소크라테스가 ESG에 대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철학 공부한 사람들은 이래서 문제라고 다시 빈정거렸다.

백사원은 지난 선배들의 발표 자료와 검색해서 찾은 것들을 그럭저럭 연결해 발표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신입다운 발표 스킬과 동영상 몇 가지를 추가해 시각적 효과를 높였다. 그러던 중 또 하나의 사건이 터졌다. 대리점주들이 더 이상은 못 참겠다며 대표이사와의 면담을 요구한 것이다. 대리점주들은 본사 사옥 앞에서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대형 확성기 4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결사투쟁 구호는 이중 방음창을 가볍게 뚫었다. ESG팀은 홍보팀, 법무팀 등과 긴밀히 연락하며 동분서주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언론이었다. 회사는 대리점주들에게는 무대응 원칙을 내세웠지만, 언론에는 곧 원만히 해결될 것이라며 상생 경영을 테마로 한 전면 광고를 계약했다. 푸른 하늘과 생명력 넘치는 숲을 배경으로 순진무구한 아이가 방긋 웃고 있는 사진이었는데, 아이 손에 들린 풍선에는 회사 로고가 뚜렷하게 찍혀 있었다.

갑자기 불꽃이 일었다.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4대의 확성기에서는 투쟁가가 아닌 소화기를 찾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흘러나왔다. 농성 중이던 대리점주 한 명이 분신을 시도했다. 다른 점주들의 절규, 사진 기자들이 셔터 누르는 소리, 빨리 119를 부르라는 소리가 크리스마스 캐롤의 발랄함을 싹둑 잘라 하늘로 돌려보냈다. 백사원은 7층 휴게실 통유리를 통해 그 모든 장면들을 아무 말 없이 지켜봤다. 그날은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그건 그야말로 무서운 일일 겁니다 

크리스마스다. 휴일이지만 백사원은 출근했다. 농성 천막과 확성기는 제 일을 계속 하고 있었다. 책상엔 앉았지만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백사원은 어제 출력해 놓았던 발표자료를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진한 녹색으로 쓴 ‘대리점주님들과 함께 성장하는 회사’라는 문구를 까만 볼펜으로 긁다가 볼펜을 던져 버렸다. 볼펜이 던져진 자리에는 『소크라테스의 변명』이 꽂혀 있었다.


수치스럽지 않습니까?

이 책을 가지고 한 학기 수업을 했던 모양이다. 노랑색 형광펜으로 칠해진 문장들이 책 여기저기에 누워있었다. 그 중에서도 빨간색 볼펜으로 크게 별표시한 부분을 백사원은 읽었다.


가장 훌륭한 양반, 당신은 지혜와 힘에 있어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명성이 높은 국가인 아테네 사람이면서,
돈이 당신에게 최대한 많아지게 하는 일은 그리고 명성과 명예를 돌보면서도 
현명함과 진실은, 그리고 영혼이 최대한 훌륭해지게 하는 일은 
돌보지도 신경 쓰지도 않는다는 게 수치스럽지 않습니까?

“수치스럽지 않습니까? 수치스럽지 않습니까? 수치스럽지 않습니까?” 


소크라테스의 목소리가 수백 번 메아리쳤다. 돈은 필사적으로 쫓아다니면서, 자신의 영혼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 소크라테스에게 그건 수치였다. 그러나 백사원에게 그건 수치가 아니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돈 없이 어떻게 살 수 있단 말인가? 소크라테스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면, 자기 밥벌이도 못하는 것이 수치스럽지 않냐고 나에게 따져 물었을 것이다. 철학과를 나와 변변한 면접 한 번 보지 못했던 과거의 자신을 생각하면 죽도록 수치스러웠다. 그런데 지금 우리 회사가 그런 나를 구원해 주었다. 나에게 밥을 주는 분이 하느님 아닌가?

확성기에서 노래 한 자락이 흘러나왔다. ‘산 자여 따르라’로 끝나는 노래였다. 살아있는 사람에게 하는 노래였다. 밥만 준다면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한 백사원은 자신이 산 사람인지 생각해 보았다. 살아있는 사람이 자살하는 대리점주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을까? 저들을 죽음으로 내몰아 번 돈으로 받는 월급은 당당한 것인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는 사건을 목격한 사람으로서 이런 발표 자료를 더 그럴듯하게 꾸미는 일은 수치스럽지 않은가?

내가 지혜를 사랑하면서 그리고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검토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신이 나에게 명령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죽음이든 다른 어떤 일이든 두려워해서 배치된 자리를 떠난다고 한다면, 난 무서운 일을 저질러 버린 게 될 거예요. 그건 그야말로 무서운 일일 겁니다.


소크라테스는 신이 자신에게 명령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신의 명령을 받은 자신이 혹시 그 사명을 다 하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다. 신의 명령을 지키는 일은 자기 목숨을 희생해서라도 꼭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소크라테스가 이 땅에 태어난 이유다. 그렇다면 그 신의 명령이란 어떤 내용인가? 놀랍게도 그것은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삶을 검토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검토하는 삶! 자신이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나의 가족과 동료와 이웃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내버려두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나아가 그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들고 그 결과를 서로 이야기하는 삶! 그것이 소크라테스에게 꼭 하라고 신이 명령했던 내용이다.

백사원은 화가 났다. 검토하는 삶이라니? 돈만 벌면 됐지 대체 뭘 검토하란 말인가? 내가 왜 죽은 점주들과 지금 농성 중인 사람들의 삶 따위를 검토해야 한단 말인가? 내가 왜 팀장과 동료들의 삶을 검토해야 하는가? 이따위 발표 누가 보기나 한단 말인가? 신은 나에게 명령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그 누구도 명령할 수 없다. 그런 사건은 먼 옛날 소크라테스같은 미치광이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백사원은 이렇게 잘 방어했다. 그런데 그에게 문제가 하나 생겼다. 자신의 마음은 진작 자기 스스로가 얼마나 비겁한 인간인지 알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나에게 더 이상 익명을 요구할 수 없었다. 나는 나를 침묵시킬 수 없었다. 어쩌면 인간은 약자에게서 쉽게 얻는 불로소득에 암묵적으로 합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동이나 노인들에 대한 학대는 기본적으로 약자에 대한 학대이다. 이것이 경제적 약자에 대한 학대로 번진 것이 내가 목격한 갑질의 본질이다. 약한 자의 것을 빼앗는 행위를 묵인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일이다. 이런 일에 대해 침묵하고 나아가 협력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은 자신의 삶을 검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치스럽지 않습니까? 수치스럽지 않습니까? 수치스럽지 않습니까? 백사원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절망적으로 소리 질렀다. 그 절규는 자살했던 그 사람이, 분신했던 그 사람이 냈던 바로 그 소리였다. 산 사람의 소리였다.


덕에 관해서 (…)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
이것이 그야말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상의 좋음이며,
검토 없이 사는 삶은 인간에게 살 가치가 없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상의 좋음은 돈이 아니다. 덕이다. 따라서 덕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덕에 대한 나와 이웃의 이야기가 자라나야, 약자의 것을 뺏고 싶어 하는 인간의 악마성을 막을 수 있다. 되돌아보지 않는 삶, 음미하지 않는 삶, 검토 없이 사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내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나의 삶을 되돌아보지 않는다. 나 말고 누가 나의 삶을 음미하겠는가. 나의 삶을 검토할 자격이 나 말고 과연 누구에게 있겠는가. 백사원은 돈만을 음미해왔던 자신의 삶에서 상한 냄새를 맡았다. 그동안 왜 자신이 그토록 회사 욕을 했는지도 알 것 같았다. 그 욕은 정작 자신에 대한 분노였다.


백사원은 ESG 전문가에게 답장을 썼다.
어리석은 사회 초년생에게 귀한 가르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사회가 우리 회사에 명령한 일이 무엇인지 좀 더 고민하겠습니다. 제가 하는 일과 회사가 하는 일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가치와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늘 검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어서 백사원은 팀장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팀장님, 아무 것도 모르는 저를 믿고 중요한 발표를 맡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쓰러져가는 점주들을 보면서 진정성 없는 ESG 활동은 아무 의미도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우리팀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대리점주들의 이야기를 마음으로 듣는 것입니다. 돌아가신 점주들의 유족들을 만나고 오겠습니다. 그리고 단식 농성장에 계신 분들과도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그 분들의 말씀을 들은 후, 사회가 우리 회사에 명령한 일이 무엇인지 검토한 후 보고 드리겠습니다. 제대로 된 발표는 그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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